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창세기 강해 (12) 창세기 4:16-24

따뜻한 진리 2022. 7. 24. 17:36

창세기 4:16-24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인류의 조상 아담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하며 살다가 죄를 범했습니다. 죄를 범한 아담이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그를 찾으셨고, 하나님 앞에서 죄를 뉘우치도록 책임을 물으셨고, 그가 일으킨 문제를 하나님이 해결하실 것을 암시하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그런 사랑은 아들 가인에게도 여전해서 그의 악한 죄를 회개할 기회를 주셨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그를 보호하시고,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났습니다. 16절을 보면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났다고 말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 후 에덴 동쪽으로 쫓겨나고 그룹들이 지켰는데, 가인이 또 에덴 동쪽으로 갔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더 멀어졌음을 의미합니다.

 

    가인은 아내를 얻어서 에녹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성을 쌓아 자기 터전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살인한 가인이 앞으로 당할 일로 무엇을 예고하셨습니까? 가인이 땅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하면서 살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가인이 성을 쌓고 정착한 것은 하나님이 땅을 통해 허락하신 처벌에 저항하고 거절한 것입니다. 가인이 떠돌이 생활을 하는 것은 죄를 지어서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도록 땅이 가인을 거절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일이지만 가인이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는 불안 속에서 하나님만 의존하게 하신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가인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들여야 하는 책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그것을 거부했습니다. 또 그가 그 성의 이름을 자기 아들의 이름을 따라 에녹이라고 지은 것은 자기 형상을 닮은 자기 아들을 높인 것이고, 곧 자기에게 도시를 봉헌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즉 가인은 자기 죄에 대해 처벌하신 하나님에게 보란 듯이 반대되는 삶을 보이면서 하나님을 모독하고, 조롱했습니다.

 

    본문은 이어서 가인의 후손들 중 라멕을 자세히 다룹니다. 라멕은 두 명의 아내를 둡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혼인 관계는 어떤 것입니까?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 부부의 관계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모형입니다. 남편 되신 하나님이 아내인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고 책임지시는 것을 드러내는 모형으로 혼인이 의도된 것입니다. 그런데 라멕은 아내를 두 명 두어 그런 혼인 관계마저 깨뜨린 것입니다. 가인의 죄가 점점 번져나갔습니다.

 

    20절에서 라멕의 아들 야발이 장막에 거하면서 가축을 치기 시작했다는 것은 과거처럼 힘들게 동물을 잡으러 다니며 사냥을 하지 않고 가축화해서 그것들이 먹을 풀을 따라 이동했다는 것입니다. 그 야발의 동생 유발은 수금과 퉁소 즉 악기를 만들고 연주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라멕의 또 다른 아들인 두발가인은 여러 가지 금속으로 도구와 무기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자녀들을 낳은 라멕은 이런 노래를 남겼습니다.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라멕은 자기를 좀 다치게 한 젊은이를 죽였다고 자랑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조상 가인을 보호하기 위해 일곱 배로 갚으시겠다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해서 라멕은 자기를 괴롭히는 자는 칠십칠 배로 갚아주겠다고 노래했습니다. 이것은 아벨을 죽인 가인이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가인을 함부로 죽이지 못하도록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조롱한 것입니다. 비록 세상이 타락했지만 하나님은 사람들이 자기 맘대로 상대의 죄 문제를 다루면서 죄가 계속 확장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함부로 처벌하지 못하도록 막으셨습니다. 그런 방법으로 하나님이 가인을 보호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은 일반은혜의 한 부분입니다. 그런데 라멕은 그런 하나님의 은혜조차 비웃은 것입니다. 자기 안에 있는 죄성을 통제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정의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라멕의 이 잔인한 노래가 마지막에 위치한 것은 자기 자녀가 만든 무기로 잔인한 살인을 저지르고 자기 자녀가 만든 악기로 노래를 했음을 암시합니다.

 

    이렇게 가인과 그의 후손들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거스르고, 하나님을 조롱하고, 하나님의 도움이 없어도 사람의 힘으로 당당히 설 수 있음을 자랑하듯 살았습니다. 사람이 한 곳에 정착하는 것, 모여 사는 것, 도구를 만드는 것, 기술과 과학을 발전시키는 것, 아름다운 예술 행위를 하는 것 자체는 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명령하신대로 가인의 후손들도 나름 생육하고 번성했습니다. 공동체로 발전했습니다. 개인에서 공동체로 번성하는 것이 하나님이 의도하신 일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가인의 후손들은 하나님이 세우시고 완성하시는 천상의 나라가 아닌 하나님을 배제한 채로 인간들이 세우는 집단을 이루었습니다. 그것을 위해 기술을 발전시켰고, 자기를 지키기 위해 무기를 만들고, 그 성과를 자랑하기 위해 악기를 만들어 예술활동도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고, 저항하기 위해서 그런 일을 시작했고, 결국 하나님을 반대하는 반하나님적인 행동과 자랑을 드러내고 노래했습니다. 원래 그 모든 것들은 하나님을 드러내고, 감사하고, 찬양하는 일을 위해 시작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죄를 지은 인간은 그런 하나님 중심적인 동기로 발전을 이룬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떠났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발전하고, 죄의 비참함을 숨기고 즐거워하기 위해 그런 일들을 시작했습니다. 인간 자신에 대해 안심하고, 만족하기 위해 열심을 냈습니다. 그것은 자기숭배입니다. 하나님을 높여야 하는 인간이 자기를 신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 사회는 하나님과 점점 멀어지는, 하나님과 멀어져도 괜찮게 느껴지는 세상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무시해도 풍족하고, 즐거운 세상입니다, 그래서 죄의 참혹함을 알고, 자신의 죄에 직면하고, 겸허하게 슬퍼하고, 하나님이 아니시면 안 되는구나를 깨닫게 하기 위한 장치들을 거절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혼인 관계는 여러 다양 죄들로 오염되고, 거부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수고로운 일들은 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과 안락함이 제공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인간 사회는 아담 이후로 죄인이 겪어야 할 땀 흘리고 고생하는 일은 회피하면서도 자기 몸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기 위해서나 스릴과 쾌락을 위해서는 돈과 시간을 들이고 고통을 감내합니다. 나아가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을 대항하여 유전자 조작으로 영생을 꿈꾸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은 단순히 인간이 발전하는 자연스런 과정이 아니라 가인으로부터 시작된 일이라는 것을 본문이 말합니다. 시작부터 잘못된 인간의 활동은 하나님이 아담과 가인에게 예고하신 심판이 사실이 아니고, 얼마든지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가인에게 예고하신 죄인의 허무한 고생과 죽음, 쉴 곳 없는 방황과 두려움은 사람의 방법으로 해결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제공해주시는 방법인, 여자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습니다. 죄인이 예수님을 믿고 의지할 때, 새 사람 되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때 무슨 일을 하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할 수 있고, 죽음마저 하나님을 위한 고귀한 것일 수 있고, 진정한 영생을 얻을 수 있고, 하나님 나라에서 진정한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