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창세기 강해 (36) 창세기 22:1-19 (2)

따뜻한 진리 2023. 1. 8. 20:12

창세기 22:1-19 (2)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지난 시간에는 이삭을 드린 아브라함을 통해 믿음이 순종으로 드러나야 함을 살펴봤습니다. 이 시간에는 같은 사건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살피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명령하신 사건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는 것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일이었습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의 아들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예고하는 모형이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지시하신 모리아 땅으로 갈 때 이삭은 어린아이가 아니라 최소한 10대는 되었을 것입니다. 이삭은 자신의 몸을 태울 만큼 충분한 양의 나무를 자신이 지고 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는 것은 이삭이 자기 아버지 아브라함의 사랑에 대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진짜인지에 대해 순간 의심할 수도 있었고, 아버지의 뜻에 얼마든 저항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순종했습니다. 그는 아버지를 신뢰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도 신뢰했습니다. 아브라함만 순종하는 믿음이 있었을 뿐 아니라 그 아들 이삭도 아버지를 닮아 순종하는 자였던 것입니다. 이삭의 이런 순종은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을 예표합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아버지에게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이삭처럼 불순종할 자유와 능력이 있었습니다. 사탄은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기뻐하는 자라”는 아버지의 음성을 들은 예수님을 시험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버지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자기 일임을 분명히 하셨고, 그것으로 사탄을 이기셨을 뿐 아니라 그 순종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이삭이 예수님을 예표하는 것은 장소에서도 나타납니다. 이삭을 바치라고 하나님이 지시하신 장소 모리아 땅이 예수님과 연관되기 때문입니다. 모리아 땅은 나중에 솔로몬이 하나님께 바칠 성전을 짓는 장소가 되고, 이후 예루살렘 도시가 됩니다. 역대하 3장 1절을 보면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골고다는 모리아였던 예루살렘 외곽의 언덕이었습니다. 이처럼 이삭이 드려진 모리아는 예수님이 죽으신 골고다를 예고했습니다.

 

    또한 이삭이 지고 간 나무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무와 연관됩니다. 번제에 쓸 나무 위에 놓인 이삭은 사형틀인 나무 십자가 위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예고합니다. 이삭이 자기를 태울 나무를 지고 모리아 땅 하나님이 지시하신 장소로 간 것처럼, 예수님은 자신이 죽으실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가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 땅을 향해 출발해서 칼을 들기까지의 기간이 3일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죽으신지 3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예표합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의 마음 속에서 이미 죽은 자로 여겨지며 큰 슬픔을 주었다가 다시 생명을 얻어 살아난 것 같은 기쁨을 주었을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9절은 이삭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아브라함에게는 죽은 아들이 살아난 것과 같은 경험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으셨다가 삼일 만에 살아나셔서 그의 제자들뿐 아니라 모든 믿는 자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소망이 되셨습니다.

 

    이삭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사랑받는 아들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죽으실 장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암시하는 나무 위에 올라가서,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고하는 역할을 했지만 진짜로 죽임당하지는 않았습니다. 이삭 대신 죽임 당할 양을 하나님께서 준비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삭 대신 죽임 당한 숫양도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그 양은 이삭보다 더 나은 제물이 있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죽임당할 진짜 제물이었습니다. 구약 백성들을 그 양을 계속 기억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때 어린양을 죽여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게 하신 것이고, 이사야 선지자는 말없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의 모습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고했습니다. 이런 이미지 속에서 사도 요한은 보좌 위의 어린양이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준비하신 양을 아브라함이 번제로 드리면서 말한 ‘여호와 이레’는 그저 하나님이 우리의 현실에 필요한 것들 미리 준비해주신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하실 것임을 예고하는 아브라함의 예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약속하신 그 여자의 후손, 즉 죄를 이기고 사탄의 머리를 부수고 죄인들을 다시 자기 백성으로 회복시킬 자가 바로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임을 아브라함과 이삭을 통해 세상에 알리셨습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실 그 양, 그 아들만이 그 일을 이룰 것임을 알리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아닌 여호와께서 준비하신다는 뜻의 여호와 이레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이삭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예고하셨을 뿐 아니라 아들을 죽도록 내어주시는 아브라함을 통해서도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도 나타내셨습니다. 2절에서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라고, 또 12절에서도 “네 독자까지도 네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라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것은 마치 ‘아브라함아 네가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는 과정에서 경험했을 심정을 내가 안다. 그런데 네가 하려 한 그 일은 곧 내가 할 일이다.’라고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기 아들을 죽게 하시려고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세례 받으실 때 아버지 하나님은 아들에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3:1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죄인인 우리들을 위해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귀한 아들을 주신 것은 그만큼 우리의 죄가 다른 어떤 희생으로도 해결될 수 없을 만큼 무거운 것임을 말하는 동시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도 말합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사도바울은 로마서 8장 32절에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라고 고백하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니 우리가 믿음의 시련 속에서 인내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격려합니다.

 

    지난 시간 우리는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삭을 드린 사건을 통해 아브라함의 순종하는 믿음에 대해 살펴보았고, 이 시간에는 같은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예고되었음을 살펴봤습니다. 이삭을 바친 아버지 아브라함의 믿음도 탁월하지만, 이삭과 비교할 수 없이 더 귀한 아들 예수를 내어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이 본문에서 펼쳐져 예고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과 헌신이 대단하고 우리가 본받아야 할 것이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헌신은 더 위대합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그의 독생자 이삭을 드리는 일로 증명되었다면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시는 일로 증명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아들 외에는 다른 구원의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 외에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아브라함과 이삭을 통해 예고하신 이유는 마침내 그 아들이 왔을 때 알아보게 하려는, 부인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이 말하듯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