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33:1-17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셀 수 없이 많은 자손과 풍요로운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삭, 야곱을 비롯한 후손들은 자신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그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지키시는 분이심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 후 송아지 우상을 숭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진노하시고 그들을 진멸하시겠다고 하셨을 때 모세는 아브라함과의 그 약속을 하나님이 지키셔야 한다고, 백성을 진멸하셔서는 안 된다고 설득하며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리고 이스라엘이 화를 피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약 삼천 명의 우상숭배자들을 처벌하셨습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그 약속의 땅, 모세가 하나님께 기억하시라고 요구했던 그 약속의 땅을 언급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약속하신 그 땅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시겠다고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간청대로 마음을 돌리신 것처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의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지만 그 땅에 함께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시는 이유를 모세에게 설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전히 품고 계신 진노로 인해 그들을 진멸하실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을 가까이 하지 않으려 하신 것입니다.
백성들은 그 이야기를 듣고 슬퍼하면서 자신을 치장하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시내산을 떠나면서 그들의 장신구를 떼어냈습니다. 그들이 자발적으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는 고집 센 백성이다. 내가 만일 잠시라도 너희와 함께 간다면 너희를 아주 없애 버릴지도 모른다. 이제 너희는 너희 장식품을 제거하라. 그래야 내가 너희를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또 모세가 회막을 이스라엘의 진, 백성의 무리 밖으로 옮겼습니다. 이 회막은 성막이 아닙니다. 성막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하나님께서 알려주시기는 했지만 아직 만들었을 시점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모세의 개인 천막이거나, 구름이 머물렀던 천막이었을 것입니다. 그 회막이 이스라엘 진의 중앙에 있었는데, 모세는 그것을 밖으로 옮긴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깨진 것, 멀어진 것을 그것으로 표현한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대로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지만, 더 이상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는 말씀을 하신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이고, 슬퍼해야할 일인지를 모세가 보여준 것입니다.
철없는 자녀,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자식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부모를 이용할 뿐, 부모와의 관계에 애착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 자식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달라고 조를 뿐, 다른 곳에서 얻을 수 없는 소중한 부모 자녀의 관계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부모에게 얻을 만한 것, 재산 이런 것에만 욕심을 낼 뿐, 부모에 대한 사랑과 감사와 존경과 유대감 같은 것은 없는 것입니다. 마치 탕자 이야기에서 아버지의 유산을 받아가지고 나가버린 탕자처럼 그런 패역한 자식은 부모가 자기에게 줄 수 있는 것에만 관심을 가질 뿐 뒤도 돌아보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그런 패역한 자녀가 되지 않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모세도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백성들이 깨닫도록 회막을 밖으로 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노를 참으시고,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지키겠다고 말씀하셔서 이스라엘 집단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아 누릴 수 있게는 되었지만 그것이 좋아할 일이 아님을 알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리는 자들이 하나님을 찾도록 한 것입니다. 회막을 옮겨서 백성들이 부패한 공동체 밖으로 자발적으로 나와 하나님을 찾고 예배하도록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더 이상 이스라엘과 함께 하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셨지만 모세와는 긴밀하게 계속 만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중 그런 하나님과의 관계를 사모하는 자들은 모세의 장막을 바라보면서 예배했습니다.
14절 이후를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는 사랑하시고, 그와 계속 동행하시겠다고 말씀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과는 함께 하지 않으시겠다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자신만이 아닌, 백성들을 포함한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간청했습니다. 모세는 ‘주님께서 친히 우리와 함께 가지 않으시려면, 우리를 이 곳에서 떠나 올려 보내지 마십시오’라고 하나님께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기름진 가나안 땅을 얻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모세는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아무리 좋은 것을 주셔도, 인간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지 못하고, 친밀한 관계를 갖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모든 것을 가져도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자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 것이고, 모든 것을 잃어도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누리는 자라면 모든 것을 가진 자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고, 야곱의 가정을 요셉을 통해 구원하셔서 애굽에서 지내게 하시고, 또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시고, 광야에서 보호하셨다가 풍요로운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단지 그들의 후원자가 되시려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은혜를 입은 자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고 신뢰하고, 경배하는 백성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상숭배한 백성들에게 진노를 풀지 않으시고 진멸하신다고 했다가, 이제는 함께 가시지 않겠다고 하셨다가 결국 모세의 간청대로 다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마음이 좁으셔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주실 수 있는 어떤 것보다 하나님 자신,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려는 절차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고,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 함께 하시는 것임을 고백하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단지 하나님이 주시는 어떤 것으로만 만족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신앙생활로 인해 평안을 누리는 것, 지옥에 가지 않는 것, 복 주시는 것, 보호를 받는 것 정도로 만족하면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어떤 좋은 것을 누려도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가 없는 것은 불행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단지 그들이 원하는 것, 약속하신 것만 주고 정작 그들과의 관계는 끝내실 수도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들을 누리기는 해도 하나님과 관계없는 결말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것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에 관심을 두어야 하고, 하나님 자신을 더욱 알고자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그것이 구원의 목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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