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창세기 강해 (1) 창세기 1:1

따뜻한 진리 2022. 5. 8. 18:14

창세기 1:1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창세기는 하나님의 말씀인 신구약 성경의 첫 번째 책입니다. 창세기에는 세상의 시작, 에덴,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한 이야기, 바벨탑 사건, 노아 시대의 홍수 심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모든 것들은 그저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문제들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말해줄 뿐 아니라 이 모든 것들을 통제하시고, 시작부터 이미 완성 계획을 가지신 하나님에 대해 알려줍니다. 사람들이 왜 죄성을 가지고 있는지, 세상이 왜 이렇게 가고 있는지. 하나님이 이런 세상을 어떻게 새롭게 해서 완성하실지에 대해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나라를 어떻게 이루시고, 그 나라 백성들을 어떻게 만들어가시는지에 대해 전망하게 합니다.

 

    이 창세기는 창조 때 아담에게 주어진 책이 아닙니다. 창세기는 아담 이후 최소 몇천 년이 지난 뒤 출애굽 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주신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창세기를 통해 자기들을 애굽에서 구원해주신 하나님이 여러 신들 중 한 분이 아니라 유일한 신이신 것을 알아야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구원해주신 분이 처음부터 자신들을 있게 한 창조자이심을 알아야 했습니다. 또한 창세기는 단지 이스라엘의 시작일 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시작을 말합니다. 아브라함 한 사람을 시작으로 온 세상 가운데서 자기 백성을 만드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창세기는 우리의 시작, 우리 구원의 시작입니다.

 

    창세기 1장 1절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고 말합니다. ‘태초’는 ‘시작’을 의미하는데, 이 시작이라는 뜻의 히브리어 ‘레쉬트’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끝을 의미하는 반의어 ‘아하리트’라는 단어와 짝을 이루면서 주로 사용됩니다. 신명기 11장 12절 “연초(레쉬트)부터 연말(아하리트)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욥기 8장 7절 “네 시작(레쉬트)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아하리트)은 심히 창대하리라”, 이사야 44장 6절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속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이사야 46장 10절 “내가 시초(레쉬트)부터 종말(아하리트)을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뜻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이렇게 태초에 사용된 히브리어 단어는 끝을 의미하는 단어와 짝을 이루어 사용되는 관용어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1장 1절이 “태초”라는 말로 시작한 것은 이 내용을 듣거나 읽은 사람이 이어서 마지막, 끝을 의미하는 표현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예상하게 만드는 표현인 것입니다. 방금 인용했던 이사야 46장에서 “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듯 즉 이 세상은 시작부터 종말이 계획되어 있던, 창조론이 종말론과 함께 나타났던 시작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에서 ‘천지’는 하늘과 땅을 말하는데, 이 표현은 하나님께서 그저 하늘과 땅만 만드셨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만드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극과 극의 요소, 반대되는 양쪽의 것을 짝지어서 전체를 묘사하는 문학적 표현입니다. 고대 근동 사람들은 여러 다양한 신들의 활동으로 하늘과 땅의 부분 부분들이 만들어졌다고 믿었지만 유일하신 하나님은 자신이 온 우주의 모든 것을 만드셨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음으로 ‘창조하다’라는 단어는 두 가지로 생각해야 합니다. 먼저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우주를 만드셨습니다. 이 우주 공간에 있는 모든 물질들을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들, 최첨단 관측 장비로도 결코 찾아낼 수 없는 것들도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두 번째로 ‘창조하다’는 말은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에게 질서와 기능을 부여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고대인들은 이 두 번째 의미를 더 중요시했습니다. 왜냐하면 무에서 유의 창조, 물질의 존재가 어디서 시작되었는가는 과학이 발전된 현대인들의 주된 관심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고대인들도 물질, 존재의 기원에 대해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 과학이 세상 모든 사물을 분자, 원자, 쿼크 단위로 쪼개서 화학적으로 관찰하고 이것들이 어떻게 생겨나고 서로 작용하는지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과 달리 고대인들은 만물의 조화, 연관, 현상, 기능들 같은 움직임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수준에서 관찰할 수 있는 것이었고, 그런 것에 인간의 삶이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대인들은 기능과 질서에 관심이 더 많았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현상들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태양, 달, 구름, 바다, 불 같은 것이 각각 신들이거나 그것들을 주관하거나 신들이 다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창세기를 통해 그런 것들을 모두 자신이 만드셨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 신들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해, 달, 별들이 신이 아니라 그것들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입니다. 창세기의 이러한 선언은 당시 사회 속에서 획기적인 내용이었습니다.

 

    이러한 창세기 1장 1절은 2절부터 나오는 내용의 제목이나 요약이 아니라 절대적 시작을 말합니다. 2절부터 시작되는 우리가 관찰 가능한 우주의 시작 이전에 하나님이 천상의 나라와 천사들까지도 만드셨다는 것을 1절이 말합니다. 하나님이 이 우주를 만드셨다는 것은 이 우주가 끝나도 하나님은 영원히 계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주의 모든 것이 왜 여기저기에 있는지, 어떤 목적을 위해 기능하는지를 결정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세상을 시작하신 이가 통제하지 못하실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시작하셨으니 모든 것을 끝내실 수도 있는 절대 주권자입니다. 그것이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의 의미입니다. 성경은 이런 하나님 앞에 우리를 겸손하게 만듭니다. 끝도 없이 광활한 우주, 냉혹하고 공허한 이 우주 속에서 우리 존재와 삶이 어떤 의미인지는 살아계신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찬양을 받기 위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창조를 통해서만 영광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로도 찬양을 받기 원하십니다. 창조와 구원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구원은 새 창조이기 때문입니다. 존재하지 않았던 자들을 존재하게 하신 일도 놀라운 일이지만 멸망 당할 자들을 자녀로 삼아주시는 일은 더 놀라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약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창조를 배경으로 고백합니다. 히브리서 1장 2절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골로새서 1장 15절-16절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고린도전서 8장 6절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우리는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또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것이 이 세상이 생겨난 목적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하나님을 알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목적에 맞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길 원합니다. 영리 목적으로 설교를 스크랩, 캡쳐하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