제사장의 옷 (출 28장)
출애굽기 28장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하나님께서는 제사장의 옷을 디자인해서 모세에게 알려주셨습니다. 먼저 제사장의 속옷은 우리가 입는 속옷이라기보다는 대제사장이 겉옷 안에 입기 때문에 속옷입니다. 우리가 아는 의미의 속옷에 해당하는 것은 42절에 나오는 대로 고의라는 속바지가 따로 있습니다. 속옷은 흰색 베실로 만든 것으로 대제사장 뿐 아니라 모든 제사장의 기본 복장입니다. 대제사장은 이 속옷 위에 단일한 청색으로 된 겉옷을 입습니다.
겉옷 위에는 화려한 에봇을 입습니다. 에봇은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 가늘게 꼰 베실로 만들어졌습니다. 어깨에는 어깨띠 모양의 견대가 있어서 마치 앞치마와 비슷한 모양입니다. 견대 윗부분에 이스라엘 12지파의 이름을 새긴 보석 호마노가 붙어있습니다. 이 에봇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상징합니다. 다음으로 에봇 앞 가슴에는 사각형의 흉패를 달았습니다. 흉패 위에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보석이 달려 있고 그 안쪽 주머니에는 우림과 둠밈을 넣었습니다. 우림은 빛, 둠밈은 완전함을 뜻하는데, 바둑알처럼 흰돌과 검은돌이 사용되었을 수도 있고, 비슷한 보석이 사용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 우림과 둠밈은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대제사장은 머리에 관을 씁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관은 금은과 보석이 사용되는데, 제사장의 관은 하얀 베실로 만들어진 것으로 터번처럼 머리를 감아 묶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유대인들은 키파라는 모자를 예배나 기도할 때 씁니다. 관은 복종의 증표입니다. 그렇게 머리를 가리는 관 아래쪽에는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글자가 써 있는 금으로 된 패가 있습니다.
대제사장의 예복은 이런 의미들을 갖습니다. 흰 세마포 속옷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깨끗하게, 성결하게 하시는 분이심을 의미합니다. 푸른색의 겉옷은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오신 분, 예수님의 신성을 의미합니다. 화려한 에봇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셔서 고난을 당하시고, 피 흘리시고, 왕으로 높아지시고, 영원한 영광을 얻으신 것을 의미합니다. 가슴의 흉패는 우리를 안아 보호하시고 하나님 앞으로 가시는 중보자로서의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흉패에 있는 12개의 보석들처럼 우리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들입니다. 관은 예수님이 하나님께 순종하셔서 영광스럽게 되신 것을 말합니다. 즉 제사장이 입은 옷은 예수 그리스도를 묘사합니다. 구약의 대제사장이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했고, 예수님이 오셔서 그 일을 완전히 성취하셔서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그런데 대제사장의 옷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지만,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어떤 정체성을 갖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죄인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말해줍니다.
이사야 64장 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더러운 죄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한 후 나뭇가지로 자신을 가리려 했던 것처럼, 우리는 자신을 가립니다. 여러 가지 것으로 포장합니다. 꾸밉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로 우리의 사악함과 부끄러움과 인생의 허무함을 가릴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겉으로 드러나는 표정을 밝게 하고, 성품과 행위들을 어느 정도 좋게 개선하고, 인생에서 대단한 것을 이룬 듯 하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다 해도 우리의 본성, 마음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본성이, 마음이 부패해서 하나님을 싫어하고, 자신의 욕망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인간 안에는 이 죄에서 벗어날 능력, 가능성이 없습니다. 오직 우리 밖에서 오는 능력, 은혜만이 우리를 새롭게 하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로부터 보호해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 죄인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죄인을 이미 알고 계시기에 아담과 하와에게 짐승을 죽여 가죽옷을 입히셨습니다. 그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림이 사람의 죄를 가리고 저주와 슬픔에서 구원할 수 있음을 알려주셨습니다. 제사장의 예복에는 가죽옷과 예수 그리스도를 연결해주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제사장의 예복이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로 자신을 가리는 자들만이 죄에서 구원을 받아 하나님 앞에서 설 수 있음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3장 14절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라고 말합니다. 또 갈라디아서 3장 27절은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분명 예수 그리스도가 죄인이 입어야 할 옷이라고 말합니다. 제사장의 예복은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로 정결하게 될 수 있음을, 예수 그리스도로 존귀하게 되고 하나님 앞에 두려움 없이 나아갈 수 있음을 말해줍니다. 세상 다른 것으로 우리를 치장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것과 세상 것으로 우리를 치장할수록 더욱 안타깝고, 추해질 뿐입니다. 그런 것들로 자신이 가려지고 아름다워진 줄 착각하는 사람은 불쌍한 것입니다.
패션쇼에서 모델은 자신을 자랑하기 위해 무대, 런웨이를 걷는 것이 아니라 옷을 자랑하고, 그것을 디자인한 디자이너를 자랑하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가 정말 아름다워지고 싶다면, 자신의 가치와 존귀함을 드러내고 싶다면,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고 싶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믿음을 통해 우리에게 그리스도라는 놀라운 은혜의 옷을 입히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성도는 정결케 하시는 흰색 속옷을 입고, 예수님의 신성을 나타내는 푸른 겉옷과 그분이 고난으로 얻으신 영광을 드러내는 흉패를 입어야 합니다. 요셉이 채색옷이라는 아버지의 사랑을 입은 것처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과 인생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고, 죄인을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할 때, 그리스도를 옷 입고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대로 베드로전서 2장 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에게 입히신 옷입니다. 그 옷을 입고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갈 때 우리에게도 피조물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영광이 주어집니다.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다양한 것들로 풍성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특별히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은 인간이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고, 욕구를 채우기 위해 가장 집착하는 것들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계시하셨습니다. 홍해를 건넌지 얼마 안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만나와 반석의 물이라는 음식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셨습니다. 또 지난 2주간 살핀 성막이라는 건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셨고, 오늘 본문에서는 제사장의 예복이라는 입는 옷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셨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의식주, 옷과 집과 음식은 절대적이지 않습니까? 그것을 자신의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수단으로 여기는 것을 넘어 그것을 가지고 온갖 비교를 하고, 허영심을 만족시키고, 착각하고, 인생을 허비하지 않습니까? 어떤 동네의 어떤 아파트에 사느냐, 어떤 브랜드의 옷을 입었느냐, 어떤 음식을 먹었느냐를 가지고 행복을 느끼고, 우울해하기도 합니다. 그 세 가지를 얼마나 남들과 차별적으로 누리고 있느냐를 가지고 자신의 삶이 성공이냐 실패냐를 느낍니다. 물론 그런 것들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우리의 죄성과 허망함을 더욱 드러내주기도 합니다. 우리의 영혼과 육신에 참된 생명을 주고 윤택하게 할 진정한 음식, 우리의 영혼과 몸을 보호하고 영광스럽게 할 진정한 옷, 우리가 안전하게 머물 진정한 거처는 예수 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