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창세기 강해 (41) 창세기 25:19-34 (2)

따뜻한 진리 2023. 2. 12. 22:09

창세기 25:19-34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우리가 지난 시간 이삭을 중심으로 본문을 살펴봤다면 이 시간에는 그의 자녀들인 에서와 야곱을 중심으로 살피겠습니다. 이삭의 아내 리브가는 20년 동안 불임 상태였다가 에서와 야곱 쌍둥이를 잉태하게 됩니다. 그 둘은 뱃속에서부터 갈등을 일으켰습니다. 아담부터 시작된 언약의 계보 안에서 태어난 자녀들은 갈등을 드러냈습니다. 가인과 아벨, 이스마엘과 이삭처럼 에서와 야곱도 평화롭지 못했습니다. 그런 불화는 나중에 요셉과 그의 형제들 사이에서도 나타납니다. 에서의 후손들은 에돔 족속을 이루고, 야곱의 후손들은 이스라엘을 이루는데, 하나님께서는 리브가의 뱃속에 있을 때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길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이스라엘과 에돔이 불편한 관계가 될 것을 예고한 것입니다.

 

    본문의 에서와 야곱 각각에 대한 묘사는 언어유희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에서의 몸은 털옷을 입은 짐승 같아서 그는 짐승을 잡으러 다니는 사냥꾼이 되었습니다. 그는 몸이 붉었는데 붉다는 뜻의 히브리어 단어 ‘아드모니’에서 에돔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어 그의 후손들은 에돔 족속으로 불립니다. 그리고 붉은 에서는 붉은 죽 때문에 자신의 장자권을 넘기게 됩니다. 에서가 그렇게 겉모습으로 설명이 된다면 야곱은 그의 행동과 연관됩니다. 야곱은 발뒤꿈치라는 뜻인데, 이것은 바짝 따라잡는다, 붙잡는다는 뜻으로도 사용됩니다. 야곱은 태어날 때 형의 뒤꿈치를 잡고 따라 나왔고, 배고픔에 정신을 못 차리는 형에게서 음식을 미끼로 뒤에서 장자권을 가로채 잡습니다.

 

    에서는 사냥하러 갔다가 너무 피곤하고 배고파 야곱이 만들고 있던 떡과 붉은 죽을 달라고 했는데, 야곱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형 에서가 가진 장자권을 자기에게 넘기면 음식을 주겠다고 거래를 제안했습니다. 에서는 참을 수 없는 배고픔 때문에 동생의 말에 알았다고 대답하면서 음식을 받아 먹습니다. 본문은 야곱에 대해서는 평가하지 않고, 에서에 대해서만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겼다고 평가합니다. 신약의 히브리서 역시 에서에 대해 ‘한 그릇 음식을 위해 장자의 명분을 판 망령된 자‘라고 평가합니다. 그런데 주의해야 할 것은 본문이 에서에 대해 이런 평가를 내린다고 해서 야곱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 단순히 야곱처럼 하나님이 주신 복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되자는 결론을 내릴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태복음 11장 12절에 나오는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라는 말을 인용해서 천국은 공격적으로 달라붙어 얻으려는 자들의 것이라고, 천국은 침노하는 자들의 것이라면서 야곱처럼 열정적으로 빼앗듯이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복을 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물론 성도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열심과 적극성이 있어야 하지만 그것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짓을 해서는 안 됩니다. 에서가 자기 기질에 따라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장자권을 쉽게 넘긴 것은 분명 잘못입니다. 그러나 야곱도 계획적이고 간사한 자였습니다. 야곱이 장막에 주로 거주하는 조용한 자라는 것이 그가 온순하고, 교양있고, 도덕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야곱의 조용함은 차분함과 진지함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주도면밀한 범죄를 계획하는 은밀함이기도 했습니다.

 

    야곱이 그런 식으로까지 얻으려 했던 장자권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것은 인간적으로는 아버지의 축복을 받아 아버지가 가진 권한과 재산의 상당 부분을 유산으로 물려받는 것이었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과 후손에 대한 약속을 아버지 이삭에 이어 물려받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길 것이라고 말씀하신 내용을 두고 야곱이 작은 자가 자기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이해했다면 야곱은 하나님을 신뢰했어야 합니다. 장자권이 없는 자신을 장자가 되게 하실 하나님을 믿었어아 합니다. 야곱은 자기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경험한 하나님을 신뢰했어야 합니다. 늙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이삭을 주신 하나님, 이삭의 죽음 직전에 양을 준비해주신 하나님, 또 아버지와 어머니의 오랜 불임 후 기적적으로 자신과 형을 주신 하나님을 신뢰했어야 합니다. 그의 어머니 리브가는 그렇게 아들에게 조상들의 하나님,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을 이야기하면서 하나님이 어떻게 장자가 아닌 야곱에게 장자권을 실현하실지 신뢰하고 소망하게 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믿음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야곱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장자권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리브가나 야곱이나 장자권에 대한 이해가 세속적이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에게 장자권은 인간적인 복을 물려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장자권 거래는 제대로 된 거래였을까요? 죽 한 그릇으로 형과 장자권 거래가 성사되었을까요? 아닙니다. 야곱은 자기가 만든 거래가 완전한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어머니 리브가와 함께 몰래 아버지와 형을 속여서 장자권을 가로챕니다. 야곱은 형과 맺은 거래가 정상적이지 않고, 거의 효력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붉은 죽을 가지고 거래한 내용은 그저 자기 양심을 속이고, 형이 따지려 하면 ‘전에 나한테 장자권을 넘겼잖아!’라고 우기기 위한 사건이었습니다. 에서와의 거래가 효력있는 것이었다면 그는 당당하게 아버지에게 밝히고, 가족이 모두 인정하는 가운데 장자권을 물려받았을 것입니다.

 

    야곱은 간사한 짓을 했습니다. 야곱은 애초에 자신이 형과 맺은 장자권 거래가 말도 안 되는 짓이었음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야곱은 장자권 거래를 하기 전 평소에 농담처럼 지나가는 말로 형에게 약속을 받아내고는 나중에 ‘나한테 그걸 주기로 했었잖아’라고 생떼를 부렸을 것입니다. 상대방이 급박하고 정신 없을 때 판단력이 흐린 것을 이용해 자기는 진지한 약속을 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일을 하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아마 형 에서가 평소에 그런 말에 잘 이용당했기 때문에 야곱은 결정적으로 장자권을 가지고 형을 농락한 것입니다. 에서는 그런 야곱이 장자권을 가지고 거래를 할 때 응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야곱의 말에 넘어갔습니다. 그런 점에서 에서가 장자권을 가볍게 여긴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에서가 아무리 장자권을 우습게 여겼다해도 야곱이 속임수로 장자권을 탈취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야곱은 장자권에 대한 이해에 문제가 있었고 그것을 추구하는 방법도 잘못되었습니다. 장자권을 통해 야곱의 본성과 수준이 드러났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그런 야곱의 잘못을 사용하셔서 그가 이삭을 이어 언약의 계보를 이어가는 당사자가 되게 하십니다. 야곱이 이기적이고, 기회주의적이고, 비열한 인간성을 가졌지만 하나님이 그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전혀 부적합한 자에 베풀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냅니다. 부적합한 야곱을 다루시고 인도하시는 그 은혜는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 민족 역시 야곱을 닮은 자들이기에 그들 역시 하나님이 어떻게 다루실지를 암시합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사용하실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는 장자권을 얻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삭은 혹독한 고난을 겪으면서 그 장자권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닫습니다. 그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에 이어 야곱의 하나님으로 불리는 일에 사용되기 위한 검증과 연단을 받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어떤 의미인지를 깨닫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약속하신 복은 세상 사람들이 얻는 복과 달랐습니다. 세상 복은 사람이 노력으로 얻거나 남의 것을 거래를 통해 사거나 뺏어서 가질 수 있는 것이지만, 하나님이 야곱에게 약속하신 복은 사람들이 흔히 구하는 복이 아니었고, 노력으로 얻는 복이 아니었고, 뺏거나 빼앗기는 복이 아니었습니다. 그 복은 아담과 노아와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이 실현되는 일에 야곱도 속하게 되는 복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포함되는 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복은 사람의 열심과 경쟁과 싸움이 아닌 하나님께 항복하는 것, 신뢰와 복종으로 얻는 것이었습니다. 야곱은 어떻게 형의 장자권을 가로챌까 고민하고 계획하고 기회를 엿보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기보다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이미 자신을 높이시기로 약속하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생각하고, 자기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경험한 하나님에 대해 배워야 했습니다. 리브가를 통해 야곱의 장래에 대해 약속하신 이유가 거기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을 주셔서 하나님께 관심을 갖도록, 하나님께 붙어 있도록,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다리도록 하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께 마음을 두고 있습니까? 아니면 야곱처럼 그 약속의 내용을 내 욕심에 근거해서 붙잡으려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그런 야곱을 다루셨습니다. 야곱이 처절한 고난 속에서 자기 문제를 깨닫게 하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이해, 하나님이 주신 약속에 대한 이해도 바로 잡아 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도 끊임없이 다뤄주셔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게 하시고, 하나님이 주시려는 복을 바르게 이해하고 누리게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