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죄에 관하여 (16) 일곱가지 중죄- 분노(1) 사무엘상 20:30

따뜻한 진리 2025. 10. 26. 20:54

죄에 관하여 (16) 일곱가지 중죄- 분노  사무엘상 20:30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우리가 읽은 본문은 사울이 아들 요나단에게 분노를 쏟은 내용입니다. 사울이 왜 화가 났습니까? 그가 다윗을 시기하여 죽이려 하자 자기 아들이자 다윗의 친구인 요나단이 다윗을 보호해주고 피신시켰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아들에게 쏟은 분노는 자신의 악함과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일이었을 뿐입니다. 오늘은 일곱 가지 죄악 중 분노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분노는 앞에서 다룬 교만이나 시기에 비해 우리가 일상적으로 자주 경험하고 저지르는 죄입니다. 분노는 화를 내는 것입니다. 화(火)라는 한자가 불을 의미하듯 분노는 우리의 이성과 감정을 태우고 다른 사람에게도 번져갑니다. 분노의 감정이 폭력과 살인을 낳기도 합니다. 분노는 다른 동물들에게도 있는 자연스런 감정입니다.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또 새끼를 가르치기 위해 동물들이 화를 내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물과 달리 사람의 분노는 거의 대부분 죄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 화를 냅니까?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 화가 납니다. 사람은 젖먹이 때부터 엄마 젖이 잘 안 나온다고 화를 내며 웁니다. 어른이 되도 자기가 원하는 반찬이 없다며 투정하고 화를 냅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자신의 욕구나 기대가 좌절되었을 때 화를 냅니다. 또 우리는 물건이나 사람을 잃었을 때도 화를 냅니다.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가 깨져서 화를 내기도 하고, 그 사람이 죽었을 때 슬픔 때문에 화를 내기도 합니다.

 

     또 우리는 상대의 잘못이나 무례함에 화를 내지만 상대가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도 화를 낼 때도 있습니다. 조금만 손해를 보고, 불리할 것 같으면 자기가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강하게 보이기 위해 화를 냅니다. 또 자기 잘못이 드러날까봐 숨기려고 큰소리를 치고 화를 내기도 합니다. 또 우리의 과거 어떤 경험이나 기억이 습관적으로 분노를 일으킬 때도 있습니다. 상대의 행동이 큰 잘못도 아닌데 어릴적 내가 혼났던 행동이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과거에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난 분위기나 조짐이 보이면 화를 내기도 합니다.

 

     또 우리는 상대에게 화를 낼 때도 있지만 자신에게 화를 낼 때도 있습니다. 나의 어리석음과 실수와 부족함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에 자기에게 화를 냅니다. 문득 그런 기억이 날 때 누워있다가도 이불 킥을 하게 됩니다. 또 우리는 사람에게만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어떤 물건에게 분노하며 화풀이를 하기도 합니다. 화난 아이는 장난감을 집어 던지고, 경기에 진 선수들은 물병을 땅에 던집니다. 통제되지 않은 분노는 비논리적, 비이성적으로 일이 커지게 만들기 때문에 아무 관련이 없는 대상들이 분노에 휘말려 고통을 당하기 쉽습니다.

 

     분노가 항상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닙니다. 얼굴을 붉히지 않고, 큰 소리를 내지 않아도 분노할 수 있습니다. 분노를 드러내지 않다가 어느 순간 극단적으로 쏟아낼 수도 있고, 분노를 일으키는 상대를 무시하며 드러나지 않게 냉소적으로 처리할 수도 있습니다. 분노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분노를 속에 담고 숨기는 사람과 토하는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세상에는 반드시 분노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죄에 대해, 정의롭지 못한 일에 대해 분노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동물적 본성으로 분노를 드러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나보다 약한 사람에게는 분노를 잘 표현하지만 강한 사람에게는 참습니다. 꼭 분노해야 할 순간, 분노해야 할 상대라도 자기 이익이 달려 있거나 상대가 힘이 있으면 지나가고, 비겁하게 침묵합니다. 또 정의로운 줄 알고 분노를 내더라도 선동당해서 그렇게 하기 쉽습니다. 분노는 대부분 악합니다. 사람이 죄로 오염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분노를 통해 당장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더 위험한 상태가 되거나 나의 분노가 상대의 분노와 충돌을 일으켜 더 큰 문제가 일어납니다.

 

     분노가 생기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나 중심으로 통제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게 필요한 것들이 항상 내가 원하는 순간, 나를 배려해서, 나의 상태에 맞게 주어지거나 일어나지 않습니다. 계획대로 되지 않습니다. 좋은 일만 일어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통제가 안 되지만 나 자신도 내 뜻대로 안 됩니다. 그래서 분노는 나를 도와주지 않는 것 같은 사람들과 세상에 대한 원망이자 무력한 나 자신에 대해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짜증이기도 합니다. 나아가 분노는 상대나, 나에 대한 불평을 넘어 하나님에 대한 분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 왜 안 도와주십니까?라는 불만입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분노를 살펴봅시다. 가인은 자신의 제사가 거절되자 동생에 대한 시기심을 통제하지 못하고 분노를 품고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그것은 단지 동생에 대한 분노를 넘어 하나님에 대한 분노를 드러낸 것입니다. 그런 가인에게 하나님은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창4:6)라고 물으셨습니다. 선지자 요나를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이 니느웨로 가라고 명령하셨지만 니느웨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원수였기 때문에 요나는 불순종하려고 도망쳤습니다. 그래서 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하나님께서 풍랑을 일으키시자 요나는 자기 때문에 하나님이 일으키신 일인 줄 알고 뱃사람들에게 자기를 바다에 던지라고 말했습니다. 요나의 그런 행동은 죽어도 니느웨로 안 가겠다고 화를 내며 반항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큰 물고기를 통해 요나를 니느웨로 보내셨고, 요나는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자 분을 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요나에게 “내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욘4:4)라고 물으셨습니다. 또 요나는 뜨거운 태양빛을 가려주던 박넝쿨을 벌레가 갉아먹자 자기를 죽여 달라며 화를 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요나에게 ‘네가 화내는 것이 옳으냐’(욘4:9)라고 다시 물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분노에 대해 이유를 물으십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분노에 대해 어떤 말씀을 하셨습니까? 마태복음 5장을 보면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분노하는 사람에게 과연 화를 내는 이유가 무엇인지, 화낼 자격이 있는지 물으십니다. 책임을 물으십니다. 분노는 그 자체로는 죄가 아니지만 는 분노를 사용하여 우리를 망하게 합니다. 원수에 대한 분노나 불의에 대한 분노가 우리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은 잘 없습니다. 그런 분노보다 사소한 일에 대한 분노가 우리를 망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 지식과 경험의 탁월함, 나의 기분, 나의 자유, 나의 자존심에 흠집을 내는 사소한 말, 일의 틀어짐, 방해와 무시에 우리는 이성을 잃기 쉽습니다. 분노는 나보다 못한 자들은 내 말을 들어야 한다는 교만과 정당한 나의 주장과 내가 나아가는 진로를 방해하는 어떤 문제도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착각 때문입니다. 나 자신이 신이나 왕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통제하고 싶은데 그렇게 되지 않기 때문에 분노하는 것입니다. 분노는 이런 일을 겪게 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불만입니다. 분노는 하나님에 대한 비난과 모욕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분노를 잘 다스려야 합니다. 다음 이 시간에는 이런 분노를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지에 대해 나누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