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8:10-22 김영제 목사(하늘기쁨교회)
분노에 휩싸인 형 에서를 피하기 위해 야곱은 외삼촌 집으로 떠났습니다.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하란까지 가는 길은 100여 년 전 그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밟았던 길이었습니다. 하란까지는 1달을 족히 가야 하는데 출발한 지 며칠이 안 되었을 때 벧엘에서 본문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밤이 되자 야곱이 근처에 있는 돌을 베게 삼고 누워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신비로운 꿈을 꾼 것입니다. 그것은 단지 꿈이 아니라 꿈을 사용해서 하나님이 야곱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12절에서 야곱은 사다리를 봤다고 하는데, 이것은 계단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습니다. 멕시코의 마야 유적지 엘 카스티요 신전이나 바빌론의 우르 남무왕 지구라트를 보면 거대한 피라미드 모양의 건축물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계단이 땅에서 꼭대기까지 만들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은 자기 시대에 그런 종류의 탑을 본 적이 있을 것이고, 하나님께서 그 이미지를 사용하셔서 야곱의 꿈속에 그림을 펼치셨을 것입니다. 꿈에서 하나님의 사자, 즉 수많은 천사들이 그 계단을 통해 하늘에서 땅을 오르내리고 있었고, 계단 끝 하늘에는 하나님이 서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자신이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이며 그들에게 약속한 땅과 후손에 대한 복을 야곱에게도 보장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야곱이 어디로 가든지 함께 하시고, 야곱이 살던 가나안 땅으로 다시 돌아오게 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야곱은 잠에서 깨 두려워했고, 자신이 베개 삼았던 돌을 세우고 그곳을 벧엘이라고, 즉 하나님의 집이라고 불렀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약속하신대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지켜주신다면 자기 소유의 십분의 일을 드리겠다고 서원, 맹세의 기도를 했습니다. 야곱의 이러한 행동은 두려운 중에도 자기 이익을 위해 하나님과 거래하려는 간사한 본성이 드러난 것이라고 해석되기도 하는데 어쨌든 이 경험을 통해 야곱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중대한 변화가 시작됩니다. 27장 2절을 보면 야곱은 아버지를 속일 때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짐승을 순조롭게 만나게 해주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야곱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있었지만 하나님을 아버지가 믿는 하나님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본문 21절에서 야곱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아버지의 하나님이 자신의 하나님이 되실 수도 있음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복을 열렬히 추구했지만 그 복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인정하지 않았던 그가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인정할 여지가 생긴 것입니다. 물론 본문의 시점에서 야곱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꿈이 그에게 큰 충격을 주어 하나님에 대한 태도가 조금이나마 달라졌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먼저 본문에서 야곱이 본 사다리, 계단에 대해 생각해봐야 합니다. 야곱이 살던 시대에 있던 높은 신전의 계단은 인간들이 자기들 맘대로 신에게 가까이 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고, 또 그 계단 꼭대기에 있는 인간을 신처럼 여기게 만드는 장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바벨탑을 막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이 본 계단은 하나님이 주도하신 하늘에서 땅으로 제공된 길이었습니다. 사람이 만든 길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그 길을 이용해 천사들이 이 땅에 내려와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들이 이루어지도록 섬기는 것을 야곱이 본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계단은 그저 건물의 일부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1장 51절을 보면 예수님은 나다나엘과의 대화 중에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야곱이 본 꿈속 계단이 자신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과 우리를 이어주시는 유일한 길이심을 이미 야곱을 통해 나타내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약속하신 놀라운 복을 일방적으로 야곱에게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앞에서 저지른 잘못에 대해 언급하시지 않고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야곱이 당시 가장 불안해하고 걱정했을 눈앞의 닥친 문제, 외삼촌 집에 무사히 잘 도착했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한 답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아버지와 형을 속였던 사기꾼 야곱이 아직 달라진 것이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와 함께하시겠다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지키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야곱에게 복을 약속하실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과 야곱 사이에 놓인 계단, 통로가 되어주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셨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기 백성들이 아직 달라진 것이 없을 때, 아직 죄인이었을 때 예수를 믿게 하시고, 구원의 복을 허락하시고, 영원히 함께해 주십니다. 인생의 어떤 순간에도 우리를 버리지 않고 함께 하십니다. 물론 야곱은 이후 외삼촌의 집에서 고생하고, 형을 만나는 과정에서 위기를 만나고, 아들 요셉과 다른 자녀들 때문에 고통을 겪지만 하나님은 야곱을 버리지 않고 함께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는 그런 하나님의 은혜를 입습니다. 비록 세상의 죄 문제와 우리의 죄 문제로 고생을 하지만 그 고난을 가지고 우리를 겸손하게 하시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찬양하게 하십니다. 그것이 진짜 복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그 복을 맛보아 알게 하신 것입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깨닫고 고백하게 하셨듯 우리의 고생스런 삶에도 하나님은 늘 함께하셔서 하나님이 선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이심을 고백하게 하십니다. 그런 은혜가 보장되는 것은 야곱에게나 우리에게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 덕분임을 본문이 말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이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진정한 복입니다.
본문은 또한 하나님이 우리의 참된 가족과 거처가 되심을 말합니다. 모든 인간은 진정한 집과 진정한 가족을 갈구합니다. 우리에게는 나를 알아주고, 이해해주고, 환영해주고, 기억해줄 가족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험한 세상을 살면서 불안 속에 방황하지 않고 안심하고 쉴 장소 거처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야곱은 자기 죄 때문에 도망치듯 가족과 집을 떠나 다른 거처와 가족을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외삼촌 집에서 아내를 얻고 형의 화도 풀려서 다시 집으로 돌아갈 날이 빨리 찾아오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을 것입니다. 또 오가는 도중에 위험한 일이 있을까 많은 걱정에 눌렸을 것입니다. 그런 막막한 상황에서 하나님이 야곱에게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은 야곱에게 큰 안도감을 주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만난 그곳을 하나님의 집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단지 신이 살고 있는 신전이라는 뜻으로 야곱이 하나님의 집, 벧엘이라고 부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의 절박한 문제를 해결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으니 그것을 꼭 붙잡으면서 위안을 경험한 것입니다. 야곱은 벧엘이라는 장소에서 하나님을 가족과 집을 보장해 주시는 분이자 하나님 자신이 집이신 것을 경험한 것입니다.
야곱이 보장받은 돌아갈 집은 단지 아버지 이삭과 어머니 리브가와 형 에서가 있는 집만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는 더 나은 고향 집과 가족이 필요했습니다. 몇 년 전에 나온 책 ‘집에 있는데도 집에 가고 싶어’라는 수필집의 제목처럼 우리는 가족이라는 관계와 집이라는 공간 속에 있어도 완전한 위안과 쉽을 얻지 못하는 부분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들로 만족하지 못합니다. 야곱 역시 자기가 살던 곳으로 돌아가 가족을 만난다 해서 완전한 만족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진정한 가족과 거처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땅과 후손, 즉 거처와 가족을 약속하신 것 같습니다. 그 거처와 가족은 단지 가나안 땅을 누리게 될 이스라엘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자기가 태어나고 자라온 가정, 집을 뒤에 두고 떠나 많은 불안을 겪었지만 오히려 그것은 참된 가족이 어디에 있는지, 누가 영원한 안식처가 되시는 지를 깨닫는 여정이었습니다. 진짜 하나님이 주시려는 복을 얻는 기회였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집, 진정한 안식처 그리고 영원한 가족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는 우리 모두가 한 가족이 되게 하십니다. 우리에게는 어떤 위험으로부터도 안전하게 보호해줄 안식처, 완전한 유대관계 속에서 사랑을 나눌 가족이 필요한데 바로 하나님이 영원한 보금자리의 아버지가 되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나라를 우리의 안식처로 허락해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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