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신과 같은 바로, 말씀하시는 여호와 (출 5:1-7:7)

따뜻한 진리 2018. 9. 2. 20:23

출애굽기 5:1-7:7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본문 5장을 보면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대로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바로는 거절했고, 도리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더 많은 일을 시켜서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벽돌을 만들 때 필요한 볏짚을 스스로 구하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했습니다. 당연히 지시한 만큼 벽돌이 만들어지지 않자 애굽 감독관들은 히브리 작업 반장들에게 책임을 물으면서 때렸고, 그 작업 반장들은 바로에게 가서 잘못된 것이 아니냐고, 불합리하다고 호소했지만 바로는 조금도 굽히지 않고 완고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대로 했지만 이스라엘의 상황이 더욱 악화되자 모세는 하나님께 어찌 된 일이냐고 묻습니다. 6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제 바로에게 힘을 행사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자신이 여호와임을 알리시겠다고 여러 번 강조해서 말씀하십니다. 2절에 나는 여호와이니라라고 말씀하셨고, 3절에서는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경험하지 못했던 여호와의 의미를 이제 깨닫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과 가나안 땅을 얻는 과정에서 깨닫게 될 것은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대로, 한 번 하겠다는 일을 반드시 주도적으로 이루시는 여호와라는 사실입니다. 자신이 여호와이심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행위에 어떤 누구도 방해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614절에는 모세와 아론의 족보가 등장하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는 형제인 모세와 아론을 인격적으로 그들의 조상 때부터 알고 계셨고, 일관되게 자기 백성을 움직여 오신 분이심을 말합니다. 동시에 그들은 특별한 자들이 아니라 77절이 말하는 대로 80대 노인들로써 족보 속에 인물들과 같은 인간들에 불과했던 자들임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여호와이심을 드러내시기 위해 별 볼일 없는 히브리 노예들 속에 있던 사람들을 애굽왕 바로 앞에 세우셨습니다. 그들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여호와이심을 드러내는 일에 그런 모세와 아론을 메신저로 사용하셨습니다.

 

    본문 5장에서 77절 까지의 큰 틀은 하나님과 바로의 대결 구도입니다. 바로는 여호와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권한을 주장하며 고집합니다. 앞의 52절에서 바로는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듣고는 여호와가 누군데 내가 그의 말을 들어야하냐라고 반문을 했고, 이어서 감독관들을 통해 이스라엘을 더욱 옥죄었는데 본문은 그것을 특별히 자세히 다룹니다. 벽돌 만들기에 필요한 짚을 공급하지 않는 사건은 얼마든지 간략하게 다룰 수 있는 내용인데 길게 다루는 것은 애굽왕 바로의 권위를 하나님의 신적 권위와 대비시키기 위한 것 같습니다. 짚을 공급하지 말라고 바로가 명령한 것이 그대로 이뤄지고 신하들이나 이스라엘 노예들이 저항할 수 없었습니다. 바로가 여호와께 대적하는 막강한 존재로 묘사되는 것입니다. 작업반장인 이스라엘 기록원들은 바로에게 사정을 봐달라고 간청하러 갔다가 거절당하고는 여호와의 이름을 모세를 저주하는데 사용했고, 69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혹한 노동 때문에 마음이 상해서 모세의 말, 즉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어떤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인들은 바로가 주는 두려움에 눌려 있었을 뿐입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모세마저 두려워하고, 위축되지 않았습니까? 바로는 막강한 국력과 군사력을 배경으로 하나님처럼 자기 말로 지시해 이스라엘을 더욱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그런데 611, 29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바로에게 다시 말을 전하라고 모세에게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바로를 굴복시킬 능력을 즉시 사용하시지 않고 자신이 여호와이심을 알리시는 말을 다시 하라고 다시 격려하십니다. 그 일을 위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자신이 누군지를 다시 설명하셨습니다. 자신이 약속을 기억하고 지키는 신실한 존재이고, 바로의 압제에 두려워 낙심하는 자들을 출애굽 시켜서 약속된 땅으로 들어가게 하실 분임을 설명하셨습니다. 그것으로 자신이 이스라엘의 주인, 세상의 주인 여호와임을 증명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내용을 바로에게 다시 전하라고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바로를 일단 말로 상대하셨습니다. 본문의 대결 구도는 우리로 하여금 바로의 말여호와의 말씀 사이에서 누구의 말을 더 두려워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은 출애굽기 1장에서 이미 산파들을 통해 교훈되었던 내용이기도 합니다.

 

    이 세상은 마치 바로와 같습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도록 막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살아계신 하나님을 아는 것이 참된 복일 것인데, 세상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아는 것 보다 다른 것들에 전념하도록 마음을 빼앗습니다. 세상은 우리를 재미와 취미, 경쟁과 성공, 걱정과 두려움 등에 눈이 가려져서 중요한 것을 볼 수 없게 만듭니다. 마치 바로가 이스라엘을 고된 노동 아래에 묶어 둔 것처럼, 딴 생각을 하면 더 무거운 종살이를 당하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통제했던 것처럼 인간들은 속박과 두려움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이 세상 헛된 것에 인생을 낭비하고, 죄에 굴복하면서 살게 만듭니다. 세상은 하나님께로 가는 것을 차단합니다. 사탄은 세상을 그렇게 왜곡시켰습니다.

 

    바로는 그것이 사람을 다루고 자신의 권력을 지키는 방법이고 지혜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분간은 그것이 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존재와 능력을 당장 드러내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로는 여호와가 별 볼일 없는 존재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잠시 후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애굽으로부터 해방시키실 것입니다. 자신이 진정한 신이시고, 세상의 진짜 주인이심을 여호와이심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저 한 순간의 능력 대결, 힘으로 신속하게 해결하지 않으시고 본문에서처럼 바로에게 말씀을, 자신의 뜻을 먼저 전달하고 알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통해 경고하시고 결국에 행하신 것처럼, 모세를 통해서도 계속 경고하시고 결국 행하셨습니다. 그렇게 바로가 거절하고 하나님을 부인해도 모세와 아론을 계속 보내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과 뜻을 성경으로, 복음 전파로 세상 속에 계속 알리십니다. 그러다가 때가 되면 인간과 이 세상이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이뤄지는 것을 보게 하십니다. 이미 예고 하셨던 것이 빈말이 아님을 알게 하십니다.

 

    사람이 경고를 듣지만 자기 생애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실현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기도 하고, 애굽의 여러 바로들이 죽고 요셉을 모르는 새로운 바로가 세워진 것처럼 옛사람은 가고 새로 오지만 하나님은 죽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계셔서 자신이 하신 말씀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그것을 붙잡도록 자신이 여호와이심을 계속 강조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지혜는 하나님을 대적하면서 자기 살길을 지키려는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순종하는 것에 있습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말씀만 하시다가 끝나는 분이 아니시고 여호와로서 능력을 반드시 드러내시는 분임을 알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