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창세기 강해 (10) 창세기 3:14-24

따뜻한 진리 2022. 7. 10. 22:28

세기 3:14-24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어 죄를 범한 인간, 그리고 피조세계가 함께 겪을 고통에 대해 예고하셨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진짜 심판이 아니라 미뤄진 심판을 예고하는 집행유예 선언이었고, 타락했어도 하나님이 주신 다양한 복을 보편적으로 누릴 수 있는 은혜도 담겨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의심하고 불순종한 하나님이 여전히 사랑이시고 은혜로운 분이심을 확인시키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언제 있을지 모르는 최종심판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일반은혜와 일반 저주는 진짜 해결책이 아니었습니다. 죄인인 인간의 상태를 바꿀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했습니다.

 

    사람은 선악과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도리어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책임지고 해결하시는, 원래 계획대로 이루시는 분임을 오늘 본문이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선 여자와 뱀의 관계를 갈라놓으셨습니다. 여자와 뱀이 서로 원수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들도 서로 적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아담으로부터 나온 인류가 하나님 편에 선 자들과 사탄의 편에 선 자들로 나뉜다는 뜻이기도 하고, 하나님이 구원하실 자들이 사탄과 죄에 대한 반감을 갖게 하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회개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구원받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을 즐거워하기 때문에 죄를 즐거워하지 않고, 도리어 미워하며 그것을 조장하는 사탄을 적대시하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이 뱀의 후손의 머리를 상하게 하지만 뱀의 후손은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사탄이 예수님을 핍박하고 십자가에 죽게 하겠지만 결국 예수님이 그 죽음과 부활로 승리하실 것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여자의 후손을 통한 구속 계획을 말씀하시자 아담은 자기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고 불렀습니다. 아담이 다른 동물들의 이름 짓는 일은 앞서 했었지만 하나님이 주신 아내의 이름을 짓는 일은 이 시점에 비로소 했습니다. 죄를 지어 심판을 기다리며 살아야 할 인간에게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여자의 후손을 믿고 기다리는 것에 있습니다. 아담은 아내의 정체성을 거기서 발견하고 생명이라는 뜻의 하와라고 지은 것입니다. 아담이 아내의 이름을 하와로 지은 것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에 대한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아담이 하와라는 아내의 이름짓기로 하나님께 믿음의 반응을 하자 하나님께서는 벌거벗음은 두 사람의 몸을 가죽옷으로 입히셨습니다. 두 사람은 이미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해 무화과 나뭇잎으로 치마를 만들었지만 그것으로 진정 죄를 덮고 사라지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에덴에 있던 어떤 동물을 죽게 하셨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아담과 하와의 죄로 인해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게 된 몸, 하나님 앞에서 설 수 없는 몸을 가리기 위해 짐승이 피흘렸다는 것은 이후 성막 제도에서 죄인이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피흘림이 필요한 것과 같은 이미지를 공유합니다. 또한 여자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림으로 죄인의 죄가 씻겨지고 가려져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음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죄인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여김을 받을 수 있는가, 즉 칭의의 이미지를 이 가죽옷이 담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에서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라고 말하듯 죄인이 그리스도로 옷 입어 새사람 되게 하시는 것을 하나님은 가죽옷으로 먼저 보여주셨습니다.

 

    22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먹은 인간이 생명 나무 열매까지 먹어서 영생할까 하노라’하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처럼 될까봐 하나님이 두려우셔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그렇게 이해하는 것은 하나님 성품을 왜곡한 뱀의 말을 따르는 것입니다. 인간이 생명나무를 먹을 것을 하나님이 염려하신 것은 인간의 타락한 상태가 계속되는 것을 막으시려는 동정심이고 배려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고, 사탄 편이 된 인간이 그 상태로 영원히 사는 것은 참혹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타락한 남녀가 생명나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으신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남녀를 생명나무로부터 멀어지게 하신 것은 그들의 죄로 인한 비참한 상태가 영원히 계속되지 않도록 해결하실 것을 암시하고 보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은 구원받는 자들이 생명나무로 가까이 가게 하십니다. 우리는 생명나무이신 예수님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2:7절을 보면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라고 하나님이 사도 요한을 통해 말씀하신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선악과를 두고 맺으신 언약을 행위언약이라고 설명했었습니다. 그런데 행위언약에 실패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을 중보자로 두시고 구원을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을 은혜언약이라고 부릅니다. 행위언약은 아담의 행위에 달려 있었지만, 은혜언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얻습니다. 첫 아담이 온 인류를 절망에 빠지게 했지만 하나님은 그 후손 둘째 아담으로 소망을 주셨습니다. 첫 아담은 죄에 대해 무책임했지만 둘째 아담 예수님은 죄가 없음에도 자기 책임으로 여기고 피흘리는 희생을 하실 것이 예고되었습니다. 첫 아담은 선악과 열매를 먹었지만 둘째 아담은 생명나무 열매를 우리에게 주실 것을 약속이 예고합니다.

 

    이렇게 범죄한 우리 조상에게 하나님은 은혜언약으로 여자의 후손에 대한 약속, 가죽옷, 생명나무에 대한 전망을 보이셨습니다. 이 모든 요소들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의지하게 만듭니다. 오늘 본문의 이 약속이 역사를 움직이고 있습니다. 믿음의 선진들, 조상들은 믿음을 가지고 그 여자의 후손이 누구일지, 언제 오실지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예수님이 오셔서 약속이 성취되었습니다. 그 아들의 몸이 어떻게 상했고, 어떻게 우리의 죄를 씻고, 어떻게 사탄을 이기셨고, 어떻게 우리의 생명이 되시는지 역사 속에 드러났습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신다는 것이 예수님으로 확실하게 증명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이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에 마침내 완성됩니다. 지금까지 신실하신 하나님은 앞으로도 영원토록 신실하신 분이심을 우리는 믿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선하시고,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에 대한 그런 믿음을 가지고 구원이 완성되기까지 인내하면서 신앙생활하고 주님 앞에 서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