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창세기 강해 (45) 창세기 29:1-30

따뜻한 진리 2023. 3. 12. 18:25

창세기 29:1-30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야곱이 부모와 함께 살던 가나안 땅 브엘세바를 떠나 약 1000km 떨어진 하란에 도착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이삭의 아내를 얻기 위해 우물가에 도착한 것처럼 야곱도 우물가에 도착했습니다. 마침 그 우물가에는 야곱의 외삼촌 라반을 아는 목자들이 있었습니다. 야곱은 목자들에게 ‘아직 한낮이라 양떼를 모아들일 때가 아니라 물을 먹이고 계속 풀을 뜯게 해야 하지 않습니까? 우물 덮개를 열어서 양들에게 물을 먹이시지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목자들은 모여야 하는 다른 목자가 양들과 함께 아직 오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목자들이 야곱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은 이방인들이 우물에 접근하는 것을 싫어하는 풍습 때문일 수도 있고, 야곱의 생각과 달리 목자들이 더 일하기 싫어 게으른 모습을 보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목자들이 그렇게 야곱의 말에 따르지 않아 시간이 지체된 덕분인지 한 여자가 양 떼를 데리고 그곳으로 왔고, 목자들이 라반의 딸을 기다린다고 목자들이 말했기 때문에 라헬을 본 야곱은 돌로 된 우물 덮개를 혼자서 옮겨냅니다. 우물 덮개는 보통 두세 사람이 힘을 합쳐 굴려내야 하는데 야곱이 혼자서 그걸 옮길 만큼 갑자기 삼손 같은 괴력이 생긴 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특별한 능력을 주신 것이자 라헬에게 첫눈에 반한 사랑의 힘이었습니다. 야곱이 조용히 장막에 머물며 어머니의 사랑을 차지한 아들이었기에 우리는 그가 곱상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의외로 그는 힘이 넘치는 사람이었을 수 있습니다. 야곱은 날이 새도록 천사와 씨름을 할 정도로 힘이 넘치는 사람이었고, 형의 발뒤꿈치를 잡고 나왔다는 것은 그의 악착같은 기질을 넘어 그의 억척스러운 힘을 암시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어울리지 않게 갑자기 라헬에게 입맞춤의 인사를 하고 그 앞에서 엉엉 소리를 내며 울었습니다. 그리고 라헬을 따라 라반의 집에 간 야곱은 그 집에 살게 되었고, 사랑하는 라헬을 아내로 얻기 위해 7년을 일하고 결혼할 것을 라반과 약속합니다. 7년이 지난 결혼식 당일 라반은 라헬 대신 그 언니 레아를 야곱의 방에 들여 보냈고, 아침이 되어 야곱은 자신이 속은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레아와 함께 라헬도 아내로 얻기 위해 결국 7년을 더해 총 14년을 일했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사건은 야곱이 자기 가정에서는 속였지만 라반의 가정에서는 속은 것을 보여줍니다. 그 중요한 계기는 야곱이 라헬을 사랑한 것입니다. 17절을 보면 언니 레아는 시력이 약했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안경을 써야 하는 눈을 가졌다는 뜻이 아니라 눈매가 매력적이지 못하고, 미숙하게 보였다는 뜻입니다. 즉 야곱이 라헬의 외모에 끌린 것을 강조하려고 레아의 외모가 라헬보다 떨어졌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야곱은 라헬에게 눈멀었습니다. 그래서 7년을 며칠처럼 보냈습니다.

 

    라반에게 있어서 자기 딸에게 빠진 야곱은 쓸모 있고 능력 있는 종이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을 7년을 더 붙잡아 두기 위해 속인 것입니다. 첫날 밤 라헬 대신 야곱의 방으로 들어간 언니 레아는 분명 아버지의 속임수를 알면서 협조했습니다. 라반의 집안은 속임수에 능했던 것입니다. 앞에서는 리브가가 여기서는 그 오빠 라반이 속였습니다. 앞에서는 어머니와 아들이 여기서는 아버지와 딸이 속였습니다. 야곱이 라반에게 속은 일은 그 자신이 형과 아버지를 속인 일과 겹칩니다. 에서가 배고픔에 넋이 나가 야곱의 속임수에 넘어가 장자권을 넘기는 계약을 맺었듯 야곱은 사랑에 넋이 나가 라반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또 야곱이 아버지의 어두운 눈을 이용해 속였듯 라반은 밤의 어두움을 이용해 야곱을 속였습니다. 야곱이 자기가 형 에서인 것처럼 아버지를 속였듯, 레아는 자기가 동생 라헬인 것처럼 야곱을 속였습니다. 이것은 야곱이 한 행동들을 그대로 뒤집어서 그 자신이 당한 것을 보여줍니다. 뛰는 야곱 위에 날아가는 라반이었습니다. 야곱은 자기가 잘 속인 줄 알았지만 반대로 제대로 속았습니다. 야곱이 야곱 짓에 당한 것입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야곱의 속임수를 기뻐하지 않으신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다루셨습니다. 고향집을 떠난 지 얼마 안 된 때 하나님은 꿈에 나타나셔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라고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라반에게 당했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을 지키신다는 약속을 어기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분명 야곱을 지키셨고, 이끄시며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절묘하게 우물가에서 양치는 목자들을 만나게 해주셨고, 라헬도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나 그의 죄로 인한 문제를 건드리셨습니다. 그가 아버지와 형을 속였듯, 라반에게 속게 하셨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자기를 지키시고, 이끄신다고 하셨는데 왜 이런 일을 당하게 하실까 원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라반의 속임수를 통해 자기를 돌아보았을 것입니다. 자기 문제와 자기가 살아온 방식을 건드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생각했을 것입니다. 야곱이 그런 일을 겪은 것이 하나님이 야곱을 지키신 것이고, 이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속이지 않는 정직한 분이시기에 야곱의 속이는 죄를 그냥 두실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에서가 아닌 야곱을 선택하셔서 아브라함과 이삭에 이어 그를 언약 맺는 대상자로 만드셨지만, 많은 은혜를 베푸셨지만, 그가 저지른 죄에 대한 결과를 경험하는 것도 허락하셨습니다.

 

    우리는 인생 속에서 나를 닮은 자, 나를 닮은 누군가의 행동에 의해 당할 때가 있습니다. 거짓말을 자주 하는 자는 다른 사람의 거짓말에 당하게 될 때가 있고, 약속시간을 잘 안 지키는 자가 다른 사람이 약속을 안 지켜서 곤란할 때가 있고, 가진 재물과 능력이 많아 늘 거만하던 자가 더 많이 가진 거만한 자에게 굴욕을 당하는 경우도 있고, 도둑이 도둑에게 당하는 경우가 있고, 부모에게 함부로 했던 자가 자기 자녀에게 똑같이 당하는 일이 있습니다. 자기가 저질렀던 대로 당하기에 차마 화를 내지 못하고, 반성하게 되는 일이 있는 것입니다. 야곱과 라반만 서로 닮은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은 서로의 죄를 닮았습니다. 요한복음 8장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궁지로 몰아 죽이려는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너희 아버지 마귀에게 속하여 너희 아버지 마귀가 시키는 대로 하기를 원한다. 마귀는 처음부터 살인자였다. 마귀 속에는 진리가 없기 때문에 마귀는 진리 안에 서지 못한다. 마귀는 거짓말쟁이요, 거짓말쟁이의 아버지이므로 그가 거짓말을 할 때에 자신의 말을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듭나지 않은 모든 인간은 사탄을 닮아있습니다. 인간이 자기 반성이 잘 안 되기 때문에 자기 닮은 누군가를 통해 당하면서 그동안 몰랐던, 회피했던 자기 정체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사탄이 거울 속 자기를 보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 사람들은 그런 일을 겪어도 반성하지 않고 약간의 부끄러움을 느끼며 씩 웃고 넘어갑니다. 그러나 성도는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받았으나 여전히 남아 있는 거짓 아비의 형상을 보며 놀라는 것입니다. 거울 역할을 하는 날 닮은 다른 자의 행동을 통해 내 정체를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양한 고통, 고생을 통해 죄를 깨닫고 반성하고 성숙하게 됩니다. 그중에서도 어리석은 자에게는 자기가 행한대로 똑같이 당하게 되는 것이 가장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동일복수법이라는 방법, 입장 바꿔서 당하게 하는 방법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방법을 항상 사용하시기보다, 우리가 호된 고통을 겪어서 깨닫기보다 성숙한 태도로 반성하고 달라지길 원하십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죄와 문제를 목격할 때 나에게도 그것과 닮은 것이 있지 않을지 생각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죄 앞에서 나는 무관하다고, 선긋기로 비판과 정죄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닮은 죄가 있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런 반성을 잘 할 수 있도록 가장 지혜롭고 은혜로운 방법을 주셨습니다. 너도 똑같이 겪어봐라가 아닌 네가 당해야 할 일을 내가 당할테니 잘 보고 이러한 비참을 당하지 말라라는 방법으로 우리에게 보이셨습니다. 십자가가 그것입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씻기시고, 하나님 앞에서 모든 요구를 만족하시는 하나님의 구원 능력, 아들의 희생인 동시에 우리가 죄의 어리석음과 악함을 항상 잊지 않도록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죄의 정체를 항상 살피도록 경고하는 표식이기도 합니다. 죄인이 당할 결과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야곱이 라반에게 당하게 하셔서 반성하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고, 우리도 그런 하나님의 다루심을 통해 겸손해질 필요도 있지만 죄인끼리의 닮음을 통해, 서로 주는 고통을 통해 깨닫기보다 하나님이 주신 가장 은혜로운 방법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죄를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