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6:34-28:9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본문은 여러 대화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삭과 에서, 리브가와 야곱처럼 한 장면에서 가족 중 두 명씩만 대화할 뿐 모두가 함께하는 장면이 없는 것은 가족 간의 심각한 분열을 암시합니다. 이삭은 나이가 많이 들어 눈이 어두워지자 자신의 건강을 확신할 수 없었는지 에서에게 장자의 축복을 해주려 계획했습니다. 그는 장남 에서에게 사냥한 짐승으로 만든 특별 음식을 먹고 기분 좋게 축복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 대화를 엿들은 어머니 리브가는 에서가 사냥하러 간 사이 야곱을 불러 좋은 염소를 가져오게 해서 요리를 준비했고, 야곱을 에서처럼 변장시킵니다. 야곱은 아버지에게 들킬 것을 걱정했지만 리브가는 자기가 책임을 지겠다고 장담하며 준비하게 했습니다. 야곱은 아버지가 만졌을 때 에서처럼 느끼게 하려고 염소 털가죽을 몸에 둘렀고, 리브가가 준비한 별미를 들고 아버지에게 갔습니다. 야곱은 자신이 에서인 것처럼 흉내 냈고, 이삭은 질문도 하고 만져보기도 했지만 에서인 줄 알고 장자의 축복을 해줍니다.
이삭은 자기 앞에 있는 아들이 풍요로운 땅을 얻게 되고 정치적, 군사적으로 위대해질 것을 빌었습니다. 축복을 받은 야곱이 나가자 형 에서가 사냥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에서는 아무것도 모른 채 고기로 만든 별미를 가지고 아버지에게 갔지만 아버지는 깜짝 놀라며 ‘방금 에서에게 축복을 했는데 너는 누구냐’라고 물었습니다. 상황을 파악한 에서는 울면서 남은 축복이라도 달라 했지만 이삭은 에서가 풍족함과는 멀고, 동생을 섬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축복의 반대였습니다.
야곱은 드디어 장자권을 얻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공이 아닌 실패였습니다. 장자 축복을 얻은 야곱이 아버지와 형을 잘 속인 것 같지만 자신이 속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려는 복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고 세상 기준의 복에 속은 것이고, 하나님이 계획을 이루시는 방법과 때를 기다리며 누린 것이 아닌 인간의 욕심과 조바심에 속아 악한 짓을 했습니다. 야곱은 자기 욕심을 이루기 위해 분별력이 없는 형과 시력이 약한 아버지를 이용했습니다. 형이 오기 전에 아버지를 속이자는 어머니의 제안이 나쁜 것임을 알면서 따랐습니다. 그것으로 야곱은 행복을 얻은 것이 아니라 약속의 땅에서 벗어나 어머니의 고향으로 피신해야 했습니다. 아브라함 때를 생각해봅시다. 그는 이삭의 신부감을 구할 때 그 여자를 약속의 땅으로 데리고 와야지 절대 이삭이 약속의 땅을 떠나 신부가 있는 땅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종에게 맹세시켰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형에게서 도망치느라 가나안 땅을 떠나 그 기준을 어긴 것입니다. 야곱은 복을 빼앗아 가진 것 같았지만 약속된 땅에서 멀어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런 불행에 야곱만 잘못한 것 같지만 가족 모두에게 잘못이 있었습니다.
이어서 장남 에서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본문의 시작과 끝 부분에 에서의 결혼 이야기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에서는 가나안 땅 헷 족속 여자와 결혼했습니다. 다시 아브라함을 생각해보면 그는 이삭의 배우자를 찾을 때 자기 종에게 맹세시키며, 심판받을 가나안 땅이 아닌 멀리 있는 자기 친척들 중에서 여자를 찾아오게 했습니다. 그런데 26장 34절을 보면 에서는 주변에 있는 이방 여인과 결혼해 하나님이 주신 언약 안에서 장자권을 물려받을 자격을 상실했습니다. 또 본문 끝에서 에서는 자신의 결혼 때문에 근심하는 부모가 신경 쓰였는지 나름 친척이라 할 수 있는 이스마엘의 가족 중에서 여자를 만나 또 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장자권의 기회는 사라지고 난 뒤였습니다. 그가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을 하찮게 여긴 것이 결혼에서도 드러났습니다. 에서는 장자권을 소홀하게 여겼고, 장자권을 팔라는 야곱의 간사한 제안에 그러겠다고 맞장구쳤으면서 아버지가 시킨대로 몰래 장자권 축복을 받는 일에 협조했고, 동생한테 뺏기니까 동생을 비난했습니다.
아버지 이삭은 어떤 문제가 있었습니까? 그는 둘째 야곱이 장자가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좋아하는 맏아들 에서에게 장자권을 주려했습니다. 또 에서가 이방 여인과 제멋대로 결혼해서 장자권을 얻기에 부적격자인 것이 확인되었으니 이삭은 에서가 아닌 야곱에게 장자권을 넘겼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반대했고, 그것을 밀어붙이기 위해 가족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행해야 할 장자권 축복을 몰래 하려 했습니다. 이삭은 그렇게 하나님의 약속보다 자신의 취향과 자기 판단을 더 중요시했습니다.
한편 어머니 리브가는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길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야곱이 장자가 되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좋은 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리브가는 야곱을 바르게 훈육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신 야곱이라 너무 귀하게 여겼는지, 자신과 성향이 잘 맞아서 문제의식을 못 느껴서인지 리브가는 이기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아들 야곱을 바로 잡지 않았습니다. 어머니 리브가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에 대한 이해와 믿음이 부족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을 주시는 분이 어떤 분이신지, 장자권을 빼앗으려는 행동에 대해 어떻게 여기실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리브가는 문제 많은 아들 야곱을 제대로 다루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야곱을 다루셨음을 이어지는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한 가정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을 두고 대치했습니다. 장자권을 뺏은 쪽과 뺏긴 쪽 모두 은밀하게 상대를 속이기 위해 협력했고, 복을 얻으려고 했지만 불행해졌습니다. 에서의 분노 때문에 살인이 일어날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삭의 가정은 단지 본문의 사건 때문에 위태로워진 것이 아닙니다. 이미 위기 가정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으로 집안이 파탄 날 것을 알면서 자기 생각대로 했습니다. 이삭은 자신이 은밀하게 에서에게 장자권 축복을 한 사실이 다른 가족들에게 알려졌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상했을 것입니다. 리브가와 야곱도 장자권을 훔치려는 자신들이 계획이 실패하든 성공하든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주저 없이 자기 계획을 추진한 것은 이미 그 가정이 깨졌기 때문입니다. 자기 가정이 문제가 더 심각해져도 상관없다는 냉소적인 상태였습니다. 그들은 자기 말과 행동으로 상대의 마음이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고 자기 관심과 이익만 챙기는 상태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태도에서도 드러났습니다. 그들은 외형적으로 언약 안에 있는 가족이었지만 언약을 주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거의 모르는 사람들처럼 행동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바르게 드러내기보다 하나님을 욕되게 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아버지가 어찌 이렇게 빨리 사냥을 마치고 돌아왔느냐고 묻자 하나님께서 순조롭게 짐승을 만나게 해주셨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고 존중하는 태도가 없으니 가족들을 존중하며 책임을 다하는 행동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장자권을 두고 자기들 안에서 어떻게 일하실지에 대한 기대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자기 관심사와 욕심과 인간적인 술수들이 가득했습니다.
이삭의 가정은 하나님이 주신 언약, 하나님의 복을 전달하는 가정의 역할로 기쁨을 누리기보다 죄로 인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우리들의 가정은 어떻습니까? 쉽게 변하지 않는 상대의 죄성을 인내하고 용서하면서, 내가 바꿀 수 없으니 오직 사람을 구원하시고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을 소망하면서 서로를 대하고 있습니까? 혹시 이삭의 가정처럼 하나님이 일하실 것에 대한 기대 없이 기도도 하지 않고, 상대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태도로 내 관심사만 추구하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바라기는 우리가 각 가정에서 배우자 사이에서든, 부모 자녀의 관계 속에서든 상대방의 문제 때문에 더 마음을 닫기보다, 이삭의 가정처럼 되기보다, 죄인인 나에게 은혜 베푸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용서하고, 사람을 변화시키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들이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드러내는 가정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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