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25-27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지난 시간에는 성막 전체의 의미를 살펴보았다면 이 시간에는 성막의 각 부분들을 살피겠습니다. 먼저 성막을 둘러싸고 있는 울타리는 60개의 나무기둥으로 되어 있고, 기둥 사이는 흰 세마포 장막으로 연결됩니다. 그 울타리와 성소 사이를 바깥뜰이라고 하는데 그 뜰의 바닥은 어떤 것을 덮지 않은 광야의 맨 땅입니다. 바깥뜰에는 번제단과 물두멍이 있습니다. 먼저 번제단은 제물을 태우는 곳인데, 조각목을 놋으로 감싸서 만들었습니다. 조각목은 싯딤나무로 불리기도 하는데 아카시아 종류의 나무로써 광야에서 어느 정도 잘 자라는 나무입니다. 이 나무는 잘 썩지 않고 날카로운 가시가 있습니다. 이 조각목에 놋을 감싸서 번제단을 만드는데, 놋은 성경에서 저주와 심판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불뱀에 물린 이스라엘이 쳐다봐야 했던 놋뱀은 우리를 위해 저주의 대상이 되신 주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번제단이 있는 이 바깥뜰은 죄를 범한 자들에게 항상 열려 있는 곳이고, 죄인들은 자신의 희생제물을 가지고 와서 그 짐승에 손을 얹고 자신과 동일시 한 다음 직접 동물을 죽이고 피를 내고 불로 태워 죄를 처리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번제단은 예수님이 우리 대신 고난당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죄인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림에 의해서만 죄를 해결할 수 있음을 말합니다.
번제단을 지나면 물두멍이 있습니다. 물두멍은 놋으로 만든 큰 물그릇입니다. 물두멍은 외형적으로 번제단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는 동시에 분명히 대조되는 점이 있습니다. 번제단은 사각형인데 물두멍은 원형이고, 번제단은 정확한 치수를 하나님께서 지시하셨으나 물두멍은 그렇지 않습니다. 번제단은 불로 태우는 자리이지만 물두멍은 물로 씻는 곳입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쏟으셨고, 제자들의 발을 물로 씻기시면서 ‘이미 목욕한 자는 발만 씻으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에베소서 5장 26절에는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라고 말하고 있고, 히브리서 10장 22절에는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라고 말합니다. 번제단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한다면 물두멍은 그 백성을 정결케 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도는 주님의 피로 자신의 존재가 새로워지는 것을 지나야 하며, 또한 주님의 말씀으로 판단을 받고 자신의 죄를 날마다 깨끗이 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번제단과 물두멍이 있는 성막의 바깥뜰은 주님께서 이 땅에 몸을 입고 오셔서 우리를 위해 고난 당하시고 죽으신 것을 상징한다면 성소는 부활 승천하신 영광스러운 예수 그리스도를 표현합니다. 성소는 덮개가 있고, 그 안에는 떡상, 등잔대, 분향단이 있습니다. 먼저 덮개는 네 가지 재료가 겹쳐 있습니다. 가장 아래쪽에는 흰색 고운 세마포 천에 가늘게 꼰 청색, 자색, 홍색 실로 수를 놓았습니다. 청색은 주님이 하늘에서 오신 분임을 뜻하고, 자주색은 주님의 왕권을 상징하고, 붉은 색은 주님의 고난의 피를 말합니다. 그 위에 덮이는 두 번째 덮개는 염소털로 된 것입니다. 염소는 속죄제물로 사용되었던 짐승으로써 죄를 위해 고난당하신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그 위의 세 번째 덮개는 붉게 염색한 숫양의 가죽인데 예수님의 피흘림을 의미합니다. 그 위의 네 번째 덮개는 해달의 가죽입니다. 그것은 거칠고 미관상 보기에 안 좋은 모양인데 가장 겉에 있는 덮개이기 때문에 성막 밖에서는 그것이 보이게 됩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눈에 보잘 것 없고, 멸시와 천대를 당하신 것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성소 안에서 흰 세마포 천에 해당하는 예수님의 피의 능력과 왕권을 볼 수 있지만 바깥에 있는 세상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미워할 수밖에 없음을 뜻합니다.
덮개가 있는 성소의 한쪽 벽에는 떡상이 있습니다. 떡상은 조각목과 금으로 만들어졌고, 그 위에는 진설병 열 두 개가 두 줄로 놓여 있는데, 그것은 자신을 떡으로 주신, 성도들의 영원한 생명과 만족이 되시는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떡상의 맞은 편에는 등잔대가 있습니다. 등잔대는 금을 두들겨 쳐서 만들었습니다. 한 그루의 나무에 U자 모양의 세 가지가 위 아래로 붙어 있어서 총 일곱 개의 등잔불이 켜지도록 만들었습니다. 등잔대는 맞은편의 진설병을 비추면서 생명의 근원인 떡을 찾을 수 있게 했고, 천장을 비춰서 첫 번째 덮개가 묘사하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알게 했습니다. 다음으로 지성소로 들어가는 곳 바로 앞에는 분향단이 있습니다. 향을 태우는 분향단은 성도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가까이 가는 것은 기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시편 141편 2절은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드는 것이 저녁 제사 같이 되게 하소서”라고 말합니다. 또 요한계시록 5장 8절은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성도의 기도가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것이 되려면 예수님의 중보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향단이 상징하는 것입니다. 향을 사르기 위해서는 불이 필요한데, 그 불은 반드시 번제단에서 가져와야 했습니다. 이것은 대속제물이 되신 주님의 피가 우리를 위한 중보의 근거가 됨을 말합니다. 그래서 나답과 아비후가 이것을 어겨 번제단에서 가져온 불이 아닌 다른 불로 분향을 하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법궤가 있는 성소로 들어가기 전, 지성소와 성소 사이에는 휘장이 있습니다. 이 휘장에도 그룹의 형상이 새겨져 있어서 지성소로 함부로 갈 수 없음을 표시합니다. 그래서 휘장은 구약시대 동안 인간의 죄 때문에 하나님과 분리됨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이 휘장이 갈라졌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가까이 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휘장을 지나 성소보다 안쪽에 있는 지성소에는 법궤가 있습니다. 법궤 안에는 십계명 돌판과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만나를 담은 항아리가 있습니다. 그 물건들은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백성의 필요를 공급하시고, 앞서 행하시고 인도하시는 인격적인 사랑과 그 사랑에 근거해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율법을 말합니다. 그 세 가지 물건들은 그런 하나님의 배려와 인도하심을 상징하는 동시에 백성들이 패역한 모습을 드러낸 사건들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모세가 십계명 돌판을 가지고 내려올 때 우상을 숭배하고 있었던 일, 고라자손들이 아론과 모세의 리더십에 불만을 품었을 때 아론의 지팡이에 싹이 나게 하신 일, 신비한 음식 만나를 거두는 법칙에 불순종하고 불평을 했던 일이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배려가 있었음에도 타락한 백성들은 그 은혜를 욕되게 하는 죄를 범했고, 십계명보다 만나보다 모세보다 뛰어난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로 드러났음에도 인간들은 예수를 거절하고 죽임으로 하나님께 대항했습니다. 아담 이후로 타락한 인간에 의해 율법이 줄곧 깨어졌지만 하나님의 말씀, 법은 영원하다는 것을 법궤가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공의는 변하지 않기에 불순종한 인간에게는 죽음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무엇인가에 의해 덮여 있음을 법궤가 보여줍니다.
그래서 법궤 위에는 속죄소, 또는 시은좌로 불리는 덮개가 있는 것입니다. 속죄소에는 그룹이라는 천사의 날개 형상이 서로 마주보고 있습니다. 대제사장이 일 년에 단 한번 대속죄일에 지성소에 들어와 이 속죄소에 수송아지의 피를 뿌렸습니다. 속죄소는 하나님과 사람이 만나는 장소인데, 오직 그리스도의 죽음만이 하나님의 진노를 막고 화평을 이룰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아담은 실패했지만, 이스라엘도 실패했지만 두 번째 아담이신 예수님께서 율법에 완전히 순종하심으로 인간의 반역의 대가를 대신 치러 하나님을 만족시켜드렸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을 온전히 나타내는 일을 예수님께서 성취하셨습니다. 이렇게 성막의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묘사합니다.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도록 돕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가까워집니다. 그것을 보기 원하고, 함께 있기 원하고, 소유하길 원합니다. 그것에 끌려갑니다. 그러나 사람이 뜨겁게 갈망하고, 찾고, 소유해야 할 대상은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성막이 그것을 말해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사랑하도록 죄인들을 자기에게로 끌어당기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필요로 하게 하시고, 깨어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길 원하시고, 마침내 그것을 해결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감탄하고, 감사하고, 찬양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이 길이 사람이 생명과 기쁨을 얻는 유일한 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막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움과 영광스러움을 나타내셨고, 그 영광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을 알도록 하셨습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은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사실로 간신이 신앙생활을 유지하는 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탁월하심과 사랑스러우심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는 자입니다. 피조세계와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와 구원의 큰 틀과 인생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끊임없이 발견하며 가까이 가는 것이 인생의 위로와 소망이 되어야 합니다.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금송아지 (출 32:1-10) (0) | 2019.01.20 |
---|---|
제사장의 옷 (출 28장) (0) | 2019.01.13 |
성막의 의미1 (출 25-27) (0) | 2018.12.30 |
피에 담겨진 율법의 의도 (출24장) (0) | 2018.12.23 |
책임지는 사랑 (출 21:1-23:9) (0) | 2018.1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