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1-8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어떤 사람은 그 내용 중에 괴물들이나 심판의 내용이 나오는 것과 묵시록, 계시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영화들이 두려운 내용을 다루기 때문에 요한계시록을 읽는 것 역시 두려워 한 적이 있을 수 있습니다. 또 요한계시록은 성경 중에서도 가장 잘못 해석되고, 잘못 사용되어 온 대표적인 책입니다.
요한계시록은 다른 선지서들과 함께 제 멋대로 해석하기 좋은 상징들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특히 시한부 종말론자들과 이단들이 자신들의 잘못된 믿음을 정당화하는데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들은 성경의 다른 부분은 건전하게 해석하다가도 요한계시록을 다룰 때는 비밀스런 것을 자기들만 해석할 수 있다는 듯이 설명을 합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구약과 신약이 말하고 있는 내용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 책은 자신을 제외한 성경의 65권의 책들이 말하지 않는 새로운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경 전체의 핵심을 정확하게 요약해 주고 있습니다. 이 책은 모든 만물의 주인이 누구이며, 그 주인이신 하나님께 적대시 하는 세상을 말하고 있고, 주님이 오시기까지 허락된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고난과 위협을 겪지만 결국 승리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고난을 먼저 겪으신 분이시고, 함께 겪고 계시며, 최종심판을 통해 자기 백성에게 승리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게 요한계시록은 다른 성경이 그러하듯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하면서 어린양이신 그분께 영광을 돌립니다. 요한계시록은 우리에게 누가 적그리스도인지, 예수님의 재림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세상이 어떤 무기나 재앙으로 멸망할지를 알아내도록 돕는 것이 아니라 성도가 예수 그리스의 영광을 자랑하며 최종 심판 때까지 주님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는 것을 기뻐하도록 만듭니다.
요한계시록은 흔히 역사주의, 과거주의, 미래주의로 해석되어 왔습니다. 역사주의는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이야기, 상징들이 등장하는 순서가 역사와 교회사 속에 순차적으로 일어나는 사건들과 일치한다고 관점입니다. 과거주의는 이 책이 기록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예언들이 다 이뤄졌다고 보는 것인데, 상징과 심판들이 로마제국을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에 로마의 멸망과 함께 성취 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미래주의는 미래의 종말 직전에 있을 일들을 요한계시록이 말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휴거나 7년 대환난, 적그리스도의 통치, 최첨단 무기들이 등장하는 전쟁처럼 자기시대의 위기가 재림이 임박한 증거라고 주장하는데 계시록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과거, 현재, 미래 모두에 대해 말합니다. 그것은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따로 말한다는 것이 아니라 어느 시대에나 항상 일어날 일에 대해 말한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물론 그리스도의 재림, 최후 승리, 천국의 완성 같은 마지막 때의 사건을 언급하지만 교회 즉,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느 시대에나 겪는 일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어느 시대에나 그렇듯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결국 개입하셔서 악을 심판하시고 자기 백성과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실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초림부터 마지막으로 다시 오실 재림의 사이에서 계속 있을 반복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본문 1절에서 8절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의 중심 주제가 무엇인지, 우리가 어떻게 읽어야 할지를 여기서 말하고 있습니다. 1절이 말하는대로 요한계시록의 인간 저자는 예수님의 제자였던 사도 요한입니다. 90세쯤 된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주신 예언적 환상을 기록한 것입니다. 처음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계시라는 뜻인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계시라는 뜻입니다. 또 2절에서도 말하듯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이 책으로 증거한 것입니다. 요한은 젊을 때 살아계신 예수님을 직접 경험하고 증거하는 삶을 살았듯, 그가 생애 마지막에 신비스럽게 경험한 것도 살아계신 삼위일체 하나님, 특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언한 것입니다. 이것으로 요한계시록의 주제는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신구약 성경의 결론에 해당하기 때문에 구약 성경을 잘 모르거나 신약에서 말하는 예수님이 누구이신지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바르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전체 404 구절 중 278개 구절이 구약 성경을 언급하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구약성경을 직접 인용하지 않지만 신약의 다른 어떤 책들보다 구약성경을 훨씬 많이 인유하고 있습니다. 인유란 암시하는 것, 드러나지 않게 넌지시 말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출처인 원래 문맥에서 의도된 의미가 아니지만 계시록을 읽는 자에게 일어날 입체적 효과를 위해 요한이 사용한 것입니다. 구약에 익숙한 성도라면 요한계시록이 말하는 내용들이 구약 어디에선가 언급되었던 내용임을 분명하게 또는 어렴풋이 떠올리도록 인용한 것입니다. 특히 이사야, 스가랴, 에스겔, 다니엘서의 내용들이 요한계시록에서 인유로 발견됩니다. 그래서 1절의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은 다니엘 2장에서 다니엘이 느부갓네살의 꿈을 해석해주는 과정에서 ‘후일에 일어날 일’이라고 말한 것을 요한이 인유한 것입니다.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은 일어날 수도 있는 단순한 가능성이나 예상이 아니라 요한이 자기 시대에 이미 시작된 것을 보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해석한 꿈이 바벨론과 악한 나라의 멸망으로 계속 성취되었듯 요한은 자신의 글이 이미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으며, 마지막 때까지 일어날 것임을 암시한 것입니다.
이어서 4절을 보면 요한은 소아시아 일곱 교회라는 당시 존재했던 구체적인 신앙 공동체들이 이 편지의 일차 독자임을 밝힙니다. 물론 요한은 자신의 이 묵시적 편지가 자기 시대의 일곱 교회에만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일곱 교회가 겪는 문제가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모든 교회들이 겪는 문제이기 때문에 모든 교회, 모든 성도들이 이 책에서 답을 발견할 것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즉 요한은 자신이 경험한 환상을 편지로 전할 때 자기가 이해한 것을 기록했고, 교회들도 그 의미를 어렵지 않게 이해할 것을 기대하면서 기록했을 것입니다. 편지라는 것은 보내는 자와 받는 자가 서로의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가운데 실제적인 유익과 지침을 주려고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받는 사람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지 힘들게 해독해야 하는 암호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을 잘못 해석하는 자들은 그런 편지라는 형식조차 무시한 것입니다. 그래서 신천지는 일곱교회를 사도요한 당시의 실제 존재했던 교회가 아니고, 요한도 자기가 본 환상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기록했다고 말합니다. 그래야만 계시록의 의미가 지금까지 감추어져 있다가 한국 땅에 와서 이만희에 의해서, 이만희 자신을 위해 해석되는 것이 타당해지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의 해석은 다 잘못되었고, 감추어져 있었고, 사도요한 마저도 몰랐어야만 자기 교주의 해석이 진짜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비밀스런 암호책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중심으로 성경을 이해하면 충분히 깨달을 수 있는 내용입니다. 성경의 다른 부분이 말하는 것과 다른 것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성경의 핵심을 분명하게 드러내 주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참 소망이 있음을 이 책이 깨닫게 해줍니다.
그래서 요한은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라고 말한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어떤 인물이 성도와 교회에 위로와 소망을 줄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서 죄인을 구원하신 그분을 믿는 자, 성령으로 인해 거듭난 자는 누구든 알아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예수님이 오십니다. 구원받지 못할 자들도 부인할 수 없는 영광 가운데 오실 것입니다. 성도는 자신을 지으시고, 다시 구원하시고, 영원한 나라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만날 그날을 소망하면서 현재를 인내할 것입니다. 영리 목적으로 설교를 스크랩, 캡처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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