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8:1-27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르비딤에서 아말렉과의 전투가 있은 후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이스라엘 백성이 있는 곳에 왔습니다. 이드로는 모세의 아내 십보라와 모세의 아들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동안 모세는 가족 없이 혼자 있었던 것입니다. 4장 20절을 보면 원래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후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워 함께 애굽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가족들과 함께 애굽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시려 했던 사건 때문이기도 하고, 여러 위험들이 예견되기 때문에 가족들을 처가에 남겨두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출애굽 후 이드로가 모세의 가족들을 데리고 방문한 것입니다.
모세는 이드로를 맞이하고 그동안 있었던 일들, 여호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장인 이드로에게 말해주었습니다. 그러자 이드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9절에서 11절입니다. “이드로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큰 은혜를 베푸사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심을 기뻐하여 이드로가 이르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너희를 애굽 사람의 손에서와 바로의 손에서 건져내시고 백성을 애굽 사람의 손 아래에서 건지셨도다 이제 내가 알았도다 여호와는 모든 신보다 크시므로 이스라엘에게 교만하게 행하는 그들을 이기셨도다”라는 고백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찬양은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보인 태도와 상반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직접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줄곧 불평을 해왔습니다.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그들은 물이 없어서 불평했습니다. 그리고 음식이 없어서 불평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필요들을 채워주셨는데도 불평합니다. 게다가 오늘 본문에서 이드로가 모세가 하는 일을 종일 지켜봤을 때 드러난 것처럼 백성들은 여러 분쟁과 다툼, 자신들의 해결해야할 현실의 문제를 쏟아냈습니다. 그런데 미디안에서 온 이드로는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기뻐했고, 여호와만이 참 신이시라는 것을 깨닫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이드로는 모세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드로가 번제물과 희생제물들을 하나님께 드릴 때 모세와 이스라엘 장로들이 참여하였고 떡을 나누었습니다. 이 제사는 이드로에게 있어서 자신이 섬기는 주인이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방의 제사장이었다가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서 섰습니다. 이드로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모세의 일정을 옆에서 지켜봤습니다. 모세는 하루 종일 백성들의 분쟁을 해결해 주고 여러 가지 일을 판단하여 결정해 주는 일을 했습니다. 애굽의 왕궁에 있던 시절 모세가 백성들이 서로 다툴 때에 그들을 화해시키려 하자, "그들은 누가 너를 우리의 왕과 법관으로 삼았느냐?"고 대들었었는데, 이제는 모세가 피곤할 정도로 자신들의 문제를 들고 와서 해결을 구했습니다.
이드로는 모세가 하는 그런 일을 보고 이제 이스라엘에 법과 통치기구가 필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규례와 율법 그리고 조직을 갖출 사람들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능력과 덕을 함께 갖춘 사람,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참되어서 거짓이 없으며 부정직한 소득을 싫어하는 사람을 뽑으라고 말했습니다. 이드로는 하나님에 대해 모세만큼 경험하지도 못했고, 알지도 못했는데 그가 모세에게 제도와 법률의 필요성에 대해 조언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동체에 대한 개선점을 제안한 것입니다. 신앙에 있어서는 사위 모세가 나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이드로 자신이 인생을 더 많이 살아봤고, 경험도 많다는 생각으로 모세에게 충고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드로는 자신의 제안을 실행할 때에 하나님을 우선시하도록 말했기 때문입니다. 23절에서 “하나님께서도 네게 허락하시면”이라고 말합니다.
24절을 보면 모세는 장인 이드로의 조언대로 했다고 말하는데 모세가 이드로의 말대로 조직을 세운 것은 얼마 후였을 것입니다. 신명기 1장9절에 보면 이드로가 말한 내용이 실행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십계명과 율법이 수여되고 난 이후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바로 다음 장인 19장부터 시내산 광야에 도착하고, 십계명을 받고, 출애굽기 후반부 끝까지 율례와 법도에 대해 다루게 되는 것입니다. 이드로는 그냥 자신의 지혜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과 사위인 모세를 위해 의견을 낸 것인데 그 일은 하나님께서 곧 하실 일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를 자신이 하실 일을 예고하는, 예비하는 자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이드로의 방문이 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첫째 교훈은 모세의 태도입니다. 모세는 장인 이드로의 말을 얼마든지 무시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이 일으키신 놀라운 출애굽 역사의 이적들 가운데 있었고, 하나님과 대면한 자가 아닙니까? 그런데 이제 막 하나님을 인정한 이드로가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는 일에 있어서 조언을 한다는 것은 모세 입장에서 불편하게 여길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이드로의 조언을 겸허히 수용했습니다. 우리에게 신앙이 있다고 해서 세상 사람들을 무조건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성도가 가장 중요한 영적 안목을 가졌을 수는 있지만 모든 것을 깨닫고 볼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절대기준으로 두고 세상과 세상지혜를 판단해야 하지만, 우리는 거만하지 않아야 합니다. 신자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경험했다고, 능력을 가졌다고 해서 우월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신앙과 무관하다고 해서 무시하거나 세상 윤리와 지혜, 절차를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 사람들의 경험과 역사에서 검증된 이야기들을 잘 귀담아 듣고, 지혜를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려면 게으른 태도나 도피적인 자세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부지런히 올바르게 배워 분별하는 능력과 경건이 필요합니다.
이드로의 방문이 주는 두 번째 교훈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아닌 이방인들에게 믿음을 주시는 방법의 놀라움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존재와 능력을 직접 경험하게 하신 대상은 이스라엘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신앙은 부정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들은 실체를 보고 경험하면서도 백성다운 모습이 없는데, 신기하게도 하나님의 백성 경계 밖에 있는 자들은 듣는 것으로 하나님에 대해 바른 태도를 보입니다. 성경에서 이런 인물이 이드로 뿐만이 아닙니다. 라합, 룻, 나아만 등 혈통으로는 히브리인이 아니지만, 또 이전의 삶이 하나님과 무관했지만 이스라엘 공동체에 갑자기 나타나 이름뿐인 하나님의 백성들을 부끄럽게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과 동행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에 관한 소식을 전해들은 것만으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희생하고, 결단했습니다. 그 자신이 하나님으로 인한 실제적 유익, 공급, 문제해결을 경험하지 않았는데도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 앞으로 나왔다는 것입니다. 신약시대에도 지금의 우리도 그러합니다. 예수님을 직접 목격하고, 그분의 기적을 본 자들보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그 소식을 들은 자들 중에 믿는 자들이 더 많습니다. 예수님 말씀하신대로 보지 않고 믿는 자들이 더 복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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