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4-16장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삼손은 사사기에서 지금까지 다뤄졌던 여러 사사들 중 탈선이 극에 달합니다. 특별히 삼손은 자기 욕망에 사로잡혀 나실인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상실하고 행동합니다. 삼손은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것들을 연속적으로 어기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 때문에 힘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사적인 복수를 하면서 블레셋을 공격합니다. 그 과정에서 삼손의 행동은 정욕과 폭력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는 동서고금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저지른 자의 몰락을 가져오는 대표적인 죄입니다. 삼손 이야기에서는 정확히 이 두 가지 죄로 발생한 일들이 연속적으로 등장합니다. 신비롭게도 그런 망나니 같은 삼손의 삶이 이스라엘을 블레셋에서 구원하는 하나님의 의도대로 사용됩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압제를 당연시하고 잘 지내면서 더 이상 하나님께 부르짖지도 않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삼손을 통해 블레셋과 시비가 일어나게 하셨고, 블레셋을 치기도 하셨습니다. 그렇게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잊고, 자기 정체성을 잃었을 때, 동일하게 하나님을 잊고 나실인의 정체성을 잃은 사사 삼손으로 하나님은 구원의 손길을 베푸셨습니다.
이제 본문을 통해 삼손의 이야기를 자세히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그는 블레셋 여자를 좋아했습니다. 블레셋 여자라는 사실에 그의 부모가 삼손을 말렸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결혼을 추진합니다. 그 과정에서 삼손은 포도원에 갔다가 젊은 사자가 달려들자 죽였는데 부모에게 알리지 않았습니다. 또 얼마 후 삼손은 그 죽은 사자의 사체에 생긴 벌집에서 꿀을 채취에 자신이 먹고 부모에게도 가져다주면서 어디서 난 것인지 말하지 않았습니다. 나실인의 금지사항을 어긴 일들이 일어난 것입니다.
삼손은 자신이 원한대로 드디어 블레셋 여자와 혼인을 하게 되었고, 잔치에서 블레셋 성읍 사람들에게 옷을 상품으로 걸고 수수께끼를 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도저히 답을 맞힐 수 없자 삼손의 아내에게 가서 삼손을 통해 답을 알아내지 않으면 그녀와 아버지의 집을 불사르겠다고 협박합니다. 삼손이 답을 알려주지 않자 아내는 삼손에게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는 말도 하고, 잔치기간 내내 떼씁니다. 그래서 결국 삼손은 아내에서 답을 말해주었고, 그것을 전해들은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에게 정답을 말하자 삼손은 내막을 알면서도 약속대로 행합니다. 그런데 삼손은 아스글론이라는 지역으로 가서 그곳 사람들을 죽이고 빼앗은 옷으로 상품을 줍니다.
삼손이 화가 나서 잠시 부모의 집으로 간 사이에 장인은 삼손의 아내를 삼손의 친구였던 자에게 넘겨줍니다. 그 사실을 안 삼손은 수수께끼 사건 때부터 쌓인 분을 쏟습니다. 그는 여우 삼백 마리를 두 마리씩 서로 꼬리를 묶고 그 사이에 횃불을 붙여서 풀어놓아 블레셋의 농작물을 폐허로 만듭니다. 그러자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이 그렇게 한 원인이 삼손의 장인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그 장인과 아내를 불살라 죽입니다.
그러자 삼손이 죽은 아내와 장인의 원수를 갚겠다고 블레셋 사람들을 죽였고 분노한 블레셋이 이스라엘 백성을 대상으로 전쟁을 하려고 유다에 진을 칩니다. 유다 사람들이 삼손에게 ‘왜 우리를 다스리는 블레셋을 건드렸냐.’면서 꾸짖습니다. 이상합니다. 가나안 족속을 물리쳐야할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의 지배를 당연시하고, 또 삼손의 품행이 어찌됐든 그가 가진 능력이 블레셋과 한 번 맞붙어 볼 기회를 주는데도 유다 사람들은 싸워서 자유를 되찾으려는 의지조차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유다 사람들은 삼손을 결박해서 블레셋에 넘겨줍니다. 그러나 삼손은 결박을 풀고 나귀의 새 턱뼈로 블레셋 사람 천 명을 죽입니다.
이후 16장에서 삼손은 창녀와 밤을 보냈고, 이후 들릴라라는 여자를 사랑하게 됩니다. 블레셋 지도자들이 들릴라를 엄청난 금액의 돈으로 매수해서 삼손의 괴력을 무력화할 방법을 알아내게 합니다. 삼손이 쉽게 알려주지 않자 들릴라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군요.’라면서 앞에서 죽은 삼손의 아내와 똑같은 말로 협박을 합니다. 그 여자들은 정작 자신이 삼손을 사랑하지 않고 이용하려면서 일방적으로 사랑을 증명하라는 덫을 놓았습니다. 삼손은 또 넘어갔고, 머리털이 잘린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끌려가 두 눈이 뽑히고 맷돌질을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블레셋의 다곤 신에게 제사하는 큰 축제가 있어 많은 블레셋 사람들이 모였는데 그들이 삼손을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장소로 데리고 와 재주를 부리게 해서 구경거리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삼손은 거기서 두 기둥을 잡고 건물을 무너지게 해서 많은 블레셋 사람들을 죽이면서 함께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가족들이 와서 삼손을 장사했습니다.
삼손의 삶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를 통제할 수 있었던 사람은 없었습니다. 부모도, 이스라엘의 유다도, 블레셋도 그를 막지 못했습니다. 삼손이 사랑했던 여인들도 삼손을 쥐락펴락하는 것 같았지만 오히려 그 여자들의 개입은 자기 공동체에 더 큰 화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아무도 통제하지 못했습니다. 삼손을 움직인 유일한 존재는 하나님이십니다. 14:4절을 보면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까닭에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함이었으나 그의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인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라고 되어 있는데, 번역 오류입니다. 원문을 근거로 바르게 해석하면 이렇습니다. “그의 부모는, 그것이 주님께로부터 나온 줄 알지 못했다. 그가 블레셋 사람을 치실 계기를 찾으셨기 때문인데 왜냐하면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입니다. 그러니까 “틈을 타서 블레셋을 치려” 했던 그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게 어느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고 자기 욕구와 자기 판단대로 행하는 삼손을 하나님이 움직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삼손에게 힘을 주셨고, 매력적인 블레셋 여인을 만나게 하셨고, 그의 가는 길에 포도원을 두셨고, 그의 앞에 공격적인 사자를 보내셨고, 그 죽은 사자의 몸에 벌들이 꿀이 가득한 집을 만들게 하셨습니다. 그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에 수많은 것들, 사건들을 두십니다. 그 자체는 죄와 무관합니다. 마치 에덴동산 아담과 하와의 활동영역에 선악과를 두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눈앞에 두신 것을 통해 ‘하나님이 원인 제공자’라는 핑계를 대면서 자기 권리를 행사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앞에 어떤 것, 어떤 일을 두신 하나님께 책임을 돌리면서 자기 마음대로 반응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삼손은 자기 마음대로 했습니다. 그것들로 죄를 범했습니다. 이방 여자에게 마음을 주었고, 포도원을 지나갔고, 사자를 죽였고, 사자의 사체에서 꿀을 취했고, 쓸데없이 자신의 무용담을 자랑하려고 수수께끼를 내었다가 피의 악순환을 촉발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은혜를 망각하고 패역한 삶을 살았을 때도 그런 백성들을 사용하시고 구원하셔서 하나님 자신이 살아계시며, 오래 참으시고 조건 없이 사랑과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심을 세상 가운데 드러내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삼손의 결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런 그를 사용하셔서 자신이 어떤 분인지를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삼손의 삶과 죽음이 의미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삼손의 삶은 그런 식으로 쓰임 받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결과를 책임져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우리의 삶 역시 하나님께서 사용하십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풍성하게 드러날 수도 있고, 우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구원과는 무관하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쓰임을 받지만 하나님께 옳다고 인정받지 못하는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처한 현실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습니까?
28절을 보면 삼손이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을 기억하고 부르짖었습니다. 자신을 생각해달라고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하나님이 삼손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으신 적이 있었겠습니까? 기억하고 생각하는 일은 삼손이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기억할 표식도 자기 몸에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긴 머리가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생각하며 그분의 존재와 말씀과 성품에 통제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늘 기억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매 순간, 자신의 욕망과 감정이 불탈 때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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