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전도서 (10) (전 11:1-12:7)

따뜻한 진리 2019. 10. 13. 20:53

전도서 11:1-12:7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우리가 자기의 미래,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안다면 그것은 현재에 결정적 영향을 미쳐야 할 것입니다. 미래의 자기 모습을 본다면 현재의 어떤 잘못을 빨리 고쳐야 할지 깨닫게 될 것이고, 현재 무엇을 더 열심히 해야 할지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 미래에 대해 분명한 사실을 하나 알고 있으면서도 지혜를 얻지 못합니다. 그 미래의 일은 바로 죽음입니다. 사람들은 반드시 있을 미래의 일인 죽음을 통해 어리석은 욕심과 야망을 버리고, 현재 무엇이 중요한지를 분별하고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인류가 전도자가 말한 죽음으로부터 지혜를 얻는다면 일반은총 범위 내에서 만큼은 꽤나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입니다. 정말 어리석고, 헛된 불행들이 덜 저질러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11장에서 호흡처럼 사라지는 짧은 인생 속에서 어떻게 선을 추구할 수 있을지 적용방법을 이야기 하고, 그리고 12장에서는 죽음을 넘어 마주할 심판을 강력하게 경고합니다. 먼저 111을 보면 떡, 음식을 물에 던지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은 해석하기가 어렵습니다. 주로 씨앗을 물이 있는 곳에 심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남은 식량으로 무역을 하라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사람이 죽음을 앞 둔 허무한 인생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전도자가 말한대로 죽음을 주신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맡기는 자유와 지혜를 갖기보다 죽음을 회피하거나 쾌락을 추구하며 자기연민, 자기사랑에 빠지기 쉽습니다. 죽음 때문에 자기주장과 자기집착에 더 빠지지 않고, 이 짧은 인생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드리게 만드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래서 1절은 하나님이 주신 자원을 내어 놓고 나누는 것, 하나님의 은혜를 확장하는 것과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들을 말하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습니다.

 

    이어서 3절에서 8절은 하나님의 섭리가 대체로 질서 있지만, 항상 예측 가능한 것은 아님을 인정하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지혜를 사용하며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시기에 허락해 주시는 대로 결과를 받아 누려야 합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고, 허무한 인생이지만 선을 추구하고, 아름다운 것을 기뻐하고, 사랑을 위한 수고를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문맥 속에서 물에 떡을 던지는 것과 재앙이 닥치기 전 일곱, 여덟 사람에게 나눠주는 일을 하라는 것이 바르게 이해될 수 있습니다. 짧은 인생이라도 자기에게 매몰되지 말고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도의 삶의 태도입니다.

 

    전도서 대부분에서 전도자가 죽음 아래에서의 인생에 관해 주로 이야기 했다면, 마지막에 다다른 119절부터 12장에서는 죽음 너머의 심판에 대해 적극적으로 말합니다. 그리고 심판을 준비하는 지혜를 부각시키기 위해 청년을 교훈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왜 젊은이가 죽음과 심판을 경고하기에 적합한 대상입니까? 인생 중 가장 아까운 시기, 중요한 것을 놓처서 후회하기 쉬운 시기가 그 때이기 때문입니다.

 

    젊은 청년의 시기에 대해 명언들이 많은데 그중 유사한 교훈을 담고 있는 명언 세 가지를 소개하겠습니다.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아나톨 프랑스가 말했습니다. ‘만약 내가 신이었다면 나는 청춘을 인생의 끝에 두었을 것이다.’ 영국 총리였던 허버트 헨리 애스퀴스젊음이 인생에서 조금 더 늦게 찾아오면 이상적일 텐데.’라고 말했고, 영국의 극작가였던 조지 버나드 쇼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기 너무 아깝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명언들의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젊은 시절이 인생 중 가장 찬란할 때인데 정작 그 시절에는 그 소중함을 모르고 무엇을 해야 할지 아는 지혜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누구나 안타까워하고, 부러워할 그 젊은 시절을 생각하게 하면서 인생의 지혜를 간절하게 찾고 깨닫도록 말한 것입니다. 어느새 철들고, 세상을 알만하고, 자기를 성찰할 만하면 늙어 있을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어서 속히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도전한 것입니다.

 

    전도자는 12 1절부터 7절에서 그 나이가 드는 것을 당황스럽고 서글프게 묘사했습니다. 1절부터 7절에 대한 주된 해석방법은 사람의 신체부위가 노화되는 것을 전도자가 문학적으로 표현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해석을 반대하고 그 묘사들이 폭풍우처럼 몰려오는 생의 마지막 순간이나 종말을 묘사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는 신체의 노화로 해석하는 것이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부분을 그 관점에서 번역한 새번역 성경으로 읽어보면 이렇습니다. ‘젊을 때에 너는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고생스러운 날들이 오고, 사는 것이 즐겁지 않다고 할 나이가 되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두워지기 전에, 먹구름이 곧 비를 몰고 오기 전에, 그렇게 하여라. 그 때가 되면, 너를 보호하는 팔이 떨리고, 정정하던 두 다리가 약해지고, 이는 빠져서 씹지도 못하고, 눈은 침침해져서 보는 것마저 힘겹고, 귀는 먹어 바깥에서 나는 소리도 못 듣고, 맷돌질 소리도 희미해지고, 새들이 지저귀는 노랫소리도 하나도 들리지 않을 것이다. 높은 곳에는 무서워서 올라가지도 못하고, 넘어질세라 걷는 것마저도 무서워질 것이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고, 원기가 떨어져서 보약을 먹어도 효력이 없을 것이다. 사람이 영원히 쉴 곳으로 가는 날, 길거리에는 조문객들이 오간다. 은사슬이 끊어지고, 금그릇이 부서지고, 샘에서 물 뜨는 물동이가 깨지고, 우물에서 도르래가 부서지기 전에, 네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육체가 원래 왔던 흙으로 돌아가고, 숨이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네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우리는 젊은 날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젊을 때만 누릴 수 있는 것, 젊을 때 반드시 해야 할 일들에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켜보시고 심판하실 것을 생각하면서 해야만 합니다. 그 심판을 생각하지 않으면 대부분의 인간들은 젊을 때 그 젊음을 제멋대로 사용합니다. 젊음을 게으름과 타락의 시간으로 망칠 것입니다. 우리는 전도자가 말한 청년의 때, 젊은 때가 10대 후반에서 20대 후반의 때라고 한정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원하고 마음먹은 일을 할 수 있는 건강과 기회를 붙잡을 수 있는 상태라면 젊은 것입니다. 옛 사람들보다 현대인들은 젊음을 더 오랫동안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만큼이나 더 오랜 시간을 자기 욕망을 위해 낭비하고, 전도자가 말한 지혜에 굴복하지 않는 기간만 늘리는 경우가 대부분 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해도 아직은 자기가 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에 주저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교회를 다니긴 해도, 그런 생각으로 신앙생활 하는 자들이 상당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주일학교 때는 성실하다가 청년의 시기에 허랑방탕하게 지내고, 젊음을 잃고 나서 교회를 찾는 이들이 있습니다. 물론 뒤늦게 하나님이 은혜 주셔서 거듭나고 쓰임 받는 일들이 있지만, 조금이라도 젊을 때, 어릴 때 신앙의 깊이를 더하지 않으면 나중에 바른 신앙을 가질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역사 속 탁월한 신앙 인물들도 거의 젊은 시절에 회심해서 하나님께 헌신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젊음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기를 미룰 이유가 아니라 더욱 부지런하게 주님을 알고자 힘쓰고, 부지런히 순종해야 할 짧은 순간들입니다. 젊음은 방종의 기회가 아니라 순종의 기회여야 합니다. 전도자는 순식간에 지나가는 호흡 같은 인생 속에서 조금이라도 젊을 때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를 갖추라고 말합니다. 인생이 짧지만 하나님 앞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순간들, 기회들은 더 짧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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