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4:1-31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로 가서 출애굽 명령을 전하라고 하셨지만 모세는 자신이 그런 일을 할 수 없다고, 그리고 백성들이 자기 말을 믿지 않을 것이라고 핑계를 댑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함께 하시겠다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이 스스로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 조상들의 하나님이라고 전하라 하셨습니다. 또 하나님께선 애굽이 순순히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주지 않을 것을 아시기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셔서 애굽과 바로를 다루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무모하게 일을 시키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고, 필요한 능력들을 행하실 것이라고 모세에게 일러주셨습니다. 이 정도면 모세가 순종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하나님의 뜻에 따를 수 없다고 계속해서 저항합니다. 본문 1절을 보면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 말을 믿지 않을 것이라고, 하나님이 자기에게 찾아오신 것을 사람들이 믿지 않을 것이라고 또 핑계를 댑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직접 경험할 표적을 주십니다. 첫 번째는 모세가 손에 있는 지팡이를 던졌더니 뱀으로 변했다가 그 뱀의 꼬리를 잡으니 다시 지팡이가 되는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모세가 손을 품속에 넣었다가 빼니 손이 피부병에 걸려 하얗게 되었는데, 다시 품에 넣었다가 빼니 원래대로 회복되는 일이었습니다. 모세는 자신이 먼저, 혼자 경험한 이 두 가지 표적을 나중에 애굽에 가서 사람들 앞에 보여주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그런 표적으로도 사람들이 믿지 않을 것이라며 버티려는 속마음을 아셨는지 8절, 9절을 보면 ‘그들이 첫 번째 표적을 보고 믿지 않으면 두 번째 표적을, 첫째 둘째 이적도 믿지 않으면’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세 번째로 나일강 물을 퍼다가 마른 땅에 부으면 피가 되는 표적을 보이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앞의 3장에서 모세가 자기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을 핑계하자 그에 대답을 하시고 이어서 모세가 묻기 전에 애굽이라는 큰 장애를 하나님께서 다루실 것이라고 말하신 것처럼 여기서도 한두 가지 표적으로는 사람들이 믿지 않을 것을 하나님께서 이미 알고 계시고 그에 대한 대비책도 이미 가지고 계신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런 놀라운 표적을 경험한 모세가 놀라서 하나님 말씀에 드디어 순종했습니까? 아닙니다. 10절을 보면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라고 말하면서 또 버팁니다. 첫 번째, 두 번째 이적으로도 믿음이 생기지 않는 인간의 모습을 모세가 이미 보여주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 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이런 내가 너를 돕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도 모세는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라고 말하면서 굽히지를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드디어 화를 내시면서 형 아론을 붙여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모세는 장인 이드로에게 허락을 받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지팡이를 들고 가족과 애굽으로 출발합니다. 그 때 하나님은 또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바로 앞에서 표적들을 행할지라도 바로가 불순종할 것인데 그 때에 바로에게 할 말을 모세에게 알려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네가 하나님의 맏아들 이스라엘을 보내지 않기 때문에 너의 맡아들을 죽일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그 일이 있고 나서 모세가 숙소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죽이려 하셨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즉사시키시려 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아마도 모세가 갑작스런 병에 걸리게 하신 것 같습니다. 아내 십보라는 남편의 그 위기를 단순한 육체의 문제로 생각하지 않고 영적인 원인으로 해석하는데, 그것이 할례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성령께서 십보라를 깨닫게 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십보라는 아들을 할례해서 그 잘라낸 포피를 남편 발 앞에 놓아 살려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하셨을까요? 그것은 22-23절에서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네가 보내 주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의 말씀과 관련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 모세는 하나님께서 애굽과 바로를 징계하신다는 예고를 들으면서 그 전에 자신이 징계를 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알았어야 합니다. 바로가 하나님께 고집을 드러내기 이전에 모세가 하나님 앞에 강퍅함을 드러내는 고집스런 대적자였습니다. 그러므로 바로의 장자가 죽는 것을 보기 전, 모세는 자신의 아들이 죽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상태를 깨달았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세나 그 아들을 직접 죽이시지 않고 깨닫게 하시려고, 모세 자신에게는 육체적 위기를, 아들에게는 할례의 고통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 하신 일과 그 아들의 할례가 말하는 두 번째 의미는 모세의 준비됨을 위해서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워지는데 아들에게 할례를 시행하지 않은 것은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할례는 모세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을 언급할 외적인 기본 조건이었습니다. 그의 어떤 외적 역량이 아닌 하나님이 아브라함이래로 자기 백성에게 요구하신 내용을 지키는 것이 최소한의 조건이었습니다. 모세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건드리신 것입니다.
세 번째 의미는 모세가 이스라엘의 구원을 먼저 개인적으로 미리 경험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모세는 아기 때 물에서 구원받았고, 광야 생활을 했고, 시내산 즉 호렙산에 올라갔고, 바로 앞에서 보여야 할 표적을 먼저 경험했고, 열 가지 재앙 중 마지막 재앙인 생명을 위한 피흘림을 경험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경험하기 전 모세가 먼저 앞서 경험했다는 것을 출애굽기가 말하는 이유는 모세가 바로 구약의 어떤 인물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풍성하게 예표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장면들이 예수님의 인생장면들과 오버랩 되게 하는 효과를 주면서 예수께서 이미 자기 백성들과 함께 하셨고, 구원하실 모든 백성들보다 앞서서 모든 일들을 겪으셨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므로 24절에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 하셨다는 것은 모세의 반항을 꾹 참으시다가 순간 갑자기 울컥하셔서 죽이려 하신 것이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애써 참으면서 설득하시다 이제 애굽으로 출발하려는 모세를 죽이셨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를 정말 죽이려 하셨다면 십보라가 손을 쓰기 전에 죽이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의 위협마저도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는 과정에서 필요했던 것입니다.
결국 본문이 무엇을 말합니까? 모세가 그만큼이나 준비가 안 되어 있었고,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모범적인 자는 아니었고, 자기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은 사라져서 이제는 배신감과 체념 속에서 사는 자였고, 자기가 말을 잘 못한다고 하면서도 온갖 핑계를 대면서 할 말은 다하는 자였고, 하나님이 보여주시고, 들려주시고, 신비한 표적을 자기 몸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하셨는데도 버티는 그런 인간이었음을 말해줍니다. 모세는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정작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은 것은 그 자신이었습니다. 그가 애굽으로 못가겠다고 여러 가지 이유를 들었지만 근본적인 것은 하나님에 대한 불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모세를 결국 자기 말씀대로 애굽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피조물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 뜻대로 결국 이루시는 하나님이심을 모세를 다루시는 과정에서도 드러내셨습니다. 그래서 아내 십보라를 통해 그를 살리셨고, 아론을 붙여주셨고, 백성들이 부정적인 반응을 할 것이라는 모세의 우려와는 달리 마지막 절이 말하는 대로 백성들은 모세의 말을 믿고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본문에서 모세는 믿음이 있었습니까? 그저 끌려가는 수준이었습니다. 믿음에는 그런 하나님 편에서 이끌어 가시는 부분, 사람에게는 수동적인 것이 있습니다. 자기 걱정과 이런저런 판단을 하면서 순종하기 싫어하고, 의심하는 자를 하나님이 어떻게든 끌어가시는 하나님의 열심히 믿음을 가능하게 합니다. 사람이 얼마나 하나님을 신실하게 의존하고 순종하느냐와 관계없이 하나님이 자신의 성실하심을 보여주십니다. 그러나 결국은 인간에게 적극적인 믿음이 생겨나야 합니다. 우리는 모세를 생각하면서 믿음 없는 것에 핑계를 대서는 안 됩니다. 모세는 예수님을 예표, 예비한 자이지 우리가 본받아야할 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완전하게 순종하신 예수님을 흠모하고,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하신 것을 따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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