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에베소서 강해 29 에베소서 2:11-18 (1)

따뜻한 진리 2024. 3. 24. 21:51

에베소서 2:11-18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안에서 일치되고 평화로운 관계를 누리길 원하셨을 것입니다. 먼저 사람이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속에서 즐겁게 순종하고, 그리고 사람들끼리도 서로 하나님을 닮은 선한 성품을 가지고 사이좋게 지내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관계들이 하나님을 중심으로 어떤 불화나 분열됨 없이 하나로 통일되고 평화롭게 되는 것이 분명 하나님 뜻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 모든 관계가 깨졌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바울은 이 두 가지 관계의 멀어짐에 대해 말합니다. 그는 2장 초반에서 하나님과 우리의 문제에 대해 말했습니다. 우리가 불순종의 아들들이었고,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 덕분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것입니다. 이어서 바울은 사람들의 관계가 깨어진 것에 대해 말하는데 유대인과 이방인이 서로 나뉘어 있던 것에 대해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불화, 소외, 갈등을 일으키는 여러 차이점이 있습니다. 인종, 종교, 계급, 재산, 지역, 학벌, 남녀라는 성, 나이에 의해 나뉘는 세대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사람들은 서로를 소외시키고 적대시합니다. 그런 많은 불화와 갈등의 원인이 있지만 바울이 유대인과 이방인이라는 구별을 말하는 이유는 당시 교회가 그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오랜 시간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한 이스라엘이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이스라엘을 이방 백성들과 다른 거룩한 자들로 선택하셨고, 그들이 주변의 다른 민족들과 다르게 하나님을 따르는 종교와 율법과 삶의 형식들을 지키면서 구별되게 하셨습니다. 성막은 유대인들의 종교적 구별점이었고,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과 제사법과 의식법이 삶을 구별시키는 기준이었고, 할례는 그들의 몸을 구별시키는 기준이었습니다.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구별시킨 장본인은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즉 유대인들을 특별하게 여기신 이유는 첫째,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실 준비를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통해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의 환경이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군대에 의해 외세로부터의 평화가 유지되고 있고, 경찰에 의해 치안이 유지되고, 법과 제도에 의해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상당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옛날, 고대로 갈수록 세상은 철저히 힘의 논리로 돌아가는 세상이었습니다. 잔인한 세상이었습니다. 부족 간의 살육과 탈취가 빈번했고 늘 죽음이 도사리고 있었고, 힘없는 개인에게 인권이라는 것은 없었습니다. 강력한 지도자에 의해 촌락이나 도시가 형성되어도 평화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현대와 같은 도덕과 법과 문명과 교양이라는 것에 의해 사람다운 삶을 사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주변의 이방인들에게도 왕과 법과 문명이 있었지만 잔인한 힘과 타락한 문화가 그들을 지배했습니다. 지금처럼 발전한 현대 문명과 문화에도 타락한 것이 가득한 데 고대시대에는 사람들이 훨씬 권력과 폭력을 행하며 노골적으로 타락한 일들을 저질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환경 속에서 이스라엘을 택해 거룩함과 선함을 가르치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실 공동체로 준비시키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땅과 후손에 대한 약속을 이스라엘을 통해 이루셔서 자신이 신뢰할 수 있는 분임을 증명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으로, 마리아의 몸을 빌어 요셉의 가정에 태어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유대인들을 선택하셔서 이방인들과 구별시키신 또 다른 이유는 하나님 나라를 예고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진짜 하나님의 나라는 아니었습니다. 모형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오직 은혜로 택함받은 자들만 소속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방인들보다 흠이 없고, 선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선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들도 악한 죄인들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선택하셔서 억지로라도 율법을 지키고, 성결한 삶을 살게 하셨기 때문에 구별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이방인들을 닮아가면 하나님이 징계도 하셨기 때문에 겉모습만 이방인들보다 조금 나은 정도의 삶을 산 것이지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 선택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분은 구원이 하나님의 선택으로 이뤄진다는 것, 그리고 구원받은 자는 하나님의 백성다운 거룩하고 선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보이시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구분은 종말 때에 선택받은 자와 선택받지 못한 자가 어떻게 나누어지는지에 대해서도 암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이스라엘만 사랑하시고, 이방인들은 배척하시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차별은 교훈을 위한 것이었지 구약의 모든 이스라엘은 다 구원받고, 모든 이방인들은 다 지옥에 간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혈통 상 이스라엘 사람이라도, 아브라함의 자손이어도 지옥에 간 자들이 있고, 여리고성 라합이나 보아스의 아내가 된 룻처럼 이방인이어도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고 사랑하는 자들은 그 신앙을 고백하며 이스라엘 가운데로 들어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착각했습니다. 자기들이 선택받은 것은 그런 역할을 위해 선택받은 것인데, 그 선택받은 것이 구원을 보장하는 것처럼 착각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집단 안에 속해 있고, 할례받고 율법 지키면 구원이 보장되는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런 것이 자신들을 우월하게 만드는 것처럼 착각했습니다. 처음부터 이스라엘은 단지 할례를 받았다고 율법을 겉으로 지킨다고 구원받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역시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았습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 죄인인 것을 깨닫고 하나님이 보내실 구원자를 믿고 의지해야 구원받았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 가운데 진짜 믿는 자, 구원받은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품에서 나온 율법도 사랑하면서 지키고, 선한 삶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려는 구원의 증거가 있어야 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런 믿음을 가지고 이방인들의 세상에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대부분 그렇지 못했습니다. 오직 은혜로 구원해주시는 하나님 앞에 겸손하지 못했습니다. 유대인의 형식만 지키면 구원이 보장된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드디어 이 땅에 오심으로 구약 시대 이스라엘의 역할은 끝이 났습니다. 이스라엘이 예표, 예고하던 그분, 하나님 나라이신 그분, 종말의 심판자이신 그분이 직접 오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리켰던 그분이 오셨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 구원이 무엇인지, 하나님 나라가 어떤 것인지를 세상에 나타내보이는 이스라엘의 모델 역할이 끝났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죽으실 때 성막의 휘장이 찢어졌고, 로마 군대에 의해 성전은 무너졌으며,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환상을 주셔서 정결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을 가리지 말고 다 먹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특별하게, 거룩하게 만들어주었던 모든 형식들이 효력이 끝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나 이방인이나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차별이 없게 된 것입니다. 인종이 어떻든, 어떤 삶을 살아왔든지,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놀라운 사실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만 선택하셔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이 얼마나 큰 운명을 결정하는지, 하나님의 선택이 가진 배타성과 심판을 예고하는 목적이 있었다면, 이제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이후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분이 사라진 것은 예수님께서 모든 차별과 우월함을 무너뜨리시고, 예수님 안에서만 이 세상이, 사람들이 하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인간들은 우월함을 느끼기 위해서, 자신의 욕심을 정당화하고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억압합니다. 인간들이 말로는 아무리 평화를 외쳐도 결코 평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그리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틴의 긴장과 고통뿐 아니라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의 경제적, 정치적 대립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만 완전한 통일, 하나 됨, 평화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만 이 땅에 평화가 임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