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2-5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이 시간에는 하나님의 창조사역 중 첫째 날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사는 지구를 생명이 살만한 곳으로 만드시기 전에는 2절이 말하듯 땅은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깊음 위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물 위에 바람이 불 듯 하나님의 영이 움직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시자 빛이 생겨났고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시면서 낮과 밤이 생겨났습니다. 이것이 첫째 날입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 먼저 칠일 창조 동안의 시간 개념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칠 일 창조의 내용들은 시간 순서대로 일어난 일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집을 짓듯 하나님께서 창조의 모든 것들을 주관하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첫째 날의 빛은 태양처럼 빛을 내는 행성들의 창조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빛을 내는 광명체들은 넷째 날 만들어집니다. 그러므로 첫째 날부터 후렴구에서 반복되는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는 지금의 24시간 중 밤의 길이 만큼을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일주일 단위 시간 속에서 사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시간에 갇혀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를 칠 일의 단위로 설명하신 것은 그것이 고대 바벨론에서 시작되어 지금까지 사용되는 일주일의 단위,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시간 단위에 맞춰서 창조를 칠일로 설명해주신 것입니다. 단위는 그렇지만 창조가 이뤄진 시간의 길이가 우리가 생각하는 하루의 24시간, 총 6일 동안의 창조라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시편 90편 4절을 보면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라고 말합니다. 같은 밤의 길이라도 깊은 잠에 빠질 때 긴 밤이 한순간이듯 우리에게는 엄청나게 긴 시간이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짧은 순간과 같다는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칠 일 창조에 사용된 시간 표현들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면 2절에서 땅이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깊음 가운데 있었다는 것은 텅 빈 상태로 막막하고 생명이 살 수도 없고, 생명을 낳을 수도 없는 불모의 상태였음을 말합니다. 그런 황량한 땅 위를, 물 위를 하나님의 영이 날아다니고 계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영이라는 말은 히브리어 ‘루아흐’라는 단어로 되어있는데 바람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하나님의 영이 나타나심을 바람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다 위와 땅 위를 미끄러지는 듯 운행하는 바람을 경험했습니다. 어디서입니까? 바로 출애굽 때 홍해를 통해서입니다. 이스라엘은 쫓아오는 애굽 군대 때문에 홍해 앞에서 죽게 되었는데 하나님이 그 바다에 길을 내실 때 큰 바람이 부는 것을 경험했고, 그 가운데 생긴 길을 따라 바다를 건넜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바람이 자신들에게 생명을 주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이동할 때 항상 불구름 기둥이 이스라엘을 인도했습니다. 그리고 성막 주변에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구름이 덮였습니다. 그것은 자기 백성에게 생명을 주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였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신명기 32장 11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마치 독수리가...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또 민수기 11장 31절을 보면 “바람이 여호와에게서 나와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내리게 한지라”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창세 때 세상을 감싸셔서 생명력 있는 곳으로 만드셨던 성령은 자기 백성을 만들어내시고, 인도하시는 과정에서도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수면을 운행하시면서 땅을 덮으실 때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말씀대로 빛이 나타났습니다. 이 빛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은 2절에서 등장한 하나님의 영을 경험했을 뿐 아니라 3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생겨나게 하신 이 빛도 경험했습니다. 출애굽기 34장을 보면 모세가 십계명 증거판을 들고 내려올 때 얼굴에 광채가 나서 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두려워했습니다. 모세는 율법을 예수님께 받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성전보다 큰 자라고,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율법을 완성하러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모세에게 율법을 주신 분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율법을 받으면서 빛이신 예수님을 만났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또한 성막의 성소 안에서 예수 그리스를 의미하는 등잔대를 통해 그 빛을 보았습니다. 시편 104편 2절을 보면 “주께서 옷을 입음 같이 빛을 입으시며 하늘을 휘장 같이 치시며”라고 말하고,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을 세상을 비추는 빛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서 주님은 빛나는 분으로, 또 성도들은 빛이신 주님 때문에 빛나는 흰옷을 입은 자들로 묘사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첫째 날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겨난 빛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어떤 의미로 나타나실지를 처음부터 나타낸 것입니다. 하나님이 흑암이었던 땅에 빛을 만드셔서 어둠이 어둠인 줄 알게 하셨듯, 빛이신 예수님에 의해 세상의 어둠이 구별됩니다. 또 이 빛은 어둠으로부터의 구별을 만들어낸 것뿐 아니라 시간이 시작되게 했습니다. 이 세상은 시간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태어나고 죽고, 그 안에서 계속 변하는 시간의 영역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시간은 빛과 관계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빛이시라는 것은 이 세상의 시간들이 예수님이 드러나시기 위한 과정임을 말합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라고 말씀하신 뜻이 그것입니다.
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밝은 시간을 낮이라고, 어둔 시간을 밤이라고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 낮과 밤을 구분하시고 그것이 매일 반복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이 어둠에서 빛을 만드신 그 시작의 첫째 날을 우리가 날마다 확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날이 밝아 올 때마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생각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낮과 밤을 구분하신 또 다른 이유는 창조의 목적이 완성될 때, 더 이상 밤이 없는 때를 고대하게 하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2장 5절을 보면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라고 말하듯 세상 모든 것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으로 충만할 때가 태초부터 예고된 것입니다.
이렇게 창조의 첫날은 태초부터 삼위 하나님이 함께 하신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여 품으셨고,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시기 전부터 이 세상에 함께 하고 계셨습니다. 성부께서 말씀으로 이루실 일을 위해 성령께서 사랑으로 배경과 토대를 마련하셨고, 성자께서 순종으로 등장하셨습니다. 이것은 아기를 가질 수 없는 처녀 마리아에게 천사가 나타나 말한대로 성령이 마리아를 덮고 예수님이 잉태된 장면에서 나타났고,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처럼 내려와 덮으시고 하늘에서는 성부의 음성이 들린 장면에서도 나타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자신을 바람으로 빛으로 나타내신 이야기는 이스라엘이 출애굽 과정에서 경험했듯 광야에서도 하나님이 자신들의 삶을 충분히 인도하시는 분이심을 신뢰하게 했습니다. 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뿐 아니라 우리를 인도하고 계시고 사랑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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