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창세기 강해 (38) 창세기 24:1-6

따뜻한 진리 2023. 1. 29. 18:26

창세기 24:1-6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가 죽은 후 땅을 구입한 것에 이어 아들 이삭의 아내를 구합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종에게 이삭의 아내를 구하는 두 가지 조건을 제시합니다. 하나는 자기가 살던 가나안 땅 족속이 아닌 고향 땅에서 구하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며느리감을 이 가나안 땅으로 데리고 오라는 것입니다.

 

    먼저 아브라함이 아버지 데라와 함께 살던 갈대아 우르, 즉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며느리감을 구한 것은 거기에 아브라함의 형제(하란은 일찍 죽음) 나홀의 후손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족속 중에서 며느리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세상이 흔히 하듯, 또 이스라엘 여러 왕들이 그랬듯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정략결혼을 시켜 안정과 확장을 시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가나안 땅을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그런 방법으로 이뤄질 것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방법을 신뢰했고, 그렇기 때문에 이후에 멸망할 가나안 족속 중에서 이삭의 아내를 찾지 않았습니다.

 

    다음으로 아브라함은 이삭의 아내 될 여자를 자기가 살던 가나안 땅으로 데리고 오게 했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12:7) 그 약속의 땅에 계속 머물러야 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선택된 여자가 만약 자기 집을 떠나 아브라함과 이삭이 있는 땅으로 오지 않겠다고 하면 그 여자는 안된다고 종에게 말했습니다. 이삭의 아내 될 여자가 약속의 땅으로 와야지 반대로 이삭이 여자가 있는 곳으로 가서는 절대 안 된다고 아브라함은 종에게 맹세하게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그런 임무를 받고 메소포타미아까지 갔는데 아마 몇 주가 걸렸을 것입니다. 종이 그곳에 막상 도착했지만 너무 막막했을 것입니다. 낯선 지역에서 어디에 어떤 여자가 있는지 알지 못하고, 혹 여자를 만나도 어떤 사람인지 어찌 파악하고 결정하겠습니까? 그래서 종은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순조롭게 며느리감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도를 다 마치기도 전에 아름다운 처녀가 나타나 자기에게도 물을 마시게 하고,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지친 낙타에게도 물을 마시게 했습니다. 신기하게도 그런 행동은 아브라함의 종이 하나님께 기도했던 내용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여자라면 그런 행동을 보이게 해달라고 기도했었습니다. 게다가 그 여자는 아브라함이 원했던 나홀 집안의 리브가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종은 리브가의 집에 찾아가 오빠 라반에게 자기가 온 이유와 하나님이 자기 주인 아브라함에게 어떤 복을 주셨는지와 그곳에 오기까지 하나님이 절묘한 타이밍에 리브가를 만나게 하시고 알아보게 하신 은혜를 설명한 후 아브라함이 보낸 귀한 선물들을 주었습니다. 라반이 리브가에게 종과 함께 가겠냐고 묻자 리브가는 가겠다고 대답했습니다. 리브가는 며칠에 걸쳐 떠날 준비를 하고 종과 함께 이삭이 있는 가나안 땅으로 출발했습니다. 긴 여정 끝에 종과 리브가가 이삭이 있는 곳 가까이에 도착했을 때 마침 들에 나가 거닐며 기도하던 이삭을 멀리서 리브가가 발견합니다. 이삭은 리브가를 아내로 맞이합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 먼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사람의 결정이 어떤 관계인지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자기한테도 물을 줄 뿐 아니라 낙타에게도 물을 주면 하나님이 정하신 여자로 알겠다고 기도한 것은 우리가 함부로 따라 할 수 없습니다. 사사기에서 기드온이 땅은 말라 있고 양털만 젖으면, 또 반대로 양털은 말라 있고 땅만 젖으면 하나님이 자기를 사용하시려는 뜻이 사실이라고 믿겠다고 제시한 일 역시 일반화해서 따라해서는 안됩니다. 그런식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서는 안 됩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그런 조건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겠다고 한 것은 점을 치듯 특정한 징조나 현상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려는 것이기보다 손님과 낙타에게까지 우물물을 제공하면서 배려하고,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최소한의 사람 보는 통찰력을 가지고 하나님께 인도하심을 구한 것입니다. 종은 단지 자신이 기도한대로 행동하는 여자를 만났기 때문에 확신한 것이 아니라 그 이후에 일어난 전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신한 것입니다. 그래서 종은 성실하게 그 오라비 라반에게 설명했고, 또 리브가에게 함께 떠날 것인지 의사를 물었던 것입니다. 만약 리브가가 떠나지 않겠다고 하면 종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대로 그 여자가 아닌 줄 인정하고 다른 여자를 찾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기도한 몇 가지 내용대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된 것 자체를 신기해하면서 이건 절대적인 하나님의 뜻이라고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배우자를 두고 기도하는 것을 예로 든다면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배우자 상을 두고 구체적으로 기도할 뿐 아니라 성경 전체 속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과 조화가 되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또 상대방이 하나님이 정하신 배우자라고, 자기가 응답받았다고 밀어붙여서는 안 되고, 상대에게 신앙이 있는지 점검해야 하고, 상대에게 정상적인 호감과 신뢰를 얻도록 상식적인 노력도 해야 합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지속적인 인도하심과 확신이 있다면 그 길이 하나님이 주신 길이고, 그 사람이 내가 선택해야 할 사람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인도해주신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이후에 일어나는 어려움과 감당해야 할 문제들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줄 알고 감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기본적인 자세이지 동전 던지기 하듯, 손에 뱉은 침을 쳐서 튕기는 쪽으로 가듯 하나님께 표적을 구하거나 싸인을 달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철저히 의존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의 좋은 자질과 성품을 통찰하기도 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본문이 결혼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본문은 68절이나 되는, 창세기에서 가장 긴 장인데 결혼을 다룹니다. 그것도 유사한 내용을 두 번 반복하는 문학적 기법을 사용하는데, 아브라함의 종이 주인에게서 출발해서 리브가를 만나기까지 있었던 일을 두 번 다루는데, 한번은 그 일이 일어난 시점을 따라서이고, 다른 한 번은 그 동일한 내용을 라반에게 설명하려고 반복한 내용입니다. 본문은 그저 ‘아브라함의 종이 라반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라고 짧게 말하고 넘어가지 않고, 우리가 1절부터 27절에서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을 34절에서 48절까지 또 확인시켜 줍니다. 그것은 그 내용이 매우 특별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본문은 그저 사람 사이의 결혼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의 연합, 혼인 문제를 묘사하는 것 같습니다. 1800년대 후반에서 1900년대 초반을 살았던 아다 룻 하버슨이라는 성경학자는 본문의 종이 성령을 상징한다고 봤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이삭과 리브가를 연결하기 위해 일한 것처럼 성령께서는 성도와 그리스도를 연결하신다는 것입니다. 또 종이 자신을 보낸 아브라함과 아들 이삭을 라반과 리브가에 소개한 것처럼 성령은 자신을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성도에게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또 종이 아브라함이 가진 귀한 보화들을 선물로 주면서 아브라함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대하게 한 것처럼 성령께서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모든 선한 것들을 선물로 주시는 하나님을 소망하게 합니다. 또 종이 리브가에게 이전의 삶을 버리고 속히 약속된 땅으로 떠나 신랑에게로 데리고 간 것처럼 성령은 성도가 옛 삶을 버리고 구주께로 가기를 강권하십니다. 또 멀리 보이는 이삭을 자기 주인, 리브가의 신랑이라고 종이 가르쳐준 것처럼 성령은 신부인 성도가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게 하십니다. 이런 해석은 알레고리, 즉 이야기에 등장하는 요소들이 숨겨진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여기는 해석입니다. 이단들이 알레고리 해석을 제멋대로 해서 자기 교주가 성경에서 예고된 자라고 속이는 일에 사용하기 때문에 교회들이 알레고리 해석을 매우 경계하지만 그러나 무시해서도 안됩니다. 성경은 알레고리를 자주 사용하고 있고, 삼위일체 하나님 자신과 하실 일들을 알레고리, 은유, 비유로 묘사하는 것들이 매우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아브라함의 종이 성령 하나님을 비유하고 있다는 해석은 생각해볼 만한 관점이라고 생각됩니다.

 

    정리하면 이삭이 배우자를 얻는 과정은 초조함의 연속이었습니다. 이삭의 아내로 적합한 여인을 어디서 어떻게 만날지, 가족들은 어떻게 설득할지, 신부가 결혼에 동의해도 과연 자기 고향을 떠나서 따라가겠다고 할지 어려운 고비가 연속되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하나님께서 그 일을 이루셨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위태롭게 보이는 일련의 과정을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죽은 이후에도 언약을 신실하게 실행해 나가실 하나님을 보게 만듭니다. 이후 약속된 후손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것이 좌절되는 것처럼 보여도, 위험한 고비를 만나도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것을 소망하게 만듭니다. 여자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가 약속된 일을 성취하는 것을 사탄이 방해하고 인간의 죄로 인해 수많은 장애물이 있었지만 결국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시고 부활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약속하신 일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어지는 이삭, 야곱, 모세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하나님의 언약 파트너들이 위기를 만들어냈지만 하나님이 결국 약속의 땅을 주시지 않았습니까! 마찬가지로 이 세상이 하나님을 향해 어떤 태도를 보이든, 교회들마저 위태롭게 되어도 하나님은 약속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약속된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실 것입니다. 신랑과 신부처럼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시키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분이심을 우리는 풍성하게 알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자기 인생에서 경험한 것보다 더 많은 증거들이 우리 손에 들려 있습니다. 그것이 성경입니다. 우리의 짧은 인생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역사 속에서 믿음의 선진들이 경험한 하나님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믿음에는 그것이 포함됩니다. 그런 믿음 얻게 하시려고 성경을 주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