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25-5:32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아벨의 죽음 이후 가인의 후손들이 많아지고 발전한 것은 위협적이고 비관적이었습니다. 점점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는 자들이 세상에 가득해져서 하나님에 대한 기억은 사라지고 하나님과의 관계는 끊어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셋이라는 다른 자녀를 주셨습니다.
여기 등장하는 셋의 후손들의 나이를 보면 대부분 700년에서 900년 이상 살았다고 말합니다. 보통 인간은 아주 건강해야 100세 정도를 살 뿐인데 본문의 긴 수명이 과연 사실일까 의문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수명에 대해 몇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하나는 노아 홍수 이전에는 지구 환경이 지금보다 훨씬 이상적이었기 때문에 사람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다른 해석은 본문의 족보에 나오는 인물들 사이에도 다른 후손들이 여럿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본문에는 셋이 에노스를 직접 나은 것으로 나오는데, 셋과 에노스 사이에도 여러 세대가 있지만 본문에는 특정 인물들만 소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해당 수명이 그 인물 한 사람의 생존 기간이 아니라 해당 인물에서 그 다음 소개된 인물 사이에 생략된 인물의 수명을 합쳐서 말하고 있다는 해석입니다. 또 다른 해석은 족보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실제 수명은 지금과 비슷했는데 본문에서 사용된 숫자 체계가 지금의 숫자 체계와 달라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해석이 옳은지 정확하게 결정할 수 없지만 본문 다음 장 6:3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라고 말하고 있으므로 인류가 죄 때문에 수명이 단축되었음을 말하기 위해 홍수 이전 사람들과 홍수 이후 사람들의 수명을 분명하게 대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1절을 보면 셋의 족보는 아담 때처럼 다시 하나님에게서 출발합니다. 1:27의 창조 장면에서 나오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복을 주셨다’는 말이 여기서 반복되면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의 의도가 셋을 통해 지속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닮은 아담은 자신을 닮은 셋을 나음으로 사탄을 닮은 가인의 후손들과 다른 길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다시 하나님에게서 시작된 이 족보는 아담, 셋, 에노스, 게난, 마할랄렐, 야렛, 에녹, 므두셀라, 라멕, 노아 그리고 노아의 세 아들 셈, 함, 야벳까지 소개합니다.
본문의 족보에는 소개하려는 인물의 태어남과 지어진 이름과 자녀를 낳았다는 것과 몇 살까지 살다가 죽었다는 내용이 반복됩니다. 지난 시간 살핀 가인의 후손들이 점점 발전하고 강해지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셋의 후손들은 그저 태어나고 죽는 일들을 반복한 것을 보여주기 때문에 뭔가 무력하고 애처롭게 보입니다. 죽은 아벨 대신 하나님이 주신 셋의 후손들이 불의한 가인의 후손들과의 생존 경쟁에서 밀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셋의 후손들이 태어나고 허무하게 죽는 반복을 통해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특별한 설명이 추가된 사람들을 살펴보면 먼저 에노스를 발견하게 됩니다. 에노스는 5장 9절에 등장하지만 이에 앞서 4장 26절에서 에노스를 따로 먼저 소개하고 있습니다. 반하나님적인 가인의 후손들 이야기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기 위해 앞으로 다룰 셋의 족보 중 에노스 이야기를 먼저 ‘펑’하고 터뜨린 것입니다. 셋이 나은 아들 에노스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말합니다. 에노스라는 이름은 약하다는 뜻입니다. 가인이 자기 아들의 이름을 따라 자기가 지은 성을 에녹이라고 지어 자기를 칭송하고, 자신의 강함을 표현했다면 셋은 자기 자녀의 이름을 약함이라고 지어 하나님을 높였습니다. 그런 셋의 태도는 아들에게도 영향을 주어 에노스 때에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부르며 예배했습니다.
다음으로 24절을 보면 에녹이라는 사람이 특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에녹은 본문에 등장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가장 짧은 수명인 365세를 살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는 죽지 않고 하나님께로 갔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에녹이 죽음을 경험하지 않은 것으로 이해합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하나님과 친밀한 사람이었는데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셔서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헌신의 삶을 살았음을 의미합니다. 에녹이 다른 사람들보다 짧은 삶을 살았지만 그것은 벌이나 저주가 아니었습니다. 가인의 후손들이 하나님을 무시하면서도 이 땅에서 삶을 즐기며, 풍성하고 힘있게 살아가는 자신을 자랑했지만 에녹은 진정한 기쁨이 하나님 곁에서의 삶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다음으로 28절에는 라멕이 등장합니다. 이 이름은 앞에 등장한 적이 있습니다. 가인의 후손 중 두 아내와 결혼했고, 여러 기술을 발전시킨 아들들을 두고, 악한 노래를 불렀던 자의 이름과 같습니다. 본문의 라멕은 가인의 후손 라멕과 이름은 동일하지만 전혀 다른 길을 갔습니다. 라멕은 아들의 이름을 쉼, 안식이라는 뜻의 노아라고 지었습니다. 라멕은 자기 선조들의 신앙을 따라 죄로 인한 인간의 고된 삶에 하나님만이 쉼을 주신다는 것을 아들의 이름을 노아로 지어 고백했습니다.
이렇게 셋의 족보는 가인의 족보에 비해 단조롭고, 정적이고, 뭔가 이룬 일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이 원래 인간에게 요구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자녀를 낳아, 첫 조상 아담이 했던 이름짓기를 잘 따라했습니다. 그들은 죄에 대한 저주, 정녕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반항하면서 자기 생존과 발전을 꾀한 가인의 후손들과 달랐습니다. 셋의 후손들은 자신들의 죽음을 통해 그것을 주신 하나님이 옳으시다고, 우리가 죄의 대가를 겪는 것이 옳다고 고백하는 듯했습니다. 그들은 고된 삶과 죽음 아래서 허무함을 당하는 처벌을 받는 중에도 하나님이 높임을 받으셔야 한다고 고백했습니다. 또 사람이 약하고 허무한 존재라고, 하나님만이 인간에게 쉼과 안식을 주실 수 있다고 자기 자녀들의 이름을 그렇게 지어서 불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이렇게 셋의 후손들은 전능자이신 하나님 앞에서 피조물 다운, 죄를 지어 은혜가 필요한 자 다운 삶을 살다가 죽었습니다. 또한 셋의 족보는 장차 오실 주님이 어떤 식으로 승리하실지를 전망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힘으로 죄와 사망을 이기시는 것이 아니라 겸손과 약함으로 죽음으로 이기실 것을 예고합니다. 셋의 후손들은 그렇게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예수님을 예비한 선조들답게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삶과 죽음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자녀들과 세상에 고백하면서 가야 합니다. 사람이 이 저주를 끊을 수 없고, 오직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만이 이 죽음을 썩지 않을 생명으로 바꾸신다는 것을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녀들이 부모인 우리와 자기 자신을 과신하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나는 너와 이 땅에서는 영원히 함께 해 줄 수 없다. 너는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우리가 함께 믿어 그 나라에서 다시 만날 것을 소망하게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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