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율법 받을 준비 (출 19:1-25)

따뜻한 진리 2018. 12. 2. 23:45

출애굽기 19:1-25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출애굽 한지 석 달이 되었을 때 모세와 백성들은 시내산 앞에 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주시기 전 준비에 해당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18장에서는 하나님께서 모세의 장인 이드로를 통해 이스라엘이 율법을 적용할 수 있는 인적 요소를 준비하게 하셨다면, 이번 19장에서는 율법을 받아들이고 적용하기 위한 백성들의 태도를 준비시키신 것입니다. 모세는 본문에서 세 차례 산을 오르내리면서 여호와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본문은 율법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나아가 율법 뿐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내용입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시는 의도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이유는 백성들이 그것을 잘 지켜야만 구원해주실 것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의지, 하나님의 은혜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백성들이 깨닫게 하시려고 4절에서 애굽에서 건져내고, 독수리가 새끼를 돌보듯 백성들을 인도한 자신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불신하는 중에도 이미 은혜를 베풀고 계셨고, 인도하고 계셨습니다. 율법을 주시는 이유는 그렇게 선하시고, 은혜로우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백성들이 세상에 드러내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5절의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라고 말씀하셨으니 율법에 순종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으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5절은 이 세상이 이미 하나님의 것인데, 주인이신 하나님을 못 알아보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 민족들 중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좋은 분이심을 드러내는 민족이 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가운데 보석 같은 존재가 되어서 보석의 주인인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라는 뜻입니다. 보석의 존재는 그것을 가진 자를 돋보이게 하기 때문에 너희는 내 소유가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5절에서 부각되는 것은 백성의 율법 순종을 통해 영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지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6절에서 제사장 나라가 된다는 것 역시 이스라엘이 그런 하나님을 위한 중재자, 섬김이의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율법을 가지고, 하나님에 관한 내용들을 가지고 자랑하고, 권력을 부리고, 높아지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백성들을 위해서 섬기는 직분입니다. 제사장 나라가 된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주변 세상에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율법에 순종해서 하나님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윤리를 외치고, 법치주의를 말하지만 결코 법 앞의 평등함이나 공정함이 없고, 남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자기를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이 세상이 결코 자의적으로 깨닫고 실행할 수 없는 희생적 윤리를 보여주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사장의 역할입니다. 예수님께서 그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어서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주시기 위한 실제 분위기를 조성하시고 백성들의 육체적 준비를 요구하셨습니다. 빽빽한 구름, 천둥과 번개, 나팔소리를 통해 백성들이 두려움 가운데 깨어 각성하게 하신 것입니다. 또 자신들을 성결하고 깨끗하게 하라고 명령하시고,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장소에 가까이 오지 않도록 경고하신 것입니다. 그런 두려움과 긴장은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욕망과 요구들은 내려놓고, 하나님이 그런 명령을 하실 만한 분이심을 인식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19장 전체를 볼 때 하나님은 먼저 자신이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심을 백성들이 기억하게 하시면서 그런 좋으신 하나님께 백성들은 마땅히, 진지하게 반응하도록 분위기를 만드셨습니다.

 

    즉 인간은 하나님을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잘 대해주시는, 마냥 성격 좋은 분으로 여기지 않고, 우리의 죄 때문에 두려워해야 할 거룩하시고 무서운 분인데 은혜를 베풀어 주신 분임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두려운 분위기는 은혜를 아는 자들,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하는 자들자발성을 촉진시키기 위한 경험이지 강제적인 협박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두려운 분위기를 만드신 것은 이스라엘 모두에게 통할 것이라고 생각하셔서 행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속한 집단을 보면 아무리 타이르고 무섭게 협박해도 아랑곳 하지 않는 인간들이 항상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23-24절을 보면 하나님이 경고하셨는데도 겁도 없이 시내산에 올라가려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백성들이 시내산 주위 경계를 침범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자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에게 가서 경계를 넘지 말라고, 자신이 그들을 죽이실 수도 있다고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이 정도면 됐지 생각했는데, 예상 밖으로 백성들의 일탈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엄중하게 무서운 분위기 속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셨는데도 말을 듣지 않는 인간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연출하신, 자신을 돌아보아 정결케 하고 두려워해야 하는 상황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출애굽 과정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인격적으로 알아채고, 신뢰하고 의존하는 자들만이 두려운 임재 속에서 율법을 진지하게 감사하게 받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백성들이 율법 받을 준비를 하게 하셨습니다. 율법 준수는 일차적으로 그것을 요구하신 하나님을 위해서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의 주인이시기에, 하나님이 다 갚을 수 없는 은혜를 먼저 베푸셨기에 그에 대한 감사로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요구인 율법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여호와 하나님을 고백하기 위한 삶의 지침입니다.

 

    그러나 율법은 또한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백성에게 무거운 짐을 부과하신 것이 아닙니다. 율법이 있기 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있었듯 율법 역시 그런 은혜의 연장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사람이 사람답게 하나님으로 인해 복을 누리게 됩니다. 타락한 인간들은 자신의 인간됨의 의미와 조건들을 스스로 찾으려고 하고, 자유와 권리를 가지려고 투쟁하지만 하나님 없이 하는 그런 노력은 인간을 더욱 짐승이 되게 할 뿐입니다. 우리는 십계명을 살펴보면서 그것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다움을 회복하고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이 제시하신 대로 사는 것 밖에 없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는 것과 사람의 사람됨을 보존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진정 우리를 위한 것이고, 그것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그런 깨달음이 없으면 하나님과 율법을 오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율법을 지켜야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구원하신다고 오해하거나, 율법을 통해서 자신들이 우월해진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율법, 행위를 가지고 우월감, 교만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사람이 율법에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반응하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한다는 표현방법입니다. 선택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미워하고 자신들끼리도 해치는 이 세상 속에서 인간이 가야 할 길을 보여주는 섬기는 제사장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신자는 겸손하게 희생하는 높은 수준의 덕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벼이 여기지 않고, 귀하고 큰 선물인 줄 알고 두려운 마음으로 읽고,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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