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예측할 수 없는 징계와 구원 (삿 3장)

따뜻한 진리 2016. 3. 27. 22:55

사사기 3장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하나님 앞에서 반복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우리는 오직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얻어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은 그런 성숙한 신앙을 순탄하게 얻지 않습니다. 보통 인간은 자기 교만과 어리석음으로 고난을 당하다가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에 굴복하는데,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다음 세대 역시 그런 굴레를 벗어나지 못할 것을 예상했고, 사사기는 그런 우려대로 이스라엘이 쇠락의 길로 갔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앞의 본문 216절부터 23절은 그런 쇠락의 길이 사사기 역사 속에서 유사한 패턴으로 수차례 반복된다는 것을 말해주는데, 그 패턴은 반역-보응-회개-구원으로 나타납니다. 이 패턴을 기본으로 해서 어떤 사사 때에는 좀 더 단계가 세분화되거나 반대로 어떤 사사 때는 그 패턴이 단순하게 생략되어 열두 명의 사사들의 이야기가 진술됩니다.

 

    본문 3장에서부터 본격적으로 그 사사들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본문 7절을 보면 그 때는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섬길 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선 메소포타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압제 아래에서 이스라엘이 8년 동안을 괴롭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메소포타미아는 근처 가나안 족속이 아니라 먼 지역입니다. 하나님께서 메소포타미아의 족속으로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가나안 지역의 거대 세력들이 가나안 정복 과정에서 약해져서 아직 이스라엘을 괴롭힐 만한 힘을 회복하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고, 또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과 동화되어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서 아직 이스라엘에 시비를 걸만한 세력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무시하고 관계를 깬 이스라엘을 징벌하시려고 먼 곳에서부터 심판의 도구를 데려오신 것입니다.

 

    이 메소포타미아의 구산 리사다임 때문에 세워진 사사가 옷니엘인데 그는 사실 1장에서 이미 등장합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들을 쫓아내지 못하고 함께 거주했다는 내용이 나오기 직전, 그것과 대조되는 모범적인 사례로서 갈렙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옷니엘은 그런 갈렙의 친척답게 모범적인 인물로서 적들을 점령하며 등장했습니다. 그는 혈통이나 경력이 검증된 사람이었습니다. 10절을 보면 여호와의 영이 옷니엘에게 임했다고 합니다. 그는 사람들이 보기에 특별한 자였습니다. 옷니엘은 메소포타미아왕 구산 리사다임을 이겼고,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로 있었던 40년 동안 이스라엘은 평온했습니다. 옷니엘은 사사 중에서도 모범이었고, 본문도 그의 어떤 단점도 말하지 않으며, 반복되는 패턴인 반역-보응-회개-구원의 요소도 정돈되어 깔끔하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어서 다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12절을 보면 이번에도 동일하게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했다는 반역의 요소가 나오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압왕 애글론을 강하게 하셔서 악을 행한 이스라엘을 보응하셨습니다. 그런데 모압 역시 가나안 족속이 아닙니다. 또 민수기 22장을 보면 모압은 한 때 이스라엘을 두려워했던 족속인데 모압왕 애글론이 암몬과 아말렉 자손들을 모아서 이스라엘을 공격했으니 이스라엘은 매우 당혹스러웠을 것입니다. 13절을 보면 그 연합군이 종려나무 성읍을 점령했다고 하는데 이 종려나무 성읍이 가리키는 곳은 여리고성이 유력(34:3) 합니다. 그것이 옳다면 가나안 정복 역사에서 가장 극적이고 중요한 지역을 잃은 것입니다. 모압의 공격은 그만큼 이스라엘에게 비참함을 느끼게 한 것입니다. 또 이스라엘은 앞의 메소포타미아 왕은 8을 섬겼는데, 이번 모압왕 애글론은 십년을 더해 18년 동안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께서 새로운 사사를 세우셨는데 그는 왼손잡이 에훗입니다. 그가 왼손잡이라는 것은 신체적인 결함일수도 있고. 오른손잡이인 적들을 상대하는 일에 유리하려고 왼손을 능숙하게 훈련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정상적이지 않은 이상한 요소입니다. 에훗은 다른 이스라엘 자손들과 공물을 바치러 갔다가 개인적으로 에글론 왕을 만나게 되었고 오른쪽 허벅지에 숨겨둔 칼을 빼들어 에글론 왕을 죽입니다. 에훗은 이스라엘 자손들과 함께 모압을 멸했고 80년 간 이스라엘은 평온했습니다.

 

    그 다음 사사는 삼갈이라는 사람인데 그 내용이 31절 한 절 밖에 안 됩니다. 반역-보응-회개-구원의 패턴도 생략되어있고, 삼갈은 소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육백 명을 죽여서 이스라엘 구원했다고 나옵니다. 삼갈은 일반적으로 무기로 사용되지 않는 것을 사용해서 뜻밖의 승리를 얻었습니다.

 

    본문이 강조하는 것은 먼저 이스라엘이 범죄했을 때 하나님께서 예상치 못한 당혹스러운 요소로 이스라엘을 징계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예상치 못한 먼 나라의 족속들, 한 때 우습게 여겼던 족속이 이스라엘을 괴롭게 했습니다. 또 가나안 땅에서 자신들이 주도권을 얻게 된 상징인 여리고성을 뺏김으로써 굴욕적인 경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은 너무나 강퍅해서 징계가 반복되면 그마져도 둔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전에 당해본 적이 없는 일로 징계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하나님의 징계를 피하기 위해 이전의 징계 유형을 파악해서 대비를 하고 빠져나갈 수가 없습니다. 또 사람은 이전에 이 정도까지 하다가 벌 받았으니 이번에는 그 이하로 하면 괜찮겠지 하는 착각을 하지만 하나님께서 징계를 하시는 죄의 수준도 기계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로 우리를 징계하시고 죄를 인정하게 하십니다.

 

    본문이 강조하는 또 다른 것은 징계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방법도 예상치 못한 방법이었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사사 옷니엘과 다르게 에훗과 삼갈은 뭔가 이상하고 어색한 행동들을 보여줍니다. 아마도 이스라엘은 그런 자들이 자신들에게 구원의 기회를 제공하는 도구가 된다는 사실이 당황스러웠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자들이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도구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사들이 이스라엘에게 얼마나 자랑스런 지도자가 될 수 있는가는 관심이 없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 해괴한 자들이 사사로 하나님께 쓰임을 받았다는 것, 그런 사사들을 통해 구원이 임했다는 것은 그만큼 이스라엘의 상태가 어떠했는지를 반증하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에게 자랑스럽지 않은 구원자를 보내셔서 무언가를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사람의 반복적이고, 점점 대담해지고, 구태의연한 죄악을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전혀 예상치 못한 기상천외한 일로 압도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은 지겹게 불순종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지겨워 할 수 없는 새로운 도구들로 죄를 깨닫게 하시고,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징계와 구원은 당혹스러울 정도로 예측할 수 없고 새롭습니다. 인간의 삶에는 새로운 것이 없고, 진부하고 틀에 박힌 죄의 반복이 계속되지만 하나님은 그런 가망 없는 백성들에게 예상치 못한 일로 각성의 기회를 주시고, 구원을 끊임없이 베풀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