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송아지 (출 32:1-10)
출애굽기 32:1-10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성막에 대한 지시를 하고 계실 때 산 아래 이스라엘은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백성들은 모세가 오랜 날 동안 시내산에서 내려오지 않자 아론에게 자신들을 위한 신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합니다. 아론은 백성들의 악한 요구를 거절하지 않고, 그들의 말대로 움직입니다. 아론은 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금을 모아서 가져오게 합니다. 아론은 그 금을 녹이고 칼로 새겨서 금송아지 형상을 만들었습니다. 아론은 그 송아지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해 낸 신이라고 말했습니다. 백성들은 금송아지 앞에 제단을 쌓고 제사를 한 후 먹고 마시면서 즐거워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든 일은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십계명에 있는 우상숭배 금지조항들을 모두 어겼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곧 모세를 통해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을 받게 될 것인데, 그들은 시작부터 우상으로 더럽혀졌습니다. 명백하게 십계명을 어긴 채로 십계명을 받아야 했습니다. 또 그들이 몸에 가지고 있던 귀금속들은 출애굽 때에 하나님께서 애굽인들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게 하신 것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귀금속들을 얻게 하신 이유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성막의 기구들에, 제사장의 예복에 귀금속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사용해야 할 것들을 우상을 예배하는 일에 먼저 사용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지난 3주 동안 성전과 제사장의 예복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하길 원하시는 것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만남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 신비한 성막과 제사법을 전달받기 전에 그것을 비웃는 듯 자신들의 사악함을 발산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제시하신 방법대로 성막을 통해 하나님을 예배하기 전, 타락한 자신들의 방법대로 자신의 욕망을 위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숭배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몰랐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돌보심을 경험했고, 또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24장을 보면 분명 이스라엘은 시내산에서 여호와의 명령을 준행하겠다고 엄숙하게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자 기다림을 포기했습니다. 여호와에 대한 충성을 버렸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자신들을 버렸거나, 잊어버렸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백성들을 결코 잊지 않으셨고,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시내산 위에서 모세와 함께 하셨던 하나님은 산 아래 백성들과도 줄곧 함께 하셨습니다. 8절이 말하는대로 하나님께서는 항상 그러시듯 이스라엘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오래 기다리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인간의 속성대로 행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만든 금송아지를 하나님이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의 부패한 마음은 하나님보다 자신들의 욕구대로 즉시 감각을 채우고, 만족시키는 것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사람으로 하여금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면서 기다리고 견딜 수 있게 합니다. 그런데 믿음이 그런 것인 줄 말로는 고백해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도, 역사상 많은 교회들은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것들을 세워서 감각을 충족시켜왔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것을 만들어놓고는 하나님과 관계된 것이라고, 하나님이 허용하시는 것이라고 거짓으로 속이면서 교회라는 이름을 지켜왔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성도들에게서 그런 거짓된 것들의 효과를 확인해왔고, 사용해왔습니다. 신자들이 확신 없는 모습을 보이다가도 그런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것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자신의 종교행위가 신비한 것으로 느껴지게 하는 것들을 교회 안에 들여놓을 때 그들이 자신의 종교행위 대한 애착이 증가하면서 예배에도 열심을 내는 것을 항상 목격해왔습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하기보다 보이는 우상을 제시하는 쪽으로 끊임없이 타협해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효과를 위한 조작이지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 믿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론이 이스라엘의 타락한 요구를 이겨내지 못한 것처럼 역사 속 많은 교회들은 사람들의 본성에 저항하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일에 실패해왔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가지지 않았다면, 눈에 보이지 않으나 살아계셔서 함께 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주일의 예배와 스스로 말씀을 읽는 것과 기도하는 삶에서 생명력을 느끼지 못할 것이고 결국 자기 신앙에 거짓된 확신을 주입시켜줄 우상을 원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드러낸 적이 없었던 헌신을 우상 앞에서 드러낼 것입니다. 먹고 마시며 즐겁게 뛰는 모습을 보여준 이스라엘처럼 기다렸다는 듯이 거짓을 환영할 것입니다. 금송아지를 향해서 하나님이라고 말한 것처럼, 말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실상은 자기 자신, 자신의 감각과 욕망을 숭배하는 종교에 매력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이 참된 믿음이라면 하나님을 우상처럼 눈으로 보지 못하고 만지지 못해도 자신을 믿으라고 십계명에서 말씀하신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믿도록 나에게 개인 맞춤형 증거들을 쏟아부어주시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은 믿어야 할 분입니다. 우리에게 증거가 없어서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믿음이 흐려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불신이 믿음을 훼방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주인이 되고 싶어서 하나님을 거절하고, 자기 욕망에 근거한 우상을 만드는 것일 뿐입니다. 거듭난 자에게 하나님을 믿을 증거는 넘칩니다. 창조로 드러난 하나님의 존재, 그리고 이스라엘의 역사와 모든 역사 속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죽으심, 그리고 그것들을 예고하고 증거하고 완성 때까지 기다리게 하는 기록된 성경말씀, 또한 우리 각자의 삶의 경험들 속에서 하나님은 자신이 믿을만한 분임을 부족함 없이 알려주셨습니다. 인간이 죄를 짓거나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지 않을 때 우상의 지배를 받는 것 마저 하나님이 경고하신대로 일어나는 것이기에 세상의 어리석음과 우리의 넘어짐을 통해서도 우리는 하나님이 옳으시고, 믿어야할 분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역사와 인생의 모든 과정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참 되도록 단련하십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사랑하도록 이끄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이 침묵하시고, 도움을 주시지 않고, 모세가 오랫동안 내려오지 않는 것과 같은 시련의 기간을 허락하셔도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에 끝까지 인내하면서 견딜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