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21:1-23:9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본문 21장에서 23장은 십계명을 실제 삶에 적용하기 위한 지침들을 구체적 사례 속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하나가 우리 시대에도 적용 가능한 교훈들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체를 다 자세히 살피지는 못하고, 언급되는 순서대로 몇 가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21장 처음에는 종에 관한 지침이 나옵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사고로 인해 재산을 잃기도 하고 빚을 지기도 하는데, 재산이 있는 사람이 그 경제적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고 자기 집에 종으로 데려왔어도 칠년 째가 되면 몸값을 요구하지 않고 자유인이 되게 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종이 자발적으로 자유를 포기하고, 주인에게 머물 수가 있었습니다. 종이 그런 결정을 하려면 주인을 존경하고 계속 섬기고 싶은 마음이 종에게 생겨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나 가지지 못한 자의 신체와 노동력이 가진 자에게 지배를 받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힘과 돈을 가진 자는 자신의 부를 계속 쌓기 위해 그런 관계를 계속 유지하려 합니다. 계속 종을 부리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인간의 죄성에 제한을 두시면서 역으로 종에게 선택할 권한이 주어지는 시점을 설정하십니다. 주인은 종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가족같이 여겨야만 자신의 이익도 지속할 수 있는 것입니다.
12절 이후를 보면 살인과 폭력에 대해 말합니다. 고의적, 의도적으로, 분노에 의해 다른 사람을 살인한 자, 다른 사람을 납치한 자, 부모를 저주한 자는 사형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실수로 사람이 죽었을 경우, 책임이 있는 사람은 사형을 면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무리 큰 잘못을 해도 자신이 직접 생명을 해치려는 감정과 생각과 의도를 통제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만약 자기 소가 사람을 뿔로 받거나 뒷발질하는 버릇이 있는 줄 알면서도 제대로 예방하지 않아 사람이 죽었으면 소도 죽이고, 주인도 죽이라고 말합니다. 또 자기가 만든 구덩이에 사람이 빠져서 다치면 다친 사람에게 배상해야 합니다. 자기 가축이 다른 집 작물을 먹었을 때 자기 밭의 가장 좋은 것으로 배상해야 합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될 것, 사고를 미리 예상하여 예방할 것을 요구합니다. 인간은 무책임한 행위를 해서는 안 됩니다. 무엇을 만들거나, 어떤 일을 할 때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다방면에서 생각을 하고나서 실행해야 합니다. 자기가 소유한 것, 거느리는 것들이 있는 만큼 책임도 커집니다. 사람은 충동과 이익에 따라 아무렇게나 행동하지 않고, 발생할 수 있는 악을 예상하면서 주의 깊게 살아가야 합니다.
또 22장 2절을 보면 밤에 들어 온 도둑은 주인이 죽여도 책임이 없지만, 낮에 들어온 도둑은 죽여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어둠 속에서 위협을 분별할 수 없기 때문에 극단의 정당방위가 허용되지만, 그렇지 않은 낮에는 도둑이라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 빌린 물건을 도둑맞았다고 거짓말하면서 숨기거나, 자기 것이 아니라고 아무렇게나 다루어 손해를 입히는 것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16절을 보면 약혼을 하고 동침한 후에 파혼을 하는 경우에 대해서도 다룹니다. 인간은 가장 신성한, 자신의 일생을 좌우하는 문제를 가지고도 변덕을 부리고, 그것을 가지고 타인을 이용하는 사악함이 있습니다. 욕망은 채우고 책임은 회피하려 합니다.
21절 이후를 보면 이방인, 고아, 과부, 가난한 자들에 대한 배려를 말합니다. 과부와 고아를 이용하고 착취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아내를 과부로 자식들을 고아로 만드시겠다고 무서운 경고를 하셨습니다. 즉 즉 나의 가족이 그런 처지가 될 수 있음을 알고 배려하라는 것입니다. 또 가난한 자에게 돈을 빌려주고 악착같이 이자를 받으려고 재촉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재판을 할 때는 옳지 못한 다수의 세력에 휘둘려서는 안 되고, 뇌물을 받아서도 안 되지만, 약자라고 해서 무조건 편들어줘서도 안된다고 말합니다. 또 하나님께 바칠 동물이라도 최소한 어미와 팔일 동안은 있게 하다가 바치라고 말씀하셨고, 다른 동물에게 찢긴 동물은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동물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과 고통에 대한 공감을 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이런 구체적 윤리수칙들은 십계명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죄 가운데 살아가는 자들임을 전제하고 계심을 드러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출애굽 하셨다고 해서, 인도하신다고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천사처럼 착해지고, 정직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서나 사람들에 대해서 얼마든지 악랄한 죄를 쏟아낼 수 있는 자들임을 율법들이 예상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통찰하고 있는 인간의 죄성들은 현대사회에도 문제를 야기하는 동일한 요소들입니다. 그 때뿐 아니라 지금도 앞으로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빈곤의 악순환과 소외계층 문제, 역차별, 사기, 여러 범죄, 사고, 집단들의 시위들처럼 매일 뉴스에서 보게 되는 것들의 근본적인 문제들입니다. 그것들의 공통적인 원인은 인간이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지 책임, 희생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서로 책임을 지려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법으로 강제로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또는 사회보장이나 보험으로 책임부담을 덜어주는 것입니다. 그런 제도가 필요하긴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근본적으로 서로가 책임지는 자세를 가질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서로에 대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라는 것입니다.
공평하게 배급받는 공산주의처럼 만나를 받아먹는 상황에서도, 누구나 수고한대로 풍성한 수확을 얻을 수 있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이기적이면서 무책임합니다. 어떤 이데올로기나 사회시스템이든지 그것을 극복할 수는 없습니다. 도리어 이 시대는 극도로 이기적이고 책임회피형인 인간을 양산하고 있습니다. 희생과 헌신보다는 자기 삶의 만족을 우상시하고, 그런 자기에 대해 평가하거나 공공의 책임을 지우는 것을 악이라고 규정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이기심을 억압하지 않고, 사유재산과 자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허용하지만 그러나 책임질 것을 분명하게 요구합니다. 타인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책임, 다른 사람의 재산에 대한 책임, 다른 사람의 자유와 기회를 제공할 책임들을 요구합니다.
책임지는 것은 서로를 배려하고 상대의 입장에서 필요를 생각하고, 마음을 헤아려 섬기고, 자신이 연관된 일에 모른 체 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장이 직원을 배려하고, 직원이 사장을 배려하고, 부모가 자녀를 책임감 있게 돌보고, 자녀는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며 순종하는 것이 상호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자기 육체의 종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하나님께서 출애굽시키신 것입니다. 바로의 종, 사탄의 종이 되지 말고, 여호와의 종이 되고, 서로의 종이 되라고 데리고 나오신 것입니다. 출애굽기 20장 1절과 23장 9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종이었던 때를 기억하게 하십니다, 거기서 종 되었던 것에서 구원하신 것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그 종의 모습을 가지셨고, 하나님의 종으로서 섬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로 우리를 책임지시는 섬기시는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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