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에베소서 강해 30 에베소서 2:11-18 (2)

따뜻한 진리 2024. 3. 31. 23:24

에베소서 2:11-18 (2)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항상 감사하고, 겸손하고, 기쁘게 순종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그런 노력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나는 어떠했을까를 생각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부정적인 것은 빨리 지워버리고 긍정적인 사고, 적극적인 실천에만 집중하려 하지만 성경은 우리의 과거, 죄로 인한 실패와 절망을 잊지 않도록 기억시킵니다. 역사를 잊은 자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은 단지 우리를 괴롭게 한 침략자와 원수들에게 또 당하지 않기 위한 명언일 뿐 아니라 성도인 우리 자신이 어떤 존재였는지를 기억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항상 의지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말입니다.

 

     바울은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닌 믿음으로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삶을 살게 하려고 우리에게 과거를 생각하게 합니다. 본문 11절을 보면 바울은 ‘그러므로 생각하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 즉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은 모두 할례받지 못한, 짐승과 같은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구약 시대에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하나님의 은혜를 친밀하게 허락해주셨습니다. 그렇지만 이방인들에겐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이 진노하시고, 고통을 주시더라도 그것은 아버지가 자녀는 훈계하는 것과 같은 동기였습니다. 선지자들은 그런 하나님의 의도와 마음을 한결같이 전달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단지 심판자였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나라 백성이 어떤 대우를 받는지를 보여주었다면, 이방 나라는 구원받지 못하는 자들이 어떤 대우를 받는지를 보여주는 모형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이방인과 같은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 밖에, 하나님의 약속 밖에 있었고,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과도 관계없는 자들이었음을 생각하라고 말합니다. 초대교회 구성원의 대다수였던 이방인 성도들뿐 아니라 우리 역시 그런 구약 시대에 태어났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이 오신 이후에 태어나 차별 없이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백성이 된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지는 이 시대임에도 우리가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이 되지 못한 채로, 그리스도 밖에서 살 수도 있는데 이제 구원받아 하나님 백성 삼아주신 것은 은혜입니다. 그렇게 바울은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지 못했다면 어찌 되었을까를 생각해보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 어디에 소속되어 있게 되었나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베푸시는 구원을 여러 방식으로 설명하시는데 그중에서도 중요한 것은 어딘가에 소속되는 것입니다. 물론 구원은 개인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성령께서 회개와 믿음을 주셔서 구원 얻게 하시는 일은 주로 개인적으로 일어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어떤 집단이나 관계에 속하는 것으로 경험시키시고, 설명하시기도 합니다. 구약에서 방주에 들어가는 것, 이스라엘이라는 하나님 나라의 모형에 속하여 머무는 것이 그것입니다. 또 바울이 계속 강조한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그 안에서’라고 말한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하는 것이 구원으로 설명됩니다. 그래서 최근 살핀 구절인 2장 6절을 봐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라고 10절에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라고 계속 반복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그렇게 소속됨으로 가르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중 하나는 구원이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사는 것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구원이 우리 자신의 행위나 잘남이 아닌 전적인 은혜로 주어지는 것임을 깨닫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한 인간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그 사람의 노력이기도 하지만 그런 재능과 노력이 효과가 있고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는 소속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한 사람이 가진 신체적, 정신적 능력은 부모에게 물려받는데,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나는가는 우리의 선택과 노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소속, 속함의 문제입니다. 또 아무리 뛰어난 재능이 있어도 그 재능을 인정받을 수 있는 환경 속에, 시대에 태어나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1963년에 태어나 세계적인 농구계 슈퍼스타가 된 60살의 마이클 조던이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고 그보다 100년 전인 1863년 링컨에 의해 노예 해방 선언이 되기 전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요? 그가 가진 능력은 그냥 일 잘하는 노예로 평가받는 일에 그쳤을 것이라는 겁니다. 어떤 사람의 삶의 질과 가치를 인정받는 일은 그 사람의 능력, 노력만으로 얻어지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탁월함을 알아볼 시대와 나라와 사람과의 관계에 속해야 합니다. 그래서 유능한 사람들은 자기 시대에 자기 능력을 바르게 평가해줄 나라, 지지해주고 도움을 줄 사람들과의 관계를 찾아 먼 곳으로 떠나기도 했습니다. 유능한 과학자들, 예술가들이 그랬습니다. 또 능력을 인정받는 것을 기대하기보다 그저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자기 나라를 버리고 위험한 탈출을 감행하는 난민들이 계속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일제 시대와 같은 불행한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많은 고통과 억압을 당하고,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 채 사라졌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시대, 자신이 속한 나라의 한계 속에서 절망해 왔는데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나의 노력과 성취로 나의 직업, 사는 동네, 동호회 같은 소속을 바꿀 수는 있지만 그것을 둘러싼 국가, 시대, 환경을 바꿀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와 지옥을 우리 능력으로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구원이 소속됨으로 설명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오직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하나님 백성 삼아주신 것을 속함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이해 속에서 우리는 바울이 11절에서 “그러므로 생각하라”라고 말한대로 우리 자신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12절의 “그때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를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속하지 않았다면 우리에겐 구원이 없었습니다. 그리스도가 오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아무 관련이 없는 채로 살다가 영원히 그렇게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는 자들입니다. 아무 소망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무관하고 하나님 나라에 속하지 않고, 단지 이 세상에만 속해 있다면 얼마나 불안하고 비참하겠습니까? 물론 하나님이 누구에게나 보장해주시는 다양한 일반은총들을 누릴 수 있지만 그만큼 세상에는 인간의 죄로 인한 절망의 요소들 역시 가득합니다. 아무리 보람되게 살고 훌륭한 업적을 남기더라도 죽음 아래서 헛됩니다.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방주에 속하지 못하고, 그 밖에 있던 자들의 운명과 같은 결과가 앞에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스도께 속하지 못한 것은 우리가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악한 자들에게 짓밟힌 나라, 망하고 있는 나라에 속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속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죄인들이 자기 능력, 실력으로는 결코 관계 맺을 수 없는 구원자에게 가까이 붙게 하셨습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속하게 하셔서 하나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에 속해 유대인으로 산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더 나은 진짜 하나님 나라에 속하게 된 것입니다. 로마 시대에 노예들이 로마인이 되는 것보다,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된 것이 더 복된 것입니다. 이 시대에 우리가 부러워하는 스위스, 스웨덴, 노르웨이, 미국, 캐나다 같은 나라의 국민이 되는 것보다 더 복된 것입니다. 세상에서 전혀 소망이 없던 자가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께 가까워졌습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안전하고 부유한 나라에 속하기 위해 목숨을 걸기도 하고, 복잡한 심사를 거치고, 자신이 그 나라에 필요한 인재임을 증명하고, 투자 이민을 위해 많은 재산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그런 이 세상 나라들보다 더 안전하고, 복되고, 우리를 가장 탁월하게 높여주고, 하나님 앞에서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하는 그 나라에 우리가 거저 속하게 된 것입니다. 죄인이 감히 넘볼 수 없는 나라에 예수님 덕분에 속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교회의 성도로서의 정체성을 잊지 않기 위해 합당한 태도로 겸비하기 위해 이 사실을 생각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