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9:1-28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에게 축복한 것에 이어 요셉을 포함한 열두 아들에게도 유언을 합니다. 야곱은 아들들을 어떤 사물이나 동물들에 빗대어 말했습니다. 르우벤은 끓는 물, 시므온과 레위는 무서운 칼, 유다는 사자, 잇사갈은 나귀, 단은 독사, 납달리는 암사슴, 요셉은 무성한 가지와 활, 베냐민은 이리에 비유되었습니다. 야곱은 어떤 아들에게는 축복을, 어떤 아들에게는 저주와 경고를, 어떤 아들에게는 두 가지 모두를 말합니다. 열두 명의 아들 중 몇 명만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르우벤은 첫째 아들, 장자답게 위풍당당하고, 능력이 탁월하지만 아버지의 첩 빌하를 범했기 때문에 장자권을 주지 않고 저주를 했습니다. 야곱이 그를 끓는 물이라고 표현한 것은 끓는 물이 넘치듯 르우벤이 선을 넘고 건방진 자라고 비판한 것입니다. 르우벤은 여러 장점을 가진 아들이었지만 한 번의 죄로 인해 큰 것을 잃게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야곱은 시므온과 레위 두 형제를 묶어서 유언합니다. 그 둘은 디나의 강간 사건 때에 분노에 사로잡혀 세겜 족속을 잔혹하게 몰살했습니다. 야곱은 시므온과 레위가 땅을 기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고 저주했습니다.
다음으로 야곱은 유다에게 큰 축복을 합니다. 야곱은 유다가 형제들을 다스릴 권한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유다의 후손 중에 다윗이 등장할 것을 예고한 것입니다. 10절을 보면 실로가 오실 때를 말하는데 실로는 성막 형태의 성전이 있던 곳입니다. 사무엘상에서 어린 사무엘의 등장 배경이 이 실로 성전인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이 실로가 오신다고 말한 것은 성전 자체이신 분이 오신다는 뜻인데 그 때 모든 백성이 복종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유다의 후손으로 오실 것을 예고합니다. 11절에서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고 옷을 포도주에 빨 것이라는 내용은 유다의 후손들이 포도와 포도주를 허비해도 될 만큼 풍성하게 된다는 것을 예고하는 동시에 유다의 후손으로 오시는 예수님께서 붉은 포도주와 같은 피를 흘리실 것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야곱이 유다에게 이런 놀라운 축복을 한 것은 아마도 요셉이 형제들을 시험할 때 유다가 베냐민 대신 인질이 되겠다고 한 것과 나이든 아버지를 염려하며 희생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야곱은 요셉이 담장을 넘는 가지처럼 크게 번성하게 되고 시기하는 자의 공격을 받겠지만 목자이신 하나님이 보호해주실 것이라고 축복했습니다.
이 유언들은 단순히 인간 야곱이 아들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야곱을 통해 열두 아들들의 미래, 그들로부터 나오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운명,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까지 전망하는 예언입니다. 하나님이 야곱의 영혼을 통해 야곱이 잘 알지 못하는 아주 먼 훗날에 있을 일들까지 예고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아들들의 성향과 그들이 행했던 일들을 토대로 미래에 대해 비유적으로 예언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축복이든 저주든, 야곱이 예고한 운명이 열두 아들들 당사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먼 후손들까지 포함된다는 것입니다. 야곱의 어떤 아들이 선하게 살았고, 회개하고 희생을 했으면 그 자신이 축복을 받고, 반대로 다른 아들이 악하게 살았다면 그 사람만 저주를 받아야 하는데, 야곱의 유언은 열두 아들을 넘어 각자의 후손들인 열두 지파까지 복과 저주를 함께 겪게 될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창세기 초반에서 아담이 범한 죄 때문에 그 후손들이 저주와 심판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을 기억하게 합니다. 아담의 아들들인 가인과 아벨 사이에서 살인이 일어났고, 셋의 후손들과 달리 가인의 후손들은 악한 저주의 길을 간 것처럼 아담의 죄가 후손의 삶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인류는 점점 타락해서 홍수 심판을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어서 구원자를 보내려고 하나님이 선택하신 아브라함의 가정에도 아비의 죄가 아들에게 계속된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기적으로 이삭을 주셨지만 그도 죄인이어서 아브라함처럼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고, 자식을 편애를 하는 자였고, 이삭의 아들 야곱은 더 노골적으로 속이고 편애하는 자였습니다. 그런 야곱의 아들들도 당연히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아담의 가정에서 일어난 일부터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문제들을 종합해 놓은 자들 같았기 때문에 살인과 속이는 일을 저질렀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야곱의 아들들의 후손들 역시 아담의 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삶을 살게 될 것을 본문의 유언이 말하고 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과 그 후손들은 야곱의 유언이 자신들 안에서 사실이 되는 것을 확인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후손들이 모두 다 획일적으로 축복이나 저주를 겪은 것은 아닙니다. 저주의 유언을 들은 르우벤, 시므온, 레위의 후손들 중에도 복을 누리고 신앙을 가진 자들이 있었고, 반대로 축복의 유언을 들은 유다나 요셉의 후손들 중에도 악한 삶을 살다가 심판을 당한 자도 있습니다. 하지만 해당 지파가 선조의 성향을 이어받아 함께 한 공동체로서 같은 운명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야곱의 유언은 아담 한 사람의 범죄가 그 후손들에게 영향을 미친 것을 창세기 마지막 부분에서 다시 기억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아담이자 마지막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18절에서 야곱이 갑자기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라고 고백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은 아들들에게 예언적인 유언을 하는 가운데 그들이 죄의 영향 아래 살아갈 것을 생각하며 그들을 하나님께 맡긴 것입니다. 야곱은 자기 아들들과 후손들이 인간적인 복을 누리기는 하지만 죄의 영향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구속자가 오셔야 하는 것을 고백했습니다. 아담에게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 뱀의 머리를 부수실 그분을 기다린 것입니다.
우리가 아담과 별개인 존재가 될 수 없듯이 우리의 부모와 무관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장점과 단점의 대부분은 부모를 닮은 것입니다. 야곱이 자녀들에게 축복과 저주를 해야 할 만큼 야곱에게 만족과 기쁨을 준 자녀도 있었고, 고통을 안겨 준 자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자녀들의 특성은 야곱과 무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상당 부분 야곱을 닮은 것이었습니다. 야곱은 자신을 닮은 자녀들에 대해 만족하며 축복하기도 하고, 저주하기도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야곱에게 역사하셔서 그 자신이 알 수 없는 앞날에 대한 예언적인 유언을 하게 하시고, 야곱과 그 아들들이 서로와 후손들을 생각하며 구원을 바라게 하신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의 문제를 보며, 자녀는 부모의 문제를 보며 서로 미워하기 쉽지만 우리는 부모와 자녀가 서로가 닮아있음을 확인하면서 함께 애통해야 합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부모의 문제점, 자녀의 문제점이 나에게도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부모 자녀 사이에서 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아담의 죄 아래에서 그를 닮았고, 서로를 닮아있음을 생각하면서 안타깝게 여겨야 합니다. 그래야만 극단적인 증오를 멈추고, 관용을 베풀게 되고, 서로를 위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게 됩니다. 나도 이렇게 안 변하는 죄인인데 너도 그런 죄인이구나를 알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이 보내주신 구원자를 바라고 소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 사함을 얻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을 닮아가는 것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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