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부인할 수 없는 주의 부활 (요 20:1-18)

따뜻한 진리 2015. 11. 8. 23:57

요한복음 20:1-18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지금의 주일인 안식 후 첫 날 새벽 예수님을 애도하기 위해 무덤을 찾았던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마리아가 무덤 입구를 막고 있던 큰 원반 모양의 돌이 옮겨져 열려 있는 것을 보고 베드로와 요한에게 달려가 알렸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무덤 있는 곳으로 달려갔고, 요한이 좀 더 젊기 때문이었는지 먼저 무덤에 도착합니다. 요한은 조심스럽게 밖에서 무덤 안을 들여다보고 수의가 벗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뒤 따라온 베드로는 그의 성품에 어울리게 곧장 무덤 안으로 들어갑니다. 8절에서 그 다른 제자가 가리키는 저자 요한은 그곳에 들어가서 보고 믿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믿었다는 말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다는 의미는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9절을 보면 그 시점에서 그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자신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는 말씀이 이뤄진 것임을 생각하지는 못했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요한이 믿었다는 것은 베드로가 먼저 들어가서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진 것을 보고 놀랐을 때 요한도 그때에야따라 들어가 확인하고, 처음 소식을 전한 마리아의 말을 믿었다는 정도의 의미인 것 같습니다(참고 막16:11).

 

    제자들이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가고 마리아는 거기 혼자 남아 울고 있었습니다. 흰 옷 입은 천사 둘이 있었는데 그들이 마리아에게 왜 울고 있냐고 물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내 주님이라고 칭하면서 그 몸을 누군가가 옮겨다가 숨긴 것 같은데 알 수가 없어서 운다고 대답했습니다. 마리아는 누군가가 자기 뒤에도 있음을 알고 돌아보았지만 그분이 예수님인줄은 알지 못했습니다. 뒤에 계신 그분이 마리아에게 비슷한 질문을 또 했습니다.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마리아는 질문한 그 사람이 동산을 책임지는 사람 정도 되는 줄 알고 혹시 당신이 옮겼다면 내게 말해주세요. 제가 옮겨가겠습니다.”라고 부탁했습니다.

 

    마리아는 천사와 아직 몰라봤던 예수님의 질문에 대답할 때 예수님의 몸을 그 시체라고 말하지 않고 내 주님이라고 일컬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죽으셨지만 자신의 존재를 새롭게 해주신 그분을 사랑하고, 헌신적인 마음을 품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두 번의 질문에 대한 대답에서 나타나듯 그녀에게 예수님은 죽은 주님이었습니다. 13절의 옮겨다가”, 15절의 옮겼거든내가 가져가리이다에서 마리아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도로 찾아와야 할 죽은 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졌다는 사실로 그녀가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 그 시신을 옮겼다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이어서 요한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모여 있던 곳에 두 번 찾아오신 일을 말합니다. 한 번은 안식 후 첫날로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그날 저녁이었고, 두 번째는 팔일 뒤였는데, 이 팔 일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부터 다음 주일까지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처음 오셨을 때 그 자리에 없었던 제자가 있었는데 바로 도마입니다. 도마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믿지 못하겠다고 예수님의 못자국과 창에 찔린 자국을 봐야만 믿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일주일 뒤 두 번째 오셔서 도마에게 그렇게 하고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도마는 눈앞에 계신 그분을 보면서 결국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이처럼 마리아와 베드로와 요한, 그리고 도마의 모습이 공통적으로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만한 자들이 처음에 믿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무덤에 있어야 할 예수님의 몸이 사라진 것을 본 마리아, 예수님의 시신을 감았던 천만 번데기가 고치를 벗은 듯 둘둘 싸여 있는 것을 본 베드로와 요한, 예수님을 보았다는 다른 제자들의 증언을 들은 도마도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이전에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부활을 기대하지 않았고, 부활하신 흔적들과 증거들이 있음에도 부활을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역사상 예수님의 부활을 조작이라며 반박하는 자들의 많은 주장이 있는데, 그중 핵심적인 것 몇 가지를 살펴보면, 첫째는 예수님이 죽지 않고 기절했었다가 깨어났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십자가 아래의 군병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러 죽음을 확인했고, 마가복음 15장을 보면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고 빌라도에게 요구했을 때 빌라도는 예수님이 벌써 죽었는지 의심스러워서 유대인 백부장을 통해 확인하기까지 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 죽으셨습니다.

 

    두 번째 부활에 대한 반박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꾸미려고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서 숨겼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살폈듯 예수님의 제자들과 추종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유념하고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예수님을 죽인 자들이 예수님이 평소 말씀하신 부활에 대해 기억하고, 그것을 준비했습니다. 마태복음 27장을 보면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은 예수의 추종자들이 예수의 부활을 꾸밀 가능성에 대해 제기했고, 빌라도에게 요구해서 로마군인들이 무덤을 지키게 했습니다. 그러니 누구도 로마 군인들의 눈을 피해, 무덤 입구를 가로 막고 있는 무거운 돌까지 치우면서 시신을 훔쳐갈 수 가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훔쳐가면서 예수님의 몸을 감싼 수의를 남겨 놓을 이유도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시신은 사람이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세 번째 반박은 예수의 제자들과 추종자들이 부활을 너무나 열망했던 나머지 집단적으로 환각에 빠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살폈듯이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들, 제자들마저도 부활을 염원하며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졌을 때 근심하고 당황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기 전까지 그들이 예수님을 이해하고 믿었던 수준은 부끄러울 정도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후에야 비로소 그들은 그분이 누구신지, 이전에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인간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분이 하신 말씀, 모든 주장도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부활뿐 아니라 예수님의 탄생도, 삶과 행적도, 그분의 죽음도 부활과 함께 부정하려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그랬고, 지금까지도 나름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다양한 면을 부정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존재와 사역만큼 사실인 것도 없습니다. 역사가 그것을 말해주며, 죄인인 인간들이 끊임없이 그것을 부인하려고 시도한다는 것이 그 사실을 반증하며, 우리가 살핀 대로 성경 말씀이 그것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제자들과 추종자들은 부활에 대해 어떤 기대도 조작할 의지도 없었다는 사실이 예수님의 부활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뤄진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누구라고 설명하신 말씀들과 행하신 일들이 사실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의 처음부터 기록된 순서대로 그분이 우리를 지으신 말씀이시고, 우리의 어두운 상태를 알게 하시는 빛이시고, 하나님을 드러내시는 성전이시고, 하나님 나라이시고, 하늘로부터 오신 분이시고, 우리의 영혼을 해갈하시는 생수이시고, 우리 몸을 지으신 분으로서 질병도 치료하신 분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생명의 떡이시고,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분이시고,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시는 분이시고, 선한 목자이시고, 길과 진리이시고, 포도나무이시고, 세상을 이기신 분이시고, 우리 죄 때문에 죽으시고 사단을 이기신 분이시고, 우리를 용서하고 사랑하시는 분이심을 부활이 증명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옳으시다는 것이 증명된 것입니다.

 

    또한 부활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18절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다른 증거, 다른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현실에 도움이 되길 원합니다. 그러나 가장 크고도 확실한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 죄인들을 위해 자기 아들을 죽게 하시고 다시 살리신 것에서 분명하게 나타났습니다. 세상 그 누가 아무리 강한 능력을 가져도 죄를 없앨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해결하셨습니다. 그 증거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나타났습니다. 이 능력이 가장 크고 위대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세상의 누구도 줄 수 없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을 해결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능력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성도는 이것으로 만족하고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거듭난 자는 이 하나님의 능력을 보는 자이고, 이 능력에 사로잡힌 자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30-31절에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도 이적들을 행하셨지만 부활이 가장 큰 능력이므로 다른 이적들을 기록하지 않고 부활만을 기록한다고 말합니다. 최고의 능력이고 최고의 표적인 부활을 통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 용서를 받고 생명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