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창세기 강해 (40) 창세기 25:19-34 (1)

따뜻한 진리 2023. 2. 5. 17:58

창세기 25:19-34 (1)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지난 시간의 본문은 아브라함의 마지막을 다루면서 후처 그두라가 낳은 여섯 아들들이 아랍 부족들을 이루고, 이스마엘이 낳은 아들들은 열두 부족을 이루었음을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몇백 년 동안의 일을 짧게 요약한 것이기에 그 자손들이 순식간에 많아지고 발전한 것으로 느껴지게 합니다. 반대로 오늘 본문에서 이삭이 자녀를 얻는 과정은 몇십 년 동안의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언약 밖에 있는 후손과 언약 안에 있는 후손의 변화를 살피는 기간을 다르게 한 것은 하나님의 언약 밖에 있는 자녀들이 겉으로는 금새 많아진 것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이스마엘은 열두 부족을 이뤘다는데 이삭의 아내 리브가는 아이가 없었습니다. 셀 수 없는 후손을 얻을 것이라는 약속의 첫 열매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에게서 독립해서 가정을 이뤘지만 그 아버지처럼 또 불임이라는 위기를 만났습니다.

 

    아이를 낳지 못한 리브가는 어떻게 얻은 아내입니까? 리브가는 이삭을 위해 아브라함이 자신의 종에게 진지하게 맹세하게 하여 고향에서 찾게 했고, 그 종이 막막한 중에 하나님께 절박하게 매달려 인도하심을 받아 만난 여자 아닙니까? 그렇게 하나님이 예비하셔서 만나게 하신 여자, 언약의 자손인 이삭의 아내로 주신 여자가 아이를 낳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마엘과 다른 후손들은 크게 번성했는데, 하나님이 선택하시고 부르시고 약속을 주신 사람은 더 잘 돼야 하지 않나?’ 하고 우리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겉으로 발전하고 번성한 언약 밖 사람들을 우리가 부러워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복이 부러워할 만한 것이 아님을 생각하도록 만듭니다. 비록 언약 밖 자손들이 복을 받은 것처럼 보여도 창세기는 ‘복’이란 단어를 그들에게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복이라는 표현을 대부분 이삭과 그의 후손을 위해 사용합니다. 그래서 25장 11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하나님이 그의 아들 이삭에게 복을 주셨고”라고 말하고, 26장 3절에서 하나님은 이삭에게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내게 복을 주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의 후손이 아닌 자손들에게도 좋은 것을 주시고, 그들 중에도 구원받는 자들이 있게 하셨지만 진정한 복이 무엇인지는 이삭의 계보를 통해서만 드러내신 것입니다. 진짜 복은 하나님과 계속 관계를 맺으면서 자신의 문제를 하나님께 의존하고, 하나님이 문제를 해결하시고 도우시는 것을 계속 경험하는 자에게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계속 이어나가는 것이 복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이삭과 리브가의 불임을 말합니다. 불임을 비롯해 세상이 복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들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 머물게 하는 복의 요소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이삭과 리브가는 꽤 오랜 기간 자녀가 없었습니다. 20절에서 이삭이 40세에 리브가와 결혼했다고 말하고, 26절에서는 60세에 에서와 야곱을 낳았다고 말하기 때문에 리브가는 약 20년 동안 불임이었던 것입니다. 21절을 보면 그런 아내를 위해 이삭이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말합니다. 언제부터 기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삭은 아주 오랜 기간 기도했을 것입니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과 달랐습니다. 아브라함은 오랜 기간 자녀가 없자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았지만 이삭은 기도하면서 기다렸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라 외에도 다른 아내를 두었지만, 성경에 나온대로라면 이삭은 리브가 외에 다른 아내를 두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결국 리브가가 임신하게 해주셨고 뱃속에 쌍둥이가 생겼습니다. 리브가는 드디어 아이를 갖게 되어서 기뻤지만 두 아이가 자라며 뱃속에서 서로 싸우는 것처럼 요동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리브가가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며 물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리브가의 뱃속에 두 민족이 들어있다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길 것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드디어 출산할 때가 되어 아이들이 태어났는데, 먼저 나온 아이는 에서라고 이름 지었고, 나중에 나온 아이는 야곱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그 아이들이 다 자랐을 때 형 에서는 짐승을 잡는 사냥꾼이 되었고, 동생 야곱은 주로 장막에 거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이삭은 고기를 좋아해서 사냥꾼인 에서를 사랑했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했습니다. 이것은 부부가 각기 다른 자녀를 편애했음을 말합니다. 차별적으로 사랑한 것입니다.

 

    이삭은 그의 인생의 전반부에서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의 출생이 기적이었고, 모리아에서 제물로 바쳐지는 일에 믿음과 복종을 보여줬고, 들에 나가 거닐며 기도하다가 멀리서 오는 리브가를 만났습니다. 또 아내의 불임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두 아들이 다 자랐을 때 쯤 이삭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이삭의 가정에는 갈등이 심해집니다. 부모가 각자 다른 자녀를 편애한 원인이 어디 있는지, 가족 중 누구의 잘못이 컸을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이삭은 자기가 좋아하는 고기, 식욕이라는 본성적 감각에 이끌려 가족 간의 불화를 심화시켰습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었듯,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 포도주에 취했듯, 이삭 역시 음식에 의해 자기 가정에 문제를 일으킵니다. 또 이삭 부부가 자녀에 대한 편애가 심했다는 것은 부부 사이에 갈등이 심각했음을 암시합니다. 정상적인 유대관계를 지닌 부부라면 자녀들에 대한 사랑을 나눠주는 일에 있어서 대체로 균형을 잡기 때문입니다.

 

    이삭 가정의 갈등 원인을 알 수는 없지만 리브가를 통해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길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태도에서 이삭의 문제가 드러납니다. 본문은 이삭이 하나님의 주권대로 선택된 야곱보다 고기와 그것을 가져다주는 에서에게 치우쳤음을 넌지시 비판합니다. 이삭은 영적 긴장감을 상실했습니다. 그 아들 에서만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긴 것이 아니라 아버지 이삭도 그런 것입니다. 본문은 아버지 이삭과 아들 에서가 유사한 실수를 한 것임을 암시합니다. 이삭이 먹는 것 때문에 에서를 사랑한 것처럼, 에서도 자신의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넘깁니다. 즉 이삭의 문제는 에서의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이삭과 에서가 닮고, 비슷해진 것은 리브가와 야곱 사이에서도 나타납니다. 그래서 이후 어머니 리브가와 야곱은 장자권을 가로채기 위해 함께 협력하고, 아버지 야곱은 에서와 장자권을 주고받으려고 협력합니다.

 

    정리하면 하나님께서 리브가의 불임 문제를 해결하심으로 인간의 능력을 넘어 자기 약속을 이루실 것을 이삭에게 확인시켜주셨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경험한 교훈의 반복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삭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어느새 그 가정은 분열과 갈등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삭의 가정에서 드러난 갈등은 이후 요셉 이야기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물론 하나님은 이삭의 문제들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와 은혜를 드러내십니다. 아버지 이삭의 문제에 실망했을 아들 야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고백하는 은혜를 입습니다. 로마서 5장에서 바울이 말하듯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죄를 지을 수 없다고 바울이 이어서 말했듯 우리는 죄와 그로 인한 고통을 자초해서는 안 됩니다. 누군가에게 영적 실망감을 주지 않아야 합니다. 실족시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이삭이 과거 어린 시절, 또 자녀를 낳기 이전 좋은 신앙을 보여주고, 또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한 것이 이후의 신앙적 삶을 보장하지 않았습니다. 과거 신앙의 뜨거움이 나머지 인생의 신앙을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죽는 날까지 두렵고 떨림으로 죄를 경계하고,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해야 하고, 누군가를 하나님께 인도하고자 헌신하고, 그 영혼 구원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영적인 긴장을 내려놓아서는 안 됩니다. 이삭이 에서와 야곱을 낳았다고 자기 할 일을 다한 것이 아니었던 것처럼 우리 역시 죽는 순간까지 살아계신 하나님을 사람들 앞에 드러내야 함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의 욕구대로 사람을 대하지 않고, 우리의 부모든, 자녀든, 배우자든, 친구든 그 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더해지는 것을 기대하며 섬기는 삶을 끝까지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