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누가복음 강해 (40) 누가복음 24:1-53

따뜻한 진리 2022. 5. 1. 19:20

누가복음 24:1-53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일이 지난 다음 날 즉 새로운 칠 일의 첫날에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무덤에 찾아온 여인들이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진 것을 보고 슬퍼하고 당황하고 있을 때 두 천사가 나타나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두 천사는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 분명히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그것을 잘 기억하라고 일러주었습니다. 놀란 여인들은 제자들에게 찾아가서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알렸지만 제자들도 처음에는 믿지 않았습니다.

 

    열한 명의 사도(가룟유다 없음)들 외에도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진 소식을 전해 들은 많은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약 11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엠마오로 가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그 두 사람과 함께 걸으셨습니다. 두 사람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의 얼굴에 긴장과 슬픔이 가득한 것을 보시고 왜 그러냐고 물으시자 두 사람은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예수님의 죽음과 시신이 사라진 일을 아직도 모르냐면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고난을 당하고 영광스런 부활을 하는 것을 구약 성경이 이미 말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이해와 믿음이 더디냐고 말씀하시면서 모세 오경을 비롯한 선지서들을 설명해주셨습니다. 해가 저물어 하룻밤 머물 곳을 찾아 들어갔고, 식사 중 예수님께서 떡을 떼어주실 때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는데 그 순간 예수님이 사라지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구약을 설명해주실 때 마음이 뜨거웠던 것을 기억하며 열한 사도에게 찾아가 있었던 일을 말했습니다.

 

    그 두 제자가 사도들에게 그 말을 하고 있는데 예수님이 그 자리에 또 나타나셨습니다. 제자들은 너무나 놀라서 유령인 줄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못 박힌 손과 발을 보여주셨고, 구운 생선도 드시면서 자신이 귀신이 아니라 부활한 몸을 입고 오셨음을 알려주셨습니다. 44절을 보면 예수님은 그 자리에서도 자신의 죽음과 부활이 모세와 선지자들이 줄곧 말해 온 내용이라고 또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다른 어떤 증거보다 구약성경을 근거로 자신의 부활을 설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과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그 일을 위해 성령이 오시기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축복하시면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이것이 누가복음의 마지막입니다.

 

    본문에서 무덤에 찾아 온 여인들에게 천사들이 예수님의 부활이 오래 전부터 예고된 것임을 기억시켰고 예수님도 제자들과 사도들에게 두 번이나 자신의 부활이 구약 성경을 통해 예고된 일이라는 것을 재차 강조하셨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이나 부활하신 후에나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말씀하실 때 구약을 근거로 사용하셨습니다. 구약이 부활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신명기 32장 39절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 줄 알라 나 외에는 신이 없도다 나는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빼앗을 자가 없도다.”, 이사야 26:19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들을 내놓으리로다.”, 호세아 13장 14절 “내가 그들을 스올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사망에서 구속하리니 사망아 네 가시가 어디 있느냐 스올아 네 독침이 어디 있느냐”, 시편 49편 14-15절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스올의 권세에서 건져내시리로다.” 욥기 19:25-26절 “내 구세주께서 살아 계신다는 것을 내가 이미 알고 있으니, 결국 그가 땅에 서실 것이네 내 가죽이 썩은 후에라도, 이 몸이 썩은 후에라도 내가 하나님을 뵐 것이네.” 또한 에스겔 37장에서 마른 뼈들이 살아나는 환상은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하는 것에 대한 은유적 예언일 뿐 아니라 부활에 대한 실제적인 개념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부활을 암시하는 내용이 구약에 더 있습니다.

 

    이렇게 구약이 부활을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태어나게도, 죽게도, 다시 살게도 하시는 분이시므로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신뢰하고 경외하라는 뜻입니다. 죽어도 끝이 아닌 것을 신뢰하는 믿음은 현재를 살아가는 나에게 영향을 주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런 구약의 예고와 고백들이 사실임을 증명하고, 그 시작을 열어 놓으신 사건입니다. 또 구약이 그토록 예고한 부활이 예수님을 위해서였습니다. 바로 그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을 알아보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부활은 이 세상에 대해 ‘너희가 죽인 그 예수가 나의 아들이다’라는 성부 하나님의 증명이고, 사탄이 패배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 구약에서 계속 예고된 부활이 진짜 있다는 것이 예수님의 부활로 증명되었으니 부활을 믿는 자로서 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즉 죽음을 두려워 말고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을 드러내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땅의 것에서 자유롭게 되어서 새로운 삶을 살게 만듭니다. 죄와 죽음에서 자유롭게 되어서 하나님을 위해서 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은 새 창조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여섯 날동안 천지를 창조하신 것은 기이하고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데 이 우주 창조보다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인을 새 피조물로 회복하시는 새 창조입니다. 본문 1절이 옛 개념의 일주일의 마지막 날인 안식일이 끝나고 새로운 한 주간의 첫날에 예수님의 부활이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그것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새로운 시작이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온 우주가 창조될 때 빛이 있으라고 명령하신 그 말씀, 로고스이실 뿐 아니라 그 우주의 첫 일 주일의 수준을 뛰어넘은 새로운 시간 단위 속에서 새 창조를 시작하신 분이십니다.

 

    새 창조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부활로 이 새 창조를 보여주셨을 뿐 아니라 자기를 믿는 자들을 새사람 되게 하시는 새 창조의 사역을 계속하십니다. 성령께서 그 일을 가능케 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자기만 새로워지신 것이 아니라 자기를 믿는 자들을 새롭게 하십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연합한 자는 멸망할 육체 속에서 죄에 굴복하는 허무한 삶을 중단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아무리 인생을 긍정적이고 유쾌하고 화려하게 살아도 허무함과 죽음에 대한 불안을 감추기 위한 노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새 생명을 얻은 자는 멸망당할 죄인을 자녀 삼아주신 분, 영원한 생명을 주신 분을 위해 살아갑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은 오늘 내용으로 끝나지만 누가는 그런 새 생명을 얻은 자, 부활을 살아가는 자들의 삶이 무엇인지를 이어서 보여줍니다. 그것이 바로 사도행전입니다. 누가복음과 한 책이나 마찬가지인 사도행전은 예수님 때문에 새 사람이 되어서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않고 주를 위해 살았던 사도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의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이 되어 사는 것, 거듭난다는 것은 그런 뜻입니다. 자기를 위해 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입니다. 현재의 생명을 잃을까 두려워하지 않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주님을 위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그런 부활 신앙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나중에 죽어서 육체의 부활을 경험하기 전, 이미 이 땅에서 새 사람이 되어 부활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생명은 어떤 고통이나 몸의 죽음이 빼앗을 수 없는 것이기에 우리 모두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주님을 위해 삽시다. 이 세상 누구보다 예수 안에 있는 우리야 말로 잃은 것이 없는 자들 아니겠습니까! 로마서 8장에서 바울이 고백한대로 우리도 고백합시다.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영리 목적으로 설교를 스크랩하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