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28-29장 김영제 목사 ( 하늘기쁨교회)
블레셋 여러 부족들이 연합해서 이스라엘을 총공격하기로 했습니다. 블레셋 가드의 왕 아기스는 다윗이 당연히 이 전쟁에 함께 할 것을 기대합니다. 다윗이 아기스왕을 속여서 얻었던 신뢰가 이제는 다윗을 위태롭게 하는 올무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다윗은 아기스에게 이스라엘을 공격했다고 거짓말을 했는데, 이제는 이스라엘을 정말 공격해야 하는 일이 생긴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가 빠진다고 하면 그 동안의 행동에 의심을 받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기스 왕의 결정에 따릅니다. 다윗은 엄청난 후회와 걱정에 사로잡혔을 것입니다.
전장의 반대편에서 위기를 맞은 사울도 이스라엘 사람들을 모아 전투 준비를 했습니다. 사울은 너무 두려워서 여러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기다렸지만 들을 수 없었습니다. 6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지라도 그에게 대답하시지 아니”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울은 거기서 포기하지 않고 다른 방법을 찾습니다. 그것은 신접한 여인, 영매를 찾아간 것입니다.
영매는 죽은 자를 살려내는 주술을 부리는 사람입니다. 영매를 찾아간다는 것은 우리가 단순히 생각해도 하나님 앞에서 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레위기 19:31과 신명기 18:9-14에서 우리가 귀신과 관련되거나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금지하셨습니다. 그런데 3절에 보면 사울은 사무엘이 죽었을 때 신접한 자들을 쫓아낸 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른 신앙을 세우는 것처럼 백성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이라는 대선지자가 사라진 틈을 타 사울이 종교적 리더십까지 가지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사울이 영매를 찾아간 일을 말하기 전에 앞서 그런 종교적 쇄신을 단행했던 것을 말함으로써 이제 와서는 쫓아냈던 영매를 다시 찾는 모순된 행동을 한다고 고발하는 것입니다.
9절을 보면 영매 자신도 죽은 사람을 불러내는 것을 꺼려하는 마당에 사울은 그 일을 시켰습니다. 그래서 영매는 사울의 요청대로 죽은 사무엘을 불러냅니다. 죽은 사무엘로 여겨지는 자와 사울이 대화를 했는데 그 내용은 사울이 하나님께 불순종한 사실을 재확인 시킨 것과(18절), 블레셋에 의해 아들들과 함께 죽는다는 것(19절)입니다. 이 사건이 하나님께서 영매에게 사무엘의 영혼을 허용하셔서 실제 생긴 일인지, 아니면 영매와 사울 모두가 악한 영에 의해 거짓된 의사소통을 한 것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본문이 말하는 분명한 것은 사울이 어떤 누구에게도 기대했던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사울과 하나님의 깨어진 관계가 재확인되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을 여전히 수단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말씀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반성의 기회로 삼지 않고, 그저 하나님에 대해 실망하고 영매를 신속히 찾았습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 하나님이 금하신 일도 서슴지 않은 것입니다.
사울은 큰 충격을 받고 하루 밤낮을 먹지도 못하고 누워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영매의 설득으로 사울은 일어나서 그녀가 준비한 음식을 먹었습니다. 사울이 영매에게 대접받는 것은 아비가일을 생각나게 합니다. 다윗이 아비가일에 게 음식을 제공받기도 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녀의 지혜로 영적인 도움을 받아 위기를 넘긴 것인데, 사울은 영매에게 아무런 영적 도움도 얻지 못하고 육적인 음식이나 겨우 제공받는 것으로 비교되는 것입니다. 마치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 식사를 한 것처럼 말입니다.
사울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다윗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계획대로 블레셋왕 아기스는 많은 군사를 소집해서 이스라엘을 향해 진치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그 대열에 속해 있었습니다. 다윗은 영락없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일에 가담해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거기 있었던 블레셋 장관들이 다윗을 알아보고는 그가 배신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함께 전쟁을 수행할 수 없다고 문제 삼았습니다. 아기스는 어쩔 수 없이 다윗을 돌려보냅니다. 6절에서 아기스는 전쟁에 함께 하지 못해서 다윗이 매우 아쉬울 거라 생각했는지 이런 위로를 합니다.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정직하여 내게 온 날부터 오늘까지 네게 악이 있음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다윗에게서 죄를 찾아볼 수 없다는 아비가일의 말이 반복되는 것처럼 들립니다. 다윗은 죽었다 살아났구나하고 생각했을 텐데 겉으로는 아기스 왕에게 자기가 왜 이 전쟁에서 빠져야 하냐고 불평을 하고, 못이기는 척 자기 사람들과 블레셋 거주지로 돌아갔습니다.
28장과 29장에는 다윗과 사울을 대조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다윗은 수동적이지만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경험하고, 사울은 능동적으로 도움을 구하나 아무런 답을 얻지 못합니다. 다윗은 비록 속이는 자였지만 당당한 것으로 그려지고, 사울은 수치스럽고 처량한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그리고 29:6절에서 다윗은 아기스에 의해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는 자로 높여지는데 28:16절에서 사울은 죽은 사무엘로 여겨지는 존재에 의해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로 언급됩니다. 또 다윗은 아기스로부터 동트는 새벽에 떠났지만 사울은 밤에 영매를 찾아갔다가 떠날 때도 들키지 않기 위해 밤에 움직였습니다. 어둠 가운데 다닙니다.
이러한 대조는 온갖 노력을 해도 사울이 몰락의 길로 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사울의 암울한 결말,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그동안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 수차례 기회를 주셨지만 사울이 무시했고, 하나님께서는 모든 상황을 통해 사울을 버렸다는 말씀(15:23)을 확증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을 직감하게 하는 블레셋의 대대적인 공격이 임박한 것입니다. 결코 피할 수 없는 예고 된 결말 앞에서 사울은 무능했고,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했습니다. 사울은 그동안 하나님이 자신을 버리셨다는 말씀에는 별 반응 없이 기회를 다 놓쳤습니다. 그런데 블레셋이라는 위기가 눈앞에 보이고 또 결국 죽을 것이라는 말에 안쓰러울 정도로 벌벌 떨었습니다. 그가 한 일은 사무엘을 찾는 일이었습니다.
사울은 오랫동안 사무엘을 의지했습니다. 그 둘의 사이는 친밀하고, 돈독했습니다. 사울이 기름부음을 받을 때 그 둘은 함께 음식을 나누고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신다고 하셨을 때 사무엘이 너무 슬퍼해서 하나님께 언제까지 사울 때문에 슬퍼하겠느냐라는 말을 들을 만큼 그랬습니다. 그러나 그 두 사람은 분명 달랐습니다. 사무엘은 어릴 적 하나님이 부르실 때 ‘주님 말씀하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단지 엘리 제사장이 시켰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그의 삶이 그랬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순종했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을 아꼈지만 말씀을 듣지 않는 사울과 달리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 귀 기울였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어떻습니까? 그의 이름은 요구하다, 간청하다라는 뜻의 샤알이라는 단어에서 나왔습니다. 사울왕은 전쟁을 앞두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달라고 사무엘에게 간청해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아말렉을 멸하라는 사무엘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사울은 다윗에게도 요구만 할 뿐, 자기를 더 이상 핍박하지 말라는 그의 부탁을 들어주지는 않았습니다. 이름 그대로 사울은 요구는 했지만 듣지 않았습니다. 영매의 도움으로 만난 사무엘이 진짜 사무엘인지 귀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존재가 18절에서 한 말 ‘네가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했다는 말은 정확한 지적입니다. 지난시간의 다윗의 말대로 사울은 다윗을 모함하는 자기 신하들의 말에 귀 기울였고, 죽음을 앞둔 그의 마지막에 그가 귀 기울인 대상은 어처구니없게도 영매였습니다. 자기가 만든 음식을 먹고 힘을 내라는 영매의 말을 사울이 듣습니다. 연약한 인간은 결국 누군가의 말에 순종하는 존재인데, 하나님이 아니라면 결국 사탄의 음성이나 다른 죄인들의 말에 현혹되기 마련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 역시 필요할 때 하나님을 찾고, 도와달라고 요구하지만, 하나님께 귀 기울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마치 부모의 말은 죽어라 불순종하면서 돈 떨어지면 찾아와 손 벌리는 철없는 자식과 같습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의 이야기들을 듣는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부모의 말을 잔소리로, 뻔한 말로 여기는 것처럼 하나님을 이미 잘 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귀로도 듣지 않을 뿐 아니라 귀로는 들어도 마음으로 듣고 순종하는, 진정한 의미에서 말을 듣는 일을 잘 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귀 기울이지 않는 우리 같은 죄인들에게 귀 기울이시는 분임을 성경이 말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선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와 구속주로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책임지시는 분이십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음성,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못하도록 항상 훼방합니다. 그러나 그의 말씀을 겸손히 들어 신뢰하고 흔들리지 않는 자는 비록 이 땅에서 어려움을 당할지라도 참된 복을 누릴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이 우리의 마음 밭에 뿌리내리고 열매 맺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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