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9:29-50:26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창세기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야곱과 요셉 두 사람이 죽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가나안에 묻히길 원했습니다. 가나안 막벨라 굴에는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가 이미 매장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사랑한 라헬은 그곳에 매장되지 않았고 대신 레아가 묻혀 있었습니다. 라헬은 베들레헴 근처 라마에 따로 묻혀 있었습니다. 야곱은 라헬을 누구보다 사랑했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소망한 그가 묻힌 곳은 레아 곁입니다.
야곱의 장례 일정에 요셉의 형제들과 가족들만 참여한 것이 아니라 바로의 관리들과 백성들까지 함께 슬퍼했습니다. 장례를 마친 후 요셉의 형제들은 두려웠습니다. 그들은 요셉이 자신들을 지금까지 돌봐준 것이 진심으로 용서했기 때문이 아니라 아버지를 위해 참고 의무감으로 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형제들은 이제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지난날 자신들이 요셉에게 잘못한 것에 대해 복수를 당할 것이라고 걱정했습니다. 형제들은 아버지 야곱이 죽기 전 요셉이 형제들을 용서하고 잘 돌봐달라는 부탁을 자기들한테 남겼다고 요셉에게 전달했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형들을 용서하라는 부탁은 야곱이 요셉에게 직접 말할 내용이지, 용서받아야 할 형제들한테 남겼겠습니까? 물론 요셉이 애굽을 돌보는 공적인 일로 너무 바빠서 만날 수 없었기 때문에 형제들에게 유언을 남겼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요셉은 그 말을 듣고 울었습니다. 형들이 그동안 겪었을 염려와 불안을 생각하며 요셉은 안타까웠을 것입니다. 요셉은 형제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자기가 형제들의 자녀들까지 애굽에서 안전하게 살도록 보호할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그런 요셉도 110세에 죽습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을 따라 자신도 약속의 땅에 묻히기를 원했습니다. 요셉은 나중에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날 때 반드시 자신의 유골을 데리고 가달라고 유언을 남깁니다.
이렇게 야곱과 요셉 두 사람의 장례는 애굽이라는 위대한 나라 안에서 많은 사람의 슬픔 속에서 치러졌고, 형제들 사이의 용서와 안정을 재확인시켜주는 복된 죽음이었습니다. 이것은 창세기 첫 시작 부분과 대조를 이룹니다. 아담의 범죄로 생긴 어두운 일들이 어떻게 극복될 수 있는지를 마지막에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아담은 자신의 범죄로 인해 하나님이 말씀하신 ‘정녕 죽으리라’는 저주를 비참하게 경험했습니다. 그는 두 아들 사이의 불화로 인해 자녀들끼리의 살인 사건을 겪어야 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영적 죽음을 직접 경험했을 뿐 아니라 육체적 죽음을 자녀들을 통해 먼저 경험했습니다. 또 가인의 후손들에게 일어난 무서운 범죄의 확장은 영원한 죽음인 지옥을 예고하는 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일로 변화, 전환이 일어났습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의 변화였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죽어 마땅한 자신들을 하나님이 보호하시고 살리시고, 화를 바꿔 복을 주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들은 죄와 불신으로 그 자신이 죽을 뻔한 일을 겪거나 자녀들을 잃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의 생명을 주관하시고, 다시 살리시고 복되게 하시는 것을 아브라함은 이삭을 통해, 야곱은 요셉을 통해 경험했습니다. 인간의 죄로 인한 죽음을 하나님께서 해결하시고 구원해내시고, 생명을 다시 주셔서 살리신 일들을 족장들이 경험한 것입니다. 그런 일을 통해 하나님은 자신이 사람의 죽음을 초월하시는 생명의 주관자라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단지 우리 몸의 죽음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영적 죽음이 진짜 비참함입니다.
그래서 지금 살피는 창세기의 마지막 부분은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안식처가 회복될 것을 전망합니다. 창세기 처음은 아담이 범죄 때문에 에덴이라는 안식처, 하나님과 함께 하는 복된 장소를 잃어버리는, 거기서 쫓겨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곱과 요셉이 자신들의 죽음을 통해 약속의 땅을 신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새로운 거처, 더 나은 영원한 나라를 다시 얻을 것을 예고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약속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요셉 시대에 애굽에서 살고 있었지만 400년 후 출애굽 해서 광야를 지나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다윗을 통해 왕국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이 약속의 땅을 주신 것은 단지 그들이 이 현실 속 땅을 얻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과 요셉이 죽어서라도 그 땅에 가길 원한 것은 그저 자신의 죽은 몸이 약속의 땅에 있길 바란 것이 아닙니다. 야곱과 요셉이 하나님이 주실 약속의 땅을 바라본 것은 우리 몸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과 살아있는 동안 이 땅 어디엔가 속해 있었던 것처럼 이후에도 하나님과 관계있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어딘가에 반드시 속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준 것입니다.
다음으로 창세기의 마지막은 사람의 죄로 인한 갈등이 어떻게 해결될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창세기 처음은 가인과 아벨 두 형제의 비극으로 시작했지만 마지막은 요셉과 형제들의 용서에 대한 확신으로 끝납니다. 가인과 아벨 사건에는 죄로 인한 미움, 폭력, 죄를 부인하는 태도, 복수 당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했다면 야곱과 요셉이 죽는 장면에서는 바른 죄책감과 참회와 용서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죄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시고 감격스런 회복을 자기 백성들에게 허락하실 때가 마침내 올 것을 예상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로 인한 죄책감과 고통과 심판의 두려움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전히 해결하셨으니 우리는 안심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고 오직 감사와 찬양할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야곱과 요셉은 각자 자기 부모에게서 하나님이 행하실 약속을 전해 들었을 것이고, 꿈을 통해 자기 앞에 나타나신 하나님께 약속을 확인받았지만 큰 고생들을 했습니다. 야곱은 자기 욕심과 자기 결점이 많아 고난을 자초했다면, 요셉은 올곧은 거룩함과 성실함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시기심으로 고난을 겪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두 사람 모두 함께 하셨고, 그들을 곤경에서 구원하셨으며 약속의 일부가 이뤄지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아담에게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많은 자손과 좋은 땅에 대한 약속이 그들 앞에서 다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결국 하나님이 다 이루시겠구나’하고 믿을 수 있도록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야곱의 삶이나 요셉의 삶이 그 증거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시고 부르신 백성들은 그런 인생을 살아갑니다. 선조들이 고백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듣기만 하고, 수긍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인생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고, 고백하게 됩니다. 즉 남이 경험한 하나님에 대해 듣고 따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그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알 듯 요셉 이후 애굽에서 태어난 야곱의 후손들은 노예생활을 합니다. 그래서 그들 역시 고난 속에서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지키시고, 구원하시고, 약속대로 이끄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들을 다루시고, 동행하시고, 건지시고, 사랑하신 하나님을 우리도 경험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아브라함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살아온 백성들이 겪은 것처럼 우리도 때로는 죽을 고비를 넘기도 하고, 결국 죽음을 맞이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이 믿을 수밖에 없는 분이심을 고백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알게 된 하나님이 죽음 너머에도 함께 하시는 분이심을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야곱과 요셉이 죽음 앞에서 소망했던 약속의 땅보다 더욱 분명한 복,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나라를 바라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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