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8:1-22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48장과 49장에서 야곱은 죽음을 앞두고 아들들에게 유언적인 축복을 합니다. 그중 본문은 요셉의 두 아들에게 축복하는 장면입니다. 요셉의 두 아들은 당연히 야곱에게는 아들들이 아니라 손자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일종의 입양 형식을 따라 손자들을 아들들로 여겨 복의 상속자로 삼습니다. 야곱이 요셉의 아들들을 양자로 입양한 것은 실제로 아들처럼 키우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 손자들의 법적인 권리를 야곱의 아들들, 즉 요셉의 형제들과 동일하게 한 것입니다. 야곱이 열일곱 살의 요셉에게 채색옷을 입혔었다면37:2) 이번에는 죽었다가 살아난 요셉을 야곱이 다시 본지 십칠 년째 되는 해에(28절) 요셉을 다른 형제들보다 더 많이 축복한 일입니다. 요셉은 아버지에게 직접 축복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두 아들을 통해 다른 형제들보다 두 배 더 복을 받았습니다.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에게 손을 얹어 축복하려 할 때 요셉은 아버지 오른쪽에 첫째 므낫세가 있고, 왼쪽에 둘째 에브라임이 있게 했습니다. 오른손은 힘, 명예, 영광을 의미했기 때문에 당연히 장남이 오른손으로 축복을 받아 다른 자녀들보다 더 큰 복과 유산을 얻는 것이 당시 문화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자신의 두 팔을 서로 가로질러 차남 에브라임을 오른손으로 장남 므낫세는 왼손으로 축복했습니다. 동생인 에브라임에게 장자의 축복을 한 것입니다. 그것을 본 요셉은 좋지 않게 여기면서 ‘아버지 그렇게 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며 개입하려 했습니다. 10절이 말하듯 요셉은 아버지 야곱은 눈이 어두워서 혼동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자 야곱은 요셉에게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 아우가 큰 자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나이 듦과 눈이 어두워진 것이 중요한 순간에 결점으로 작용했다고 여겼지만 사실은 아니었습니다. 야곱은 시력을 잃어가고 있었지만 통찰력은 살아 있었습니다. 야곱의 눈은 어두웠지만 요셉이 첫째 므낫세를 자기 오른편에 데려올 것을 알고 있었고, 죽음을 앞둔 노년의 야곱은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를 잘 알고 있었고, 그런 사람과 동행하시면서 자기가 계획하신 일을 성실하게 이루시는 하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축복이 복을 빌어주는 자신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린 일이고, 축복을 받은 자가 인생 속에서 하나님을 인정하고, 복종하는 것에 달려 있음을 야곱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야곱이 팔을 엇갈려 축복한 것은 몸이 말을 듣지 않거나 눈이 보이지 않아 착각한 것이 아니라 전 인생을 통해 깨달은 신앙을 고백한 심오한 행위였습니다.
15, 16절을 보면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하면서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오며”라고 말합니다. 여기 사용된 표현들은 야곱이 하나님을 양을 돌보는 목자로 여긴 것입니다. 또 망한 가정을 기업무름하는, 넘겨받아 책임을 지는 고엘과 같은 분으로 여긴 것입니다.
야곱은 양과 같이 생존 본능에 따라 자기 고집대로 살았습니다. 그는 자기 욕심에 따라 형보다 앞서려고, 형보다 많은 복을 얻으려고 머리를 쓰고 경쟁하고 속였습니다. 라반에게 이용당할 수 없어서 머리를 썼고, 하나님에게도 복을 얻겠다고 악착같이 씨름을 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런 시도를 통해 험한 일을 계속 겪었습니다. 그는 분노한 형 때문에 홀로 도망쳐야 했고, 라반의 집에서 종살이에 가까운 착취를 당했고, 허벅지 관절이 꺾여서 다리를 절게 되었고, 아들들은 끔찍한 죄를 지으며 야곱을 속였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은 일찍 죽었고, 요셉마저 잃었었습니다. 그렇게 많이 고생했지만 그러나 야곱은 하나님께서 사자, 천사를 통해 자신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셨다고 말합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자신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다고 말합니다. 천사는 야곱과 씨름하며 고통을 안겨주기도 했지만 야곱은 그것마저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야곱은 자신이 어리석은 양과 같았지만 하나님이 목자처럼 기르시고, 위험에서 건지시고, 인도해오셨다고 말합니다. 야곱은 그런 복을 주시는 하나님께 요셉의 두 아들을 지켜주시고, 번성하게 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16절에서 21절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두 아이의 후견인, 보호자, 구원자가 되어달라고 야곱이 기도한 것입니다. 또 야곱은 자신이 이제 죽어서 사랑하는 아들 요셉이 아비 없는 자가 되지만 하나님이 항상 아버지가 되셔서 인도하시고 번성하게 해주시고, 약속된 땅으로 돌아가게 해주실 것임을 기억시켰습니다.
야곱은 자기 욕심 때문에 하나님을 헛되게 알고, 장자권에 인간적인 기대를 하면서 살아왔지만 그런 중에도 하나님이 자신을 돌보시고 다루시고 복주시고 오래 전 조상들과 맺으신 약속을 자기 같은 사람을 통해 이루시는 것을 경험하면서 겸손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그런 하나님께 요셉의 두 자녀를 맡기는 축복을 한 것입니다. 아담에게서 시작해서 아브라함, 이삭에게 주신 약속이 아직 이뤄져야 할 부분이 남아있기에 야곱은 자신의 후손들이 생육하고, 번성하고, 나라를 이루고, 구원자를 맞이할 때까지 사용되기를 바란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자기를 사용하셨듯 후손들을 통해 남은 약속을 이루실 것을 확신했지만 어떻게 자기 후손들을 다루실지는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래서 두 팔을 가로질러 축복한 것입니다.
요셉이 엇바꾸어진 야곱의 팔을 바로잡으려 할 때 ‘나도 안다’라고 대답한대로 야곱은 요셉이 뭘 원하는지 알았습니다. 요셉은 아버지로서 아들들이 인간적인 복을 물려받기를 원한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런 인간의 생각과 기대와 달리 하나님의 다루심을 받는 것, 사람의 관습과 생각이 꺾이고 하나님이 옳으시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 참 복이라는 것을 알려주려 했습니다. 요셉의 아들들을 포함한 야곱의 후손들이 많아지고, 그들이 부유해지고 큰 나라가 되는 것도 복이지만, 그 과정에서 죄인이 하나님의 다루심을 받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 굴복하고 찬양하는 것이 참된 복이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는 고통스런 연단이 있습니다. 사람 편에서는 장자가 되고, 장자의 축복을 얻으면 더 많은 복을 받아 좋을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장자 삼으신 자, 사용하시는 자는 누구보다 많은 고난, 특별한 고난, 다루심을 겪었습니다. 장자권을 인간적으로 여겨서 훔친 야곱이 그랬고, 장자처럼 특별히 여김받은 요셉이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눈에 보이는 공동체의 번성과 좋은 땅에서의 번영을 선물로 주시면서 그 과정에서 다루신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에게도 눈에 보이는 복과 보이지 않는 영적인 복을 모두 주시길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할 복과 함께 우리의 죄가 다뤄지고 하나님을 고백하게 되는 복도 얻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내 죄와 사람들의 죄로 인한 고통을 외면하고 피하면서 좋은 것만 얻고 싶지만 하나님은 그 괴로운 것들도 겪게 하십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은 인간이 일으킨 문제, 고통, 사람이 바꿀 수 없는 절망스런 상황 속에서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시고, 하나님이 살길을 내시는 것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길을 인도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야곱의 고생과 요셉의 고생이 결국 복을 가져오는 반전을 일으킨 것처럼 결국 우리는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고통 속에서 과연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인가? 나를 인도하고 계신가? 의문을 품고, 불평과 불신을 품기도 하겠지만 결국 하나님이 함께 하셨고 인도하셨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와 영원토록 함께 하시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어떤 복보다 그것으로 가장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어떤 것을 얻은 것보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나에게 나타내시고, 옛적에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는 과정에 나를 포함시켜 주신 것, 사용해 주신 것, 그런 하나님의 일에 적합하지 않은 자를 이끌어 와 주시고 동행해 주신 것이 가장 큰 복이라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처럼 남들에게도 그런 축복을 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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