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창세기 강해 (57) 창세기 39:1-23

따뜻한 진리 2023. 6. 4. 18:07

창세기 39:1-23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유다에 관한 이야기를 잠시 했던 본문은 다시 요셉 이야기로 돌아옵니다. 애굽으로 팔려간 요셉은 바로의 경호대장인 보디발의 노예로 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셔서 그는 맡은 일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그러자 보디발은 요셉을 자기 집의 총무로 세워서 모든 일을 그에게 맡겼고 그 집안의 모든 일들이 복을 얻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그렇게 성실하고 유능했을 뿐 아니라 외모도 출중했습니다. 그런데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끈질기게 유혹하자 요셉은 ‘보디발이 자기 집안의 모든 일을 나에게 맡겼지만 당신만은 내게 맡기지 않았는데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짓겠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요셉은 자신이 보디발과 하나님 이 두 대상에 대한 신뢰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리고 보디발의 아내와 가까이 있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이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는 것이며 자기를 믿어주는 보디발에게도 실망을 안겨주는 죄임을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는 요셉처럼 사람과 하나님 모두에게 성실하고 충성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충성하고 헌신한다면서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불성실하거나 게으를 수 없습니다. 우리는 가정에서의 자기 역할과 직장에서 맡겨진 일과 시민으로서의 역할에도 성실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구원받았다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부하면서도 불성실하고 부도덕한 경우가 있습니다. 또 자기는 하나님만 두려워한다고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사람들에게는 함부로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은 그럴 수 없습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인정을 받고, 그의 신뢰를 깨뜨리지 않으려고 한 동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한 것처럼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물론 항상 이 두 가지 충성,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신의를 다 지키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악한 것을 요구하고, 하나님을 부인하는 죄를 짓게 할 때 우리는 그것을 거절해서 그 사람을 실망시킬 수 있습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를 거절한 것처럼 우리가 행동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우리는 세상과의 관계에서도 성실하고 충성해야 합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것뿐 아니라 하나님이 세상 사람들에게 주시려는 일반적인 복도 우리를 통해 얻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디를 가든지 중요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그것에는 우리의 노력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시고, 능력과 지혜와 은혜 베풀어 주시는 일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렇게 요셉이 하나님뿐 아니라 보디발이 거는 기대를 깨뜨리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보디발의 아내의 모함으로 깨지게 됩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또 요셉을 붙잡고 끈질기게 유혹한 것입니다. 요셉은 그 손을 뿌리치고 그 자리를 떠납니다. 하지만 보디발의 아내의 손에 요셉의 옷이 벗겨진 채로 남게 됩니다. 흥미롭게도 요셉의 옷이 그를 위험에 빠지게 하는 속임수에 계속 사용됩니다. 요셉의 형들이 요셉이 입었던 채색옷을 이용해 아버지 야곱에게 거짓말을 했다면 보디발의 아내도 요셉의 옷을 이용해 남편을 속입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자기 뜻대로 안 되자 소리를 질러 자기가 피해자인 것처럼 사람들을 불렀습니다. 사실은 요셉이 그 여자 때문에 옷이 벗겨진 채로 도망치자 그런 요셉을 모함하기 위해 그 여자가 소리를 질렀는데, 그 여자는 반대로 자기가 소리를 지르자 요셉이 도망치다가 옷을 버려두고 도망친 것이라고 말합니다. 본문은 보디발의 아내가 이렇게 사건의 순서를 바꾸어 사람들 앞에서, 남편 앞에서 두 번이나 말한 것을 언급해서 이 여자가 얼마가 악하고, 요셉이 억울한 일을 당했는지를 전달합니다. 결국 요셉은 감옥에 갇힙니다. 당시에는 노예가 이런 문제를 일으키면 사형에 처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지만 보디발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보디발은 자기 아내가 어떤 여자인지 알고 있었고, 아내의 말을 전적으로 믿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보디발은 요셉을 감옥에 가둡니다.

 

    요셉이 갇힌 그 감옥은 일반적인 죄수들이 있는 열악한 곳이 아니라 왕의 죄수들, 즉 지위가 높은 정치범들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알 듯 그 감옥에는 바로의 빵을 책임지는 관원장이나 술을 책임지는 관원장 같은 고위직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보디발은 요셉을 나름 배려한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은 그 감옥에서도 인정을 받습니다. 감옥을 관리하는 간수장이 요셉에게 여러 가지 일을 맡겼는데, 맡겨진 일을 너무나 잘 했기 때문에 한 번 맡긴 일에 대해 간섭하거나 확인할 필요가 없다고 여길 정도로 요셉을 신뢰했습니다.

 

    아버지 야곱의 신뢰를 받았던 요셉은 주인 보디발에게도, 감옥의 간수장에게도 인정받고 남다른 신뢰와 사랑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라는 말씀이 후손인 요셉에게서도 계속된 것입니다. 야곱 때문에 라반의 집안이 복을 얻어 재산이 늘어난 것처럼 요셉 덕분에 보디발이 복을 얻었고, 감옥의 간수장도 복을 얻었습니다. 본문에서 저자는 요셉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다’, ‘복 주셨다’, ‘형통하게 하셨다’고 여러 차례 반복합니다.(2, 3, 5, 21, 23절)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경우처럼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극적으로 나타나셔서 개입하시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이 요셉을 위해 일하신 것이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요셉 덕분에 그 주변 사람들은 복을 얻었지만 요셉에게는 고생과 위협이 계속됩니다. 그는 형들에게 팔려서 아는 사람이 없는 낯선 곳에서 노예로 살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를 주관하는 자들에게 인정과 칭찬은 받았지만 정작 자신은 고된 일과 외로움과 잊고 싶은 상처 속에서 살았을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의 손에 죽을 뻔했다가 살아났지만 이제 보디발의 아내가 그를 새로운 위험에 빠뜨렸습니다. 요셉은 구덩이에 갇혔다가 다시 감옥에 갇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런 순간에도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가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인정받을 때만 함께 하신 것이 아니라 고난을 겪게 되는 순간에도 함께 하셨습니다. 부당한 일을 당할 때에도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요셉이 여호와 하나님의 눈을 두려워하며 보디발의 아내와 죄짓는 일을 뿌리쳤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고난을 당했는데, 그 순간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위기를 만난 것이 아닙니다.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하셨다는 것입니다. 즉 요셉의 고난은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아래서 일어난 것임을 의미합니다. 악인의 고난은 당연한 결과이고 보응이지만 의로운 요셉의 고난은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이루실 원대한 일, 애굽을 사용해서 이스라엘을 보호하고 번성케 하실 일을 위한 섭리 가운데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요셉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요셉이 아버지 야곱과 사람들에게 인정과 총애, 남다른 사랑을 받은 것은 눅 2장 52절에서 예수님께서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을 받으셨다고 말한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또 요셉의 고난이 큰 흉년 때 자기 가족을 살리고, 이스라엘 민족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던 것처럼 예수님의 고난은 죄인인 우리를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성경은 요셉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하신 모습, 죄를 이기신 모습, 자기 백성들을 위해 앞서 고난의 길을 가신 모습을 더 깊이 묵상하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또 우리는 요셉, 그리고 요셉이 예표한 예수님처럼 목숨을 다하기까지 하나님과 사람 앞에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요셉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 성실하고 진실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당한 고난을 당한 것도 예수님께서 선하고 의로우심에도 불구하고 부당한 고난을 당하신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는 그런 부당하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요셉이나 그가 예표한 예수님이 흐트러지지 않으셨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 달릴 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아시면서도, 또 십자가에서 고통을 겪으시면서까지 제자들과 자기 사람들을 돌보시고 사랑하신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런 일을 겪으면 자기 일에 허무함을 느끼고 일을 손에 잡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의 일은 당연히 생각도 못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비참함 속에서 내 일이 아닌 남의 일이 맡겨져도 성실할 수 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요셉이 가족들에게 버림받는 기가 막히는 일을 겪고도 보디발의 집에서 성실한 것, 또 성실하게 섬겼는데 보디발의 아내 때문에 감옥에 갇혀 언제 무슨 일로 자기 이름이 불릴지 모르는데 그가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성실했다는 것은 정말 기적적인 것입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분노와 무력감과 무의미함에 빠져 살고, 사람으로서의 품위도 잃고, 도덕적으로 살 필요도 없겠다고 생각하면서 망가지는데 요셉은 그런 상황에서 자기 능력을 다 활용해서 맡겨진 일을 한 것입니다. 그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인 동시에 그가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무의미하게 여겨질 일을 성실하게 감당해서 인정받은 것입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요셉에게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집에 있을 때 하나님이 주신 꿈이 개꿈이 아니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이걸 잘 해봐야 무슨 소용인가’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일들에 책임을 다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시고, 사람이 생각지도 못할 일을 이루시는 분임을 신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비참한 상황을 겪을 수 있고, 부당한 고난 당할 수 있고, 모든 일을 의미 없게 만드는 절망에 빠질 수 있고, 하나님께 원망을 품을 일을 당할 수 있지만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인내하고 성실합시다. 우리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께서 의미를 부여하시고,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일을 계획하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