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삿 6장)

따뜻한 진리 2016. 4. 10. 23:40

사사기 6장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하나님께서 드보라, 바락, 야엘을 통해 이스라엘을 가나안 왕에게서 구원하시고 평안한 시기를 허락하시자 이스라엘은 어김없이 또 악을 행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미디안 족속을 통해 이스라엘을 징계하셨습니다. 미디안은 그 숫자가 매우 많아서 마치 메뚜기 떼 같았고, 한 번 올 때면 근처에 장막을 치고 거주하면서 이스라엘의 것을 탈취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에는 남는 것이 없어 궁핍함이 심했습니다.

 

    미디안 때문에 이스라엘이 부르짖자 하나님께서 사사를 또 보내셨는데, 이번에는 사사를 보내시기 전 선지자를 먼저 보내셨습니다. 그 선지자는 앞서서 모세나 여호수아가 반복하며 말했던 내용인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시고, 가나안 땅을 주신 그 하나님을 기억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그런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있는 것을 지적했습니다. 백성들은 부르짖을 때 빨리 고통스런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랐겠지만 하나님께서는 먼저 백성들의 잘못을 분명하게 지적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다급한 상황에서 그런 훈계를 들어야 했던 이유는 백성들 자신의 반복되는 죄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들에게 훈계하시면서도 잘못을 일방적으로 지적하시지만 않고, 자신과의 관계와 약속을 기억시키면서 잘못을 깨닫도록 하셨습니다. 그런 후에 구원자인 사사를 보내셨는데 그 사람은 기드온입니다.


    기드온의 등장은 그가 여호와의 사자를 만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 때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지면에서 움푹 들어간 포도주 틀에 숨어서 밀을 타작을 하고 있었는데,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서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며 기드온을 불렀습니다. 기드온은 그 말에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면 왜 우리한테 이런 일이 생기는 거냐고 반문하자 여호와께서는 기드온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보잘 것 없는 자기 가문과 자신의 능력을 핑계로 주저하면서 지금 말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지를 증명해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기드온이 예물로 고기와 무교병 빵을 가져왔는데, 그것이 불에 타자 기드온은 두려워했고, 여호와께서 기드온을 안심시키시자 기드온은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 날 밤 여호와께서는 기드온에게 아버지의 소유인 바알 제단과 아세라 상을 없애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기드온은 그 동네 사람들이 두려워서(27) 밤에 몰래 바알 제단과 아세라 상을 부수었고 그 일을 알게 된 동네 사람들은 기드온을 죽이려 했지만 그 우상들의 소유주인 아버지 요아스가 아들 기드온을 구해냅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의 우상숭배 수준이 어떤 정도였는지 드러납니다. 그들은 우상숭배가 잘못인 줄 알고 숨기며, 죄책감을 갖고 했던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우상 편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기드온을 죽이려 했습니다. 하나님께 향해야 할 열심이 완전히 우상에게로 넘어간 것입니다. 다행히 기드온은 아버지 요아스 때문에 위기를 넘겼지만 요아스가 아들의 행동에 자극을 받고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아들 편을 든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저 자식을 보호하려는 부모의 입장이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자 지도력이 생긴 기드온은 나팔을 불며 군사들을 모았고, 전쟁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두려움 때문에 또 주저합니다.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정말 자기를 통해 구원하시려거든 증거를 보여 달라면서 자신이 땅에 양털뭉치를 놓을 테니까 밤 동안 양털뭉치만 젖게 하시라고 하나님께 요구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양털뭉치만 젖게 하셔서 증거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이 이번에는 반대로 양털은 말라 있고, 땅은 젖어 있게 하시라고 요구를 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또 해주셨습니다. 그것은 당시 근동지방의 나라들이 자신들의 신에게 뜻을 묻는 방법과 유사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요구에도 응하셨습니다. 그래서 기드온은 군사들을 인솔해서 전쟁터에 나가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앞에 나왔던 다른 사사들의 이야기에서는 그들의 활약이 바로 시작되는데, 기드온의 경우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하기까지의 과정을 본문이 상세히 다룬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만큼 기드온의 순종이 쉽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기드온은 자기 앞에 나타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았고(22),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자신을 사용하신다는 증거를 봤지만 계속 흔들립니다. 정말 여호와가 자신들을 위해서 함께 하시는 분이신지 확신하지 못한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기드온을 인도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인도하신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지 않고, 하나님이 인도하셔서 무슨 현실적 유익과 보장이 있는가에 관심을 갖습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한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가르치셨습니다. 그런 한계를 가진 기드온이지만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인도하시기 때문에 고난이 사라지고, 현실적 유익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인도하신다는 사실에 붙잡히도록 기드온을 끌고 가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 때문에 기드온은 죽을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혔고(22-23), 함께 하시는 그 하나님의 명령대로 우상을 파괴했다가 죽을 뻔했습니다(30). 그리고 영으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 때문에 군대를 모으게 되어(24-25) 이제 위험한 전쟁을 주도해야 한다는 불안을 겪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함께 하심 때문에 기드온에게 곤란한 일만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기드온에게 하나님은 죽지 않으니 두려워 말라고 안심하라고 말씀하셨고, 예상 밖의 인물인 아버지 요아스를 통해 살리셨고, 전쟁을 앞두고 주저할 때 신비로운 증거로 확신을 주셨습니다.

 

    기드온의 말대로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왜 이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습니까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인도하신다면 그 내용이 순탄한 것이기를 바라고, 그럴 때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라고 말하고 싶지만 꼭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방법과 원하지 않는 방법을 자신의 주권대로 배열하셔서 자신이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드러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안락한 길로만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과 타인의 죄로 인해 고통을 겪는 길로도 보내십니다. 그런 과정 중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 속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해결하신다는 것을 가르치십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사람의 죄악을 이기시고 진정 선하게 인도하신다는 것을 가르치십니다. 그 죄를 다루는 고통이 싫지만 죄인이 우리와 함께 해주신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를 알게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일을 예고하시려고 기드온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용사라는 호칭으로 부르셨고, 그가 동의할 수 없었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자신이 함께 하신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치셨고, 두려움에 갇힌 그를 용사가 되게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기드온에게 그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또 이스라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 인생에 여러 일들이 일어납니다. 인생 속에서 우리가 좋아할 만한 일과 싫어할 만한 일, 그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은 자신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구원받은 자는 이 세상 어떤 것보다 그 사실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가장 큰 복이며 위로로 여길 것입니다. 그런 자들은 영원토록 그분과 함께 하는 것을 기뻐하고 감사할 것입니다. 영생의 의미를 알 것입니다. 그 성도들은 왜 예수님이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증거이신지를 알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