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8:1-35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아간의 범죄 때문에 1차 아이성 공격 때에는 침묵하셨던 하나님께서 이제는 다시 전쟁을 지휘하셨습니다. 1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두려워 말고 놀라지 말라고 격려하시면서 아이성에 대한 승리를 보장하십니다. 그것은 1장에서 하나님이 여호수아를 격려하신 내용과 유사하고, 여리고성 때의 분위기가 다시 재현되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지시하신대로 여호수아는 삼만의 군대를 밤에 보내어 아이성 근처에 매복시켰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 자신은 다음 날 아침 다른 군사들을 이끌고 아이성을 향해 전진했습니다. 그러자 아이 왕은 이스라엘이 또 다시 공격해 오는 것을 보고 급히 싸움을 하려고 나갔습니다. 여호수아의 군대가 도망치는 척 후퇴를 하자 아이성의 모든 군대가 이스라엘을 추격했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자기들을 성에서 멀리 떨어지게 하는 유인책인 줄 몰랐던 것입니다. 그 때 매복해있던 이스라엘 삼만의 군대가 아이성을 공격했습니다. 이스라엘을 향해 돌진했던 아이왕의 군대는 뒤늦게 자신들의 성에 생긴 일을 알았지만 여호수아의 군대와 아이성을 공격하던 군대 양쪽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전멸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이왕은 하나님께 저주 받았다는 표시로 나무에 달려 죽게 됩니다(신21:22-23).
그렇게 아이성 정복이 일단락 된 후 여호수아는 에발산에 사람이 가공하지 않은 돌로 제단을 쌓고 번제물과 화목제를 드린 후 백성들 앞에서 모세의 율법을 돌에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의 절반은 그리심 산 앞쪽으로, 절반은 에발산 앞쪽으로 서게 한 후 여호수아는 모세의 율법을 낭독해서 듣게 했습니다. 그렇게 여호와의 말씀을 듣는 자리에는 이스라엘 백성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도 있었습니다. 33절을 보면 “본토인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35절을 보면 “동행하는 거류민들 앞에서”라는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이스라엘”이라고 불리는 사람들 안에는 이방인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승리를 보장하시는 이유는 이스라엘의 혈통 때문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범주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받고 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본문의 두 번째 아이성 전투는 이러한 ‘승리’라는 결과 말고도 또 다른 특이점이 있는데 그것은 2절에서 언급하는 대로 승전물을 이스라엘이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리고성 전투 때에는 이스라엘이 승전물을 갖지 말라고 하셨고, 그것에 불순종한 아간의 죄로 인해 1차 아이성 전투에서 패배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왜 이번 아이성의 승전물은 이스라엘이 소유해도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이전부터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여리고성 전투에서는 승전물을 가지지 말라고 하셨다가, 아이성 때는 가지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시면서 변덕스럽게 요구하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지난 시간에 설명한대로 여리고성의 경우는 하나님이 첫 승리로서, 율법에 제시된 첫 소산물의 원칙에 해당되므로 하나님께 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이성 부터는 이스라엘이 승전물로 가져도 된다고 확인시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에게 선물로 주시지만 그런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를 이스라엘이 표현하기 위해 첫 소산 여리고성을 모세의 율법대로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야 했습니다.
사실 그런 규례들은 모세를 통해 이미 하나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백성들은 알아서 기억하고 순종했어야 했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잊지 않고 적용하도록 여리고성 때에는 전리품을 갖지 말라고 하시고, 아이성 때에는 이제 가져도 된다고 일일이 다시 말씀해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관성 있는 배려였습니다. 전쟁 속에서 지시하신 새로운 말씀은 옛 모세의 율법과 다른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전에 주신 그 율법을 새로운 땅에서 실제로 적용하도록 도와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친절한 배려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말씀이나, 명령을 하시거나 어떤 복과 저주를 내리실 때 기분대로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인간은 자기가 뱉은 말과 인격이 일관적이지 않습니다. 또 과거와 현재의 말이 일관적이지 않습니다. 기분에 따라 말의 내용도 바뀌고, 말에 대한 실천의지도 바뀝니다. 그래서 우상도 그것을 만든 인간의 변덕스러움을 그대로 반영하기 때문에 이것을 원했다가 저것을 원했다가 합니다. 날씨와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불변하는 자신의 존재와 본질을 바탕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런 변함없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유익을 얻기 위해 사람은 하나님이 처음 말씀을 주셨을 때 주의 깊게 잘 듣고 기억해서 순종해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복해주셔도 놓쳐버리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말해주셔도 불순종합니다. 그래서 아간 같은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모세 때 주신 말씀을 가나안에서, 가나안의 첫 전쟁에서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를 친절히 안내해주셨는데도 순종하지 못한 것입니다.
자녀는 부모가 이것은 하고 이것은 하지 말라 하고, 전에는 하지 말라고 했다가 이제는 해도 된다고 하는 부모의 말이 일관성 없는 말, 잔소리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넓은 시각에서 사랑이라는 일관성을 가진 개입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백성이 잊었던 명령을 가나안이라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 단계적으로 나눠서 다시 명령해주신 것입니다. 배려를 통해 하나님의 본심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경험한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얼마나 주의를 기울이고 순종했느냐가 중요합니다. 여호수아는 1차 아이성 전투의 실패와 2차 전투의 승리로 인해 백성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재무장되어야 함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백성들 안에 확고히 자리 잡혀 있을 때에 어떤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어떤 지시를 하셔도 그것이 생소하지 않고, 또 순종할 수 있는 기본 태도를 형성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아이성 전투에서 승리한 후에 율법을 백성들에게 낭독했습니다.
여호수아가 모세의 율법을 그렇게 읽어주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후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애착을 가지고, 그것을 주야로 묵상하며 좌로나 우로나 치우지지 않고 순종하기를 즐겨했을까요? 단기적으로는 그들이 잘 했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그들은 실패했습니다. 아마도 여호수아가 말씀을 낭독하는 중에도 딴 짓을 한 사람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간 같은 사람이 있었을 것입니다.
수학공식만 응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도 응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수학공식을 응용하려면 원리를 이해해야 하고, 공식을 외우고 있어야 하듯 하나님의 말씀을 응용하려면 그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해야 합니다. 율법,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향한 사랑이 그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이 처음 명령하신대로 그 말씀을 입에서 떠나지 않게, 주야로 그것을 묵상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 삶의 다양한 실제 속에서 말씀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반복되는 주의 말씀에서 주님의 배려와 사랑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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