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3:1-25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삼손은 사사들 중 가장 유명합니다. 삼손이 등장한 때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바닥으로 떨어진 시점입니다. 1절을 보면 이스라엘이 또 다시 여호와 앞에 악을 행하자 사십년 간 블레셋의 손에 고통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더 이상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부르짖었다는 말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찾지 않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또 15장 7절을 보면 삼손이 블레셋 사람들을 건드려서 전쟁을 해야 하는 곤란한 상황이 되자 유다족속이 삼손에게 “너는 블레셋 사람이 우리를 다스리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꾸짖으면서 블레셋의 압제를 당연시했습니다.
조건 없는 은혜가 계속 베풀어질 때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상태가 이스라엘에 일어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계속 경험했을 때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철이 든 것이 아니라, 아낌없이 베풀어진 은혜를 남용하면서 상태가 악화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죄로 인한 고통 속에서도 더 이상 하나님을 찾지 않는 이스라엘인데도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끈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사사를 세우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상태가 이전보다 안 좋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번 사사를 세우실 때 다른 어떤 사사들의 생애보다 앞서 개입하시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그 사사가 태어나기 전 부모에게서 부르심이 시작됩니다. 마노아라는 사람과 아내 사이에는 아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사자가 그 아내에게 나타나서 아이를 낳게 될 것이라고 말해줍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마노아의 아내 자신과 그녀가 낳을 아이에게 나실인의 규칙들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민수기 6장을 보면 나실인은 여호와께 자신을 구별하여 드리기로 서원한 사람인데, 세 가지 금지사항을 지켜야 합니다.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먹어서는 안 되고, 시체를 만져서는 안 되고, 머리카락을 잘라도 안 됩니다. 그 기간은 몇 십일이 될 수도 있고, 평생이 될 수도 있는데 서원한 기간이 끝나면 그동안 자란 머리털을 잘라서 제물과 함께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마노아의 아내가 그 사실을 남편에게 알리자 마노아는 하나님의 사자를 다시 보내어 자신을 포함한 “우리”에게 다시 가르쳐 달라고 기도했습니다(8절). 그런데 정말 하나님의 사자가 다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마노아가 없을 때 나타났고, 그래서 아내는 급히 마노아를 불러옵니다. 마노아가 하나님의 사자를 만나자 또 다시 “우리”가 아이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려달라고 하자(12절) 사자는 이전에 이미 너의 아내에게 말했던 나실인의 규칙을 그녀가 지켜야 한다고 다시 일러주었습니다.
이번에는 마노아가 음식을 좀 대접하겠다고 요청하자 사자는 거절하면서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했습니다. 또 마노아가 “이름을 알려주시면 당신의 말씀이 이루어질 때에 우리가 당신을 존귀히 여기리이다.”라면서 이름을 물었습니다. 마노아는 자신에게 말씀하고 계신 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모르고 나중에 말씀이 이뤄지는 것을 봐서 기억하고 존귀히 여기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사자는 어째서 내 이름을 묻느냐 내 이름은 “기묘자”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기묘자라는 것은 기이하고 묘한, 즉 경이롭다는 뜻입니다. 이사야 9:6절에도 등장하는데 거기서는 예수님이 그런 경이로운 분이라고 예언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기묘자”가 사용된 것은 마노아 네가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사용된 것입니다. 일종의 책망을 하시면서 동시에 자신이 누구신지를 알리신 것입니다.
마노아가 제물을 가져오자 불꽃이 제단에서 일어나서 하늘로 올라갔고, 하나님의 사자가 그 불꽃에 싸여 올라갔습니다. 마노아는 그제야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줄 알고 자신이 죽는 거 아닌가하고 두려워했습니다. 마노아의 아내는 여기서 통찰력 있는 대답을 하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죽이실 것이었으면 이런 만남과 말씀을 왜 주셨겠느냐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마노아의 가정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일에 사용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마노아는 자신이 소외되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역할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아내에게만 나타난 사자를 다시 만나려고 기도도 했고, 자신도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물었고, 사자에게 음식을 대접하려 했고, 이름도 물었습니다. 그런 마노아의 요구에 하나님께서 사자를 통해 답을 하시긴 했지만 잘 살펴보면 그것은 마노아의 개입을 거절하신다는 것을 확인시킨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자는 또 다시 아내에게만 나타났고, 이미 아내에게 다 말했다면서 아내가 금해야 할 내용만 말했고, 음식도 거절했고, 이름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마노아가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줬지만 그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무지한 열정이었습니다. 마노아는 자기 아내가 하나님의 사자 같다고 말했을 때도(6절) 눈치를 채지 못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나중에 불꽃에 휩싸여 올라갈 때 비로소 두려워하기만 했습니다. 마노아는 그런 사건들이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신 증거임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사람에게 인격적으로 나타나서 말하고, 사람에게 부정한 것을 멀리하길 바라며,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여자가 아이를 낳게 할 수 있는 존재는 하나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우상들은 그런 것을 할 수 없습니다. 마노아가 그렇게 영적으로 무딘 것은 기드온과 입다가 보여줬던 모습이 계속 나타나는 것입니다. 마노아는 하나님을 몰랐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도 모르면서 뭔가 하겠다고 나서는 어리석은 열심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마노아의 아내는 영적 감각이 나름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하나님의 사자를 알아보았고, 마노아가 죽을까봐 두려워할 때 하나님의 의도를 깨닫게 하면서 진정시켰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마노아의 아내에게도 무엇인가 하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나실인의 규례대로 무엇인가를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자인 사사를 기다리는 일에 있어서 그의 부모가 적극적으로 특별하게 행할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 부부를 통해 이스라엘에 주실 사사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행하실 분은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래서 24절과 25절을 보면 그 아이가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셨고,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그의 백성다운 삶을 살고, 헌신하기 위해 어떤 적극적인 행위를 하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것들을 먼저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금지 명령을 통해 자기 백성과의 관계를 설정하시고, 백성의 정체성을 지키게 하시고, 복을 누릴 수 있는 조건으로 제시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선악과를 금지하셨고, 십계명 조항의 대부분이 금지조항이고, 이스라엘이 약속된 땅을 유지하기 위해 지켜야 할 것도 모세율법에 근거한 우상숭배 금지였습니다(수23).
금지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옭아매려는 횡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범위는 우리의 활동 영역에서 극히 일부이고 최소한의 규정입니다. 그 금지규정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깨지지 않도록 지키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다양한 일들을 하기 이전에 금지하신 것들을 어깁니다. 금지된 것을 지키는 일에 실패하고 맙니다. 그만큼 사람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성취하기 이전에 금지된 것을 어기는 일로 넘어지고, 자격을 상실합니다. 이스라엘이 구원자 사사를 필요로 할 만큼 가나안 땅에서 고통을 겪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무슨 대단한 헌신을 못해서가 아닙니다. 금지된 일들을 어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문제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마노아 개인에게서도 드러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진실하게 알게 된다면, 우리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행하기에 얼마나 부적당한 자인 줄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겸손하게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들을 먼저 지키는 가운데, 거룩을 추구하는 가운데 어떤 적극적인 순종을 하는 것이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몸에 좋은 음식을 먹고 운동을 해도, 해로운 것들을 금하지 않고서는 소용이 없는 것처럼 우리는 소극적인 차원에서 하나님이 금하신 것들, 죄를 멀리하는 일을 먼저 성실하게 감당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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