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창세기 강해 (56) 창세기 38:1-30

따뜻한 진리 2023. 5. 28. 17:32

세기 38:1-30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본문은 유다에 대해 말합니다. 유다는 야곱의 열두 아들 중 넷째이고 요셉을 상인들에게 팔자고 제안한 자입니다. 유다는 형제들을 떠나서 살았습니다. 유다는 가나안 여자를 아내로 맞이했고, 아들 엘과 오난과 셀라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가족을 떠난 유다는 가나안 사람들에게 깊은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본문에서 유다의 가정 안에 일어난 일들은 부패한 가나안 문화에 유다 가족들이 젖어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첫째 아들 엘이 다말이라는 여자와 결혼했지만 여호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한 자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죽이셨습니다. 그래서 그 동생 오난이 과부가 된 형수 다말을 아내로 맞이해야 했습니다.

 

    당시에는 결혼한 남자가 자녀 없이 죽으면 그 형제가 혼자 남은 여자와 결혼해서 보호하고 대를 이을 수 있게 하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이것을 ‘계대 결혼’, 또는 ‘형사수취제도’라고 합니다. 그것은 큰 희생이 따르는 일이었습니다. 오난은 죽은 형의 아내를 자기 아내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오난은 겉으로는 형수에게 자녀를 낳게 해 줄 것처럼 하고 실제로는 아이를 갖지 못하게 속였습니다. 자기가 책임지기 싫었던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악한 오난을 죽이셨습니다. 셋째 아들 셀라는 아직 어렸기 때문에 유다는 며느리 다말에게 친정에 가 있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셀라가 성장했는데도 유다는 며느리를 불러서 가정을 이루게 하지 않았습니다. 유다 역시 며느리에 대한 책임감과 의무감이 식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중 유다의 아내가 죽었고, 양털 깎는 기간이 되었습니다. 가나안 지역에서 이 기간은 일종의 축제였습니다. 사람들이 들뜨고 흥분하는 축제에는 타락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게다가 당시에는 자기들의 신에게 다산과 풍요를 기원한다는 의미로 음란한 일들이 행해졌습니다. 브라질 리우 카니발 축제를 보면 여러 신 형상들과 여자들이 퍼레이드에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런 것들이 의미하는 난잡한 일이 양털 깎는 기간에 일어난 것입니다. 유다의 며느리 다말은 이때를 노렸습니다. 다말은 창녀로 변장했고, 유다는 변장한 다말에게 속아서 동침했습니다. 나중에 유다가 사람을 통해 그 여자를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고, 친정에 간 며느리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유다는 며느리가 간음했다고 생각하고 죽이려 했는데, 결국 며느리를 임신시킨 사람이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다말은 결국 아이를 낳게 되는데, 출산을 돕던 산파가 쌍둥이가 나오는 것을 알고 먼저 손이 나온 아이에게 형이라는 표시로 붉은 줄을 묶어두었습니다. 그런데 둘째가 형의 손을 잡아당기고 먼저 나왔습니다. 먼저 나온 동생의 이름은 베레스, 나중에 나온 형의 이름은 세라라고 불렀습니다.

 

    이렇게 요셉 이야기를 하다가 유다 이야기가 갑자기 나온 것은 창세기에 등장한 인물들의 여러 문제들을 유다 가정을 통해 종합하는 것이고, 이후 중심인물이 될 요셉을 더 두드러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먼저 유다 가정의 이야기는 첫째 아들이 아닌 자가 예수님이 오실 족보에 들어오는 것을 계속해서 보여줍니다. 아브라함 아들 중 장남 이스마엘이 아닌 이삭이, 이삭의 아들 중에서도 형 에서가 아닌 야곱이 중심인물이 된 것처럼 야곱의 아들 중에서는 르우벤 대신 유다가 많은 잘못에도 불구하고 중심인물이 됩니다. 게다가 유다와 며느리 다말 사이에서 나온 두 아들 중 동생인 베레스가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가게 됩니다.

 

    또 유다 가정은 출산과 관련해서 계속된 죄를 보여줍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해주신 자녀를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자녀를 만들어내려 한 죄를 드러냈고, 야곱 때에는 아내들이 자녀 출산을 두고 자신들의 주도권 다툼을 하는 죄를 드러냈다면 유다 가정에서는 출산으로 인한 의무와 부담을 지는 것을 회피하려는 죄, 이기적인 죄가 드러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손을 번성케 하신다고 약속하셨지만, 그 약속 안에 있던 인물들조차 자신들의 출산을 죄로 오염시켜 하나님의 약속을 불안하게 만든 것을 보여줍니다.

 

    또 유다 이야기는 야곱에서 이어지는 속임수를 보여줍니다. 유다는 다말이 창녀인 줄 알고 속아서 동침할 때 관계를 가진 대가로 염소 새끼를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는 지난 시간에 언급되었듯 야곱이 염소로 만든 음식으로 아버지를 속였다가 아들들에게 염소의 피로 속은 일과 연속되는 내용입니다. 이렇게 아브라함 이후 유사한 죄가 반복된 것을 보여줍니다. 사람의 성급함과 불신과 이기심으로 하나님의 계획이 좌절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능력과 지혜를, 사람의 죄를 뛰어넘는 은혜를 보여주셨습니다.

 

    한편 유다의 가정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유다와 요셉이 비슷한 일을 겪었지만 요셉이 탁월한 사람이었음을 두드러지게 합니다. 유다가 약속의 땅을 떠나 가나안 사람들과 어울려 살면서 가나안 여자와 결혼한 것처럼 요셉도 약속의 땅을 벗어나 애굽에서 살면서 이방인 애굽 여자와 결혼합니다. 그러나 유다는 자기 뜻대로 그렇게 했고, 요셉은 겪은 일은 형들에 의해서였습니다. 게다가 요셉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정체성을 지킵니다. 유다는 가나안 축제에 빠져 창녀에게 넘어갔지만 요셉은 음란한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이겨냅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할 수 없다면서 유혹을 뿌리쳤습니다. 또 유다의 아들 오난은 죽은 형의 아내 다말 때문에 고생하기 싫어서 죄를 범했고, 아버지 유다 역시 무책임했지만 반대로 요셉은 자기를 죽이려 한 형제들을 위해 고생하게 됩니다. 가족을 위한 책임을 다하게 됩니다. 이렇게 요셉은 유다와 비슷한 일을 겪었지만 다른 태도를 보여줬습니다.

 

    유다 이야기가 여기 등장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요셉이 아닌 유다가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 이어 대를 잇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야곱의 아들 중 유다보다 요셉이 헌신적이었고, 하나님 앞에서 구별된 삶을 살았지만 요셉이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상하게도 유다가 들어갑니다. 마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말하면서 ‘유다가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다’고 말합니다. 또 누가복음 역시 예수님의 족보에서 베레스와 유다를 언급합니다. 요셉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구성하는 인물 중에 이기적이고 남을 잘 속이는 야곱에 이어 약속의 땅을 떠나고, 무책임하고, 음행을 저지른 유다를 사용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런 유다의 후손으로 오신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예수님이 유다 지파의 최고 영광인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다는 의미도 있지만, 세상이 보기에도 민망한 문제를 저지르고, 수치스런 유다와 같은 자들을 주님께서 자신의 육신적 조상으로, 가족으로 선택하셨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는 것의 의미를 풍성하게 합니다. 예수님은 단지 죄인들에게서 멀찍이 떨어지신 채로 구원하시거나 단지 죄인들과 식사하시고, 그들과 어울리시는 정도로만 가까이하신 것이 아니라 기꺼이 부끄러운 자들과 가족이 되실 만큼, 한 족보에 들어가실 만큼 죄인들을 사랑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요셉과 같은 자랑스런 자가 자기 조상이라고 가족이라고 자랑하고 싶겠지만 예수님께서는 수치스런 일을 저지른 유다 같은 자를 조상으로, 가족으로 두시는 것을 기뻐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 같은 죄인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셔서 가까이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을 적대한 자들은 예수님이 세리와 창녀들 같은 죄인들을 친구처럼 여기신 것을 수치스럽고 저급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아는 자들, 그분 앞에서 내가 얼마나 추악하고 부끄러운 줄 아는 자들은 주께서 죄인들을 가까이하신다는 사실이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부끄러운 유다의 가정을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들어가게 하신 것입니다. 누구든 자기에게로 나오게 하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