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6:1-8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본문은 가인의 후손들과 셋의 후손들을 지나 노아의 시대에 와 있습니다. 이때는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시기 직전이었습니다. 본문은 긴장 가득한 상황을 묘사하면서 남녀의 결혼에 대해 말합니다. 이는 마태복음 24장에서 예수님이 인자가 올 때를 예고하시며 하신 말씀인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를 생각나게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임박한 시점에서 남녀의 결혼을 말합니다.
그래서 2절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마음대로 아내로 삼았다’고 말합니다. 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누군가에 대한 의견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아들들을 타락한 천사들로는 보는 것입니다. 그것은 천사들이 세상에 내려와 인간 여자들과 결혼했다는 것인데 성경 전체에서 볼 때 가장 타당성이 떨어지는 견해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아들들은 셋의 후손들과 같은 경건한 사람들을 가리키는데 결국 그들도 죄에 물들어 가인 족속의 딸들과 결혼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진짜 하나님의 아들들이 아니라 자기를 신으로 여기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견해들을 고려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이해하면 성경 전체의 맥락 속에서 적절한 해석이 될 것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은 가인의 후손들에게서 나온 권력자들입니다. 그들은 자기 조상 라멕이 두 명의 아내를 둔 것을 넘어 이제는 자기가 가진 힘을 사용해 자기 눈에 들어온 여자는 모두 아내로 삼은 것입니다. 이들이 스스로를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일컬은 것은 자기 세력을 확장하고 권력을 집중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세상 나라들의 건국신화에서 나타나듯 한 나라를 세운 왕은 자기가 신에게서 온 것이라고 꾸밉니다. 그렇게 자기를 신격화해서 사람들이 충성하게 만들고, 전쟁을 일으키든 무슨 일을 하든 신의 뜻이라고 명분을 만드는데 쓸모 있기 때문입니다.
가인의 아들 라멕이 자기 도시의 왕이었고,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을 비웃는 노래를 했듯, 자칭 하나님의 아들들은 라멕의 후손들이 만든 도구와 무기로 강력한 힘을 소유했습니다. 그리고 4절이 말하듯 그 당시 누구나 다 아는 네피림이라는 두려운 군단을 이룬 것입니다. 그렇게 그들은 하늘의 천사였던 거짓 아비 사탄을 닮아 하나님을 적대하는 거짓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었습니다. 1절을 보면 그들은 아담에게 주신 명령을 수행하듯 번성했고, 여자의 후손을 열심히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 약속된 아들이 아니라 거짓 아들들을 낳은 것이며 하나님이 이루시려는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을 무시한 채 자신들의 나라를 자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의 이러한 악행들뿐 아니라 그런 일을 저지르는 마음에 대해 분노하셨습니다. 5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으로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왜 창조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을 존경하고 사랑하며 만족과 기쁨의 대상으로 여기며 살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인간들은 하나님을 적대하고, 조롱하고 하나님이 필요 없다고 여깁니다. 하나님은 이런 인간들에 대해 괴로워하셨습니다. 슬퍼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 자신이 거절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자신이 무시되는 중에도 사람들에게 은혜를 거두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후에도,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후에도, 라멕이 악행을 저지를 때에도 그들이 여전히 은혜를 누리며 살게 하셨습니다. 가인의 후손들이 점점 악해져서 하나님을 모욕하는 극악함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오랫동안 참으셨기 때문입니다. 계속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오래 참으시고, 은혜를 베푸실까요? 사람들이 잘못할 때 하나님께서 참지 않으시고 즉시 벌을 주시고, 악한 생각만 품어도 하나님이 꾸짖으신다면 사람들이 빨리 정신을 차리고, 악행을 저지르지 않게 될 것 같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인간의 악함에 즉시 개입하신다면, 잘못할 때 즉시 처벌하신다면 아무도 살아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악한 생각을 하는 즉시 심판을 받아 지옥에 떨어져야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를 심판하셔야 하는 자신의 거룩한 속성을 드러내기를 잠시 미루시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인격적인 사랑을 시간 속에서 깨달아 회개할 기회, 하나님을 믿고 순종할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악인들은 하나님이 은혜 베푸시고 참으시는 것을 하나님이 없는 것으로, 하나님이 무능한 것으로 생각하며 자기 악행을 중단하지 않습니다. 악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자기가 심판당할 증거를 쌓는 기회로 사용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은혜의 기간을 무한정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언젠가는 자신의 숨겨진 거룩한 속성을 쏟아내셔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그런 하나님의 진노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3절을 보면 하나님은 사람들에게서 자신의 영, 성령을 거두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시간을 120년으로 제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죄인들에게 베푸신 은혜들마저 제한하시고 임박한 종말을 예고하셨습니다.
창세기 시작에서 원래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이 노아 때에 어떻게 바뀌었습니까? 하나님은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신 후 좋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처음 세상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질서와 순종과 경배와 기쁨과 아름다움을 드러냈지만 죄를 지은 인간들은 무질서와 불순종과 자기 숭배와 포악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노아 때에 사람들의 악함이 극에 달했습니다. 지금도 인간은 점점 선해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악해지고 있습니다. 인간이 꾸민 자기 겉모습과 인간이 세운 도시의 겉모습은 아름답고 매혹적이지만 하나님이 없어도 스스로 선할 수 있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자기 위안과 허세에 불과합니다. 인간에게는 아무리 시간이 주어져도 소망이 없습니다. 하나님께만 소망이 있습니다.
노아가 등장할 때에 세상에는 소망이 없었습니다. 이전 가인의 후손들이 절망적일 때는 셋의 후손이라도 소망이 되었지만 얼마 후 노아 시대에는 하나님이 기대하실 것이 완전히 사라졌던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는 모두 전멸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사람 노아를 남겨두셨고, 그에게 은혜를 부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보실 때 한탄하셨지만 노아를 선택하셔서 하나님과의 관계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삼으셨습니다. 세상이 홍수로 이뤄지는 종말을 앞두고 있었지만 위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느 시대에나 그런 사람을 계속 찾으십니다. 우리는 주변에 아무리 좋은 성도들이 많아 보여도 나 자신이 하나님과 긴밀한 관계를 추구해야 합니다, 또 반대로 아무리 참된 성도들이 희귀하고 멸종한 것처럼 보여도 자기만이 참 신자라고 착각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신실함을 추구해야 합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이 이 시대에 노아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자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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