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1:5-38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우리가 어떤 멋진 건축물을 볼 때 놀라는 것처럼, 본문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이 잘 지어진 것을 보면서 놀라움을 예수님께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예루살렘과 그 성전의 멸망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마지막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종말에 대한 예고는 누가복음에 여러 번 등장합니다. 12장에서 예수님은 혼인잔치 집에서 돌아올 주인을 기다리는 종들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생각지도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17장에서 하나님 나라에 관해 말씀하신 후에 인자가 다시 올 때의 징조들에 대해 말씀하셨고, 19장에서 예루살렘 성을 보시고 우시면서 돌 위에 돌이 하나도 남지 않는다고 그 끝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좀 특이합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멸망과 세상의 종말을 함께 예고하셨습니다. 6절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경고로 시작하셨지만, 10절에서는 나라들끼리의 전쟁과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을 말씀하시면서 세계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종말의 두려운 징조들을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20절에서는 예루살렘이 당할 멸망을 말씀하시다가 25절부터는 세상 어디에서나 일어날 종말의 징조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무화과나무 비유를 통해 온 땅에 임할 인자가 올 그날을 위해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중심도시 예루살렘이 로마에 의해 멸망하는 것과 세상의 종말을 겹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은 두 가지가 서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운명이 세상의 운명을 예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겪은 비참함은 이스라엘 자신의 죄 때문이기도 하지만 온 세상이 겪을 일을 미리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마지막과 세상의 마지막을 함께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끝이 있습니다. 옛날 고대인들도 세상의 끝, 종말을 예견했고, 현대인들도 과학적인 증거들로 지구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태양이 식고 지구도 현재와는 다른 상태가 됩니다. 그런데 그런 끝이 오기도 전에 인간들이 저지른 환경 파괴가 그 끝을 더 앞당기고 있다는 것도 인간들은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만 세상의 끝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끝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환경오염이나 핵전쟁이나 태양의 수명이 다 되는 것으로 종말이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예수님의 재림으로 끝납니다. 그 때 까지 자연재해나 전쟁이나 기근이나 이변들이 계속 일어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종말을 피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차피 망할 세상이니까 쾌락을 즐기자는 생각으로 종말이 주는 두려움을 회피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불안한 지구를 떠나 화성 같은 새로운 살 곳을 마련하려고 노력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재난들로 반복적으로 경고를 주시는데 사람들은 그 재난들을 피하려고만 하지, 재난 끝에 결국 오시는 예수님 앞에서 심판받을 준비는 하지 않는 것입니다. 앨런 머스크 같은 사람들이 화성에 가겠다고 하고, 여러 강대국들도 화성을 식민지화하겠다고 경쟁적으로 뛰어듭니다. 마치 인류가 종말을 피할 수 있을 것처럼 비전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지구를 벗어난 인간은 결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오염되고 위험해 처한 지구보다 화성이 나을 것이라고 기대들을 하지만 지구의 다양하고, 아름다운 환경을 경험한 인류는 그보다 척박한, 사막과 같은 행성에서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가장 완벽한 이 땅에서도 만족하지 못하고, 문제를 일으키고, 허무함을 느끼는 인간이 과연 지구와 비교할 수 없이 삭막한 공간에서 자신의 지능과 기술만 믿고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요? 화성에 가도 종말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오염되지 않고, 수명이 많이 남아 있는 행성으로 간다고 해서 종말을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오시면 종말이 오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인간은 종말의 징조를 통해서 경고하시는, 부르시는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칩니다. 34절에서 예수님은 종말을 예고하는 사건들 때문에 어떤 자들은 마음과 생각이 어두워져서 시간 낭비만 하다가 아무 준비 없이, 덫에 걸려들듯 주님을 맞이하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심판을 준비해야 합니다.
예루살렘의 멸망과 세상의 난리와 이변들의 반복되는 패턴이 종말을 예고할 뿐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역시 종말을 예고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두려운 하나님의 공의와 은혜로운 하나님의 사랑을 분명하게 보여주듯이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세상의 종말에도 공의로운 처벌과 은혜로운 구원의 완성이 함께 일어날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드러났듯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도 두 가지로 나누어지는, 갈리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그 때 까지 성도들은 고난을 겪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이 싫어하는 하나님이 드러나시는 것을 막고, 자기 죄를 들추는 율법과 복음을 가리려고 그리스도인들을 미워합니다. 역사상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고난을 자주 겪었습니다. 지금도 겪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고난을 겪을 때 주님이 빨리 오셔서 끝내주시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도 곧 오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여러 핍박을 겪었던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기들 시대에 곧 오실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직까지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들이 수많은 고난과 핍박을 감당해야 할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우리의 생각과 다르게 오래 걸리는 것은 아직 구원해야 할 자들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13절에서 예수님은 자기 백성들이 잡혀가고 고난 당하는 것이 복음이 드러날 기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아직 오시지 않는 것은 아직 구원을 받아야 할 자들이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 성도는 기다리면서 고난을 겪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인내의 과정에서 낙심하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인생의 남은 시간, 이 지구의 남은 역사는 주인이신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주님은 속히 오십니다. 요즘은 두려운 징조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서 예수님이 오시지 않을 것이라고 방심할 수 없습니다. 또 반대로 전 지구적 위기가 자주 일어나고 있다고 해서 곧 당장 오실 것이라고 속단해서도 안 됩니다. 사람이 생각하기에 예수님이 당장 오시지 않지만 곧 오신다고 말씀하신 이유는 인류의 역사가 매우 짧기 때문입니다. 인생과 인류의 시간은 짧습니다. 긴 우주의 역사에 비하면 인류가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시간은 아주 잠깐에 불과합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우주의 시간도 짧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곧 오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짧은 시간을 통해 영원한 선물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주님을 위해 살 수 있고, 종말이 찾아올 것 때문에 허무함을 느끼거나 방탕하지 않을 수 있고, 아무것도 남지 않을 세상이지만 주님이 드러나시고 영혼들이 구원 얻도록 수고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시간 개념에서 재림이 지체되는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그것이 잃어버린 자들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기에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아름답고 웅장했던 예루살렘의 성전보다 더 진정한 성전이신 영광스러운 주님을 바라봅시다. 무너진 건물 성전처럼 무너질 이 세상의 도시들보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합시다. 그 나라를 위해 깨어 헌신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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