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3:1-22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하나님께서는 호렙산에서 불타는 떨기나무로 자신을 모세에게 나타내셨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불꽃은 고체든, 액체든, 기체든 어떤 물질을 태우면서 발생하게 되는데, 그 떨기나무의 불꽃은 다른 물질을 태워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존재하는 불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신기한 장면으로 자신을 모세에게 보여주셨고, 모세의 이름도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그 떨기나무에 가까이 오는 것은 막으셨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임재를 두려워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자기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들었고, 그들의 상태를 알고 있으며, 그들을 애굽인에게서 건져내고 가나안 땅에 인도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모세를 통해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애굽에 가서 말씀대로 할 때 겪게 될 일들을 예고해 주셨습니다.
40년 전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마음에 두고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그들을 위해 자신의 능력과 자원들을 사용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실패하고 광야로 도망쳐서 40년간 양떼를 돌보면서 살았습니다. 40년이 지난 후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을 때 모세는 반가워하면서 드디어 나를 부르시는구나 생각했을까요? 아닙니다. 그는 불타는 떨기나무에 나타나신 하나님을 두려워하긴 했지만 이제서야 자신을 애굽으로 보낸다고 하실 때 반대했습니다. 40년의 시간이 짧은 시간입니까? 아닙니다. 매우 긴 시간입니다. 모세는 그 시간동안 하나님께서 왜 나를 도와주시지 않았을까? 내가 왜 여기 이 광야로 쫓겨나서 살아야 할까?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 것일까? 수많은 질문과 원망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떤 기대도 없어졌을 것입니다. 자신에 대해 하나님에 대해 그랬을 것입니다.
그런 모세가 떨기나무 불꽃 앞에서 알아야 할 것은 자신의 비참함과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떨기나무 불꽃이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거룩한 임재의 상징을 드러내실 때 다른 피조물에 의존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불꽃은 스스로 있었습니다. 그것은 떨기나무가 다 타면 그와 함께 사그라지는 불꽃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백성을 향한 모세의 열정과 기회는 한 순간 불꽃처럼 타올랐다가 사라졌지만 하나님은 어떤 것에도 제약을 받지 않으시고, 스스로 계시고, 원하는 일을 언제든 하실 수 있고, 영원히 계시는 불꽃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주저합니다. 그리고 두 가지 반대 의견을 냅니다. 첫 번째로 11절에서 모세는 ‘제가 누구길래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해야 합니까’라고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의 상태를 가지고 핑계를 댔습니다. 그 질문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상태인지에 대해 설명하시지 않습니다. 대신 하나님은 자신이 모세와 반드시 함께 하시겠다고(12절)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피조물에도 제한을 받지 않으시고, 자신의 존재와 능력을 반드시 드러내시고 인정받으시는, 세상 아무것도 막을 수 없는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동행하신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것이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어떤 능력을 주시겠다고, 바로를 어떻게 제압하시겠다는 말씀하시기 전에 자신이 모세 너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13절을 보면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해도 이스라엘이 자기를 신뢰하지 않을 것인데 어떻게 하냐고 질문을 했습니다. 백성들이 모세에게 ‘네가 정말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서 이런 일을 하는지 우리가 어떻게 아느냐’라고 반문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관심이 없으시다가 갑자기 나타나셔서 선심 쓰듯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요셉, 모세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을 늘 지켜보고 계셨고, 구원하고 계셨습니다.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지키고 계셨습니다. 또한 모세가 애굽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광야에서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살았던 긴 시간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7절에서 백성의 고통을 듣고, 보고, 알고 계신다고 말씀하신 것이고, 그렇게 모든 역사를 아시는 분이기에 15절에서 자신의 이름이 대대로 기억될 영원한 이름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18절을 보면 그 이스라엘 백성과 장로들이 모세의 말을 들을 것이라고, 모세를 신뢰하게 만드실 것이라고 하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그렇게 모세가 자신이라는 장애물,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라는 장애물을 하나님께 핑계하면서 부르심에 저항했지만 하나님은 도우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애굽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모세가 반대하는 질문을 그 두 가지만 떠올렸을까요? 모세 자신과 이스라엘의 불신 외에 더 큰 장애물은 무엇입니까? 바로 애굽입니다. 모세는 아마도 하나님께 ‘애굽 왕 바로가 말을 듣지 않을 것인데 어떻게 합니까’라고 세 번째로 반문할 준비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19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묻기도 전에 바로가 쉽게 허락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다고, 그래서 자신이 바로와 애굽을 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생각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내가 안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애굽과 바로의 반응만을 알고 계신 것이 아니라 모세 네가 어떤 질문을 할지도 다 안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묻기 전에 이미 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도, 애굽도 그런 질문을 할 모세도 다 알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놀라운 임재를 경험하고, 두려움을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즉시 순종하지는 않는 것을 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신비한 증거를 주시고, 강력한 경험을 하게 하시면 하나님을 더 잘 믿고 즉시 순종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인간은 실제로 그렇지 않습니다. 악한 일에는 쉽게 용기를 내고, 선동되지만 하나님의 명령에는 게으르고 온갖 핑계를 대는 것이 인간입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자기 확신과 감정에 가득차서 사람을 죽일 때는 과감했지만 하나님께서 하신 명령에 대해서는 주저하고 두려워하고 부당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설득하셔야 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았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출생 때부터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성장하면서 그런 자신의 과거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막상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명령하시자 고집스럽게 하나님께 반대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위대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사용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의 출생과 배경과 준비됨은 특별했지만 그런 요소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사용되는 요소들이었을 뿐 그의 인간됨과 태도는 우리랑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모세는 처음에 믿음이 없었습니다. 40년 광야 생활을 했는데도 아직 정신을 못 차렸습니다. 하나님의 신비한 임재의 불꽃을 보고 음성을 들었는데도 말을 듣지 않습니다. 불꽃을 보고 두려워 한 것은 하나님을 경외한 것이 아니라 온통 자기 생각만 하면서 두려워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보다 자신과 이스라엘과 애굽을 두려워 한 것입니다. 주님이 주신 사명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겠다는 열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런 인간을 부르신 것입니다.
스스로 계시는, 아무것도 의존할 필요가 없이 모든 것을 홀로 하실 수 있는 분이 굳이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는 것이 신비롭습니다. 게다가 하나님이 고집스럽고, 불만을 품고 순종하지 않는 피조물을 인내하시면서 설득하시고 보내시는 일이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항상 그렇게 일하십니다. 신앙 인물들이 다 그러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런 일들이 그들을 사용하시는 과정일 뿐 아니라 그들을 구원하시는 과정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그 일에 쓰임 받는 자를 겸손하게 만드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들이 우리보다 특별히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 그런 자들을 이끌고 가신 하나님, 그 사실이 우리에게 은혜가 됩니다. 위로가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충분히 여기고 다른 핑계를 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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