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0-12장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이 죽은 후에도 여러 사사들이 있었습니다. 10장부터 12장은 입다라는 사사에 대한 이야기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는데, 그 앞뒤로 다섯 명의 사사들이 짧게 등장합니다. 이들 이야기의 특징은 하나님께서 세우셨다는 언급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사사가 되었습니다. 또 사사 야일과 입산과 압돈의 경우에는 그들에게 수십 명 씩 되는 자녀들이 있었고 그 자녀들이 누렸던 부를 기록하는데 그것은 기드온의 경우처럼 그들이 세속적으로 상당한 지위를 누렸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부와 권력은 세습되기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사사들의 그런 상태로 드러난 분위기에 걸맞게 6절을 보면 이스라엘은 이제 아주 다양한 신들을 섬겼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적들로 이스라엘을 징계하셨는데 이번에는 블레셋과 암몬 이렇게 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또 새로운 방법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살려달라고 부르짖자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가서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구원해달라고 해라’라고 말씀하시며 거절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속 구원을 베푸셨는데도 이스라엘은 자꾸 우상을 섬겼고, 그러면서도 뻔뻔하게 도움을 구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비인격적으로 대하고, 무시하면서도 이기적으로 도움을 받으려 할 때 하나님은 응할 의무가 없으십니다. 우리가 잘못만 인정하면 하나님이 꼼짝 못하시고 기계적으로 우리를 용서하셔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용서와 구원은 철저히 하나님의 주권에 따라 베푸실 수도 있고, 거절하실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용서하시는,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것은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죄의 심각성에 따라 인격적으로 다루십니다. 그 의미는 사사기에서 드러나듯, 용서하시되 갈수록 강한 징계가 수반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구했고, 이번에는 진지하고 반성한다는 뜻으로 우상들도 없앴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근심하셨다고 16절이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즉시 구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기다리지 않고 자기네들끼리 전쟁을 준비합니다. 18절을 보면 길르앗 사람들은 누구든지 전쟁을 이끌어주면 지도자로 삼겠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입다가 등장하는데 입다는 자기 아버지가 첩을 통해 낳은 아들이어서 다른 아들들한테 천대받고 쫓겨났었습니다. 2절에 나오는대로 다른 아들들이 입다에게 아버지의 재산이 상속되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입다를 쫓아냈던 그 길르앗 사람들이 입다에게 찾아와서 장관이 되어달라고 요청합니다. 당연히 입다는 요청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고, 이전에는 멸시하더니 왜 이제 와서 도와달라는 거냐면서 불만스럽게 말합니다. 그러자 길르앗 사람들은 요구에 응해주면 장관이 아니라 우리의 머리, 즉 왕으로 모시겠다고 합니다.
그렇게 입다는 협상을 잘 했습니다. 이번에는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암몬 왕에게 사람을 보내 협상을 시도합니다. 입다는 암몬 왕에게 왜 우리를 괴롭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암몬 왕은 이스라엘이 자기네 땅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고, 입다는 그 땅을 하나님이 주셨으니까 우리가 차지하고 있는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입다는 하나님이 사람의 소유를 주관하시는 유일한 참 신으로 여긴 것이 아니라 암몬의 신과 동일한 신들 중의 하나로 설명합니다. 그래서 24절을 보면 입다는 암몬 왕에게 ‘너희 신 그모스가 너희한테 준 땅을 지금 너희가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도 여호와가 준 땅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암몬 왕이 입다의 말에 수긍하지 않자 입다는 암몬을 공격해서 크게 승리합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습니다. 입다는 하나님께서 암몬을 이기게 해주시면 자기가 집에 돌아올 때 처음으로 자신을 맞이하러 나오는 자를 제물로 드리겠다고 말합니다. 그가 하나님을 이방 신처럼 인신제사를 받는 분으로 여긴 것도 문제인데, 하나님과 거래를 시도한 것도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입다가 암몬을 이긴 후 집에 도착했을 때 먼저 맞이하러 나온 자는 무남독녀였습니다. 하나 뿐인 자식인 입다의 딸은 그렇게 죽었습니다.
이어서 에브라임 사람들이 입다에게 찾아와서 왜 자기들을 빼고 암몬 족속과 전쟁을 했냐고 시비를 겁니다. 입다는 그들의 말에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느끼고 공격합니다. 그리고 도망치던 에브라임 사람들을 요단강 나루터에서 색출하기 위해 에브라임 사람들이 발음하지 못하는 ‘쉽볼렛’을 말해보게 해서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면 죽였는데, 거기서 죽은 에브라임 사람이 4만 2천명이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간구를 거절하신 듯했지만 입다를 통해서 그렇게 구원하셨습니다. 입다는 그 과정에서 불우한 환경을 극복하고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입다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우상의 수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또 그는 사람들과의 협상, 대화를 통해 주도권을 얻고 승리를 했지만 하나님과도 협상을 하려는, 거래하려는 문제를 드러냈습니다. 결국 입다의 장점이 자기 딸을 죽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에브라임의 시비에 분노를 참지 못하고 동족을 살육했습니다. 입다의 행위들은 기드온의 그것과 매우 유사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태도나 에브라임이 시비를 걸어온 것이나, 자기 동족을 살해한 일들이 그렇습니다. 그나마 기드온은 말솜씨로 위기를 넘겼지만 입다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악을 저질렀습니다. 그래서 입다는 기드온보다 더 치명적인 문제를 드러냈고, 그렇게 사사기 후반으로 갈수록 사사들의 상태가 심각해짐을 확인하게 됩니다.
우리가 입다의 이야기에서 주의 깊게 볼 또 다른 하나는 그들의 뻔뻔한 요구가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입다를 쫓아냈다가 다시 찾아온 길르앗 지도자들입니다. 두 번째는 입다에게 불평한 에브라임입니다. 이들은 기드온 때도 그랬고, 거슬러 올라가면 그들은 여호수아 때 분배받은 땅을 두고도 불평했던 이력이 있습니다(수17:17). 자신들이 결코 소홀히 대접받은 것이 아닌데, 자신들의 이권을 노리고 새롭게 등장하는 세력들에 계속 정치적 압박을 한 것입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께 승리를 허락해주시면 재물을 바치겠다는 제안을 한 입다입니다. 이것은 앞에서 기드온이 하나님께 증거를 요구했던 것보다 더욱 불경한 행위로써 하나님을 우상 취급했다는 것도 문제지만,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는지 결과를 보고나서 자기도 뭔가 내놓겠다는 것은 하나님을 거래대상으로 여긴 심각한 죄입니다.
이 뻔뻔한 요구들은 입다 이야기의 첫 시작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구원해달라고 요구한 것이 얼마나 뻔뻔한 일인지를 깊이 생각하게 만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너희가 섬기는 우상한테 가서 도움을 구하라고 말씀하시고 간구를 거절하시고, 구원해줘도 또 배신할 자들 때문에 근심하신 심정을 우리가 생각하도록 길르앗과 에브라임과 사사 입다의 파렴치함을 본문이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파렴치한 이스라엘의 일부분인 개인과 일부 집단에서도 동일하게 드러나고 있음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은 반복해서 하나님을 무시하는, 자격 없는 그런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거절을 말하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인내하시면서 구원하신 것을 보여줍니다. 동일하게 우리 자신의 반복되는 죄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때 그것이 쉽게,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시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간단하고 쉬운 일인 것처럼 우리가 여겨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 용서를 요구하고 은혜를 얻을 자격이 우리 자신에게는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진심으로 죄 용서를 구해도 그것은 사실 파렴치 한 것입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수록, 곤경에서 구원을 경험하고 기회를 얻을수록 마치 더 이상의 기회가 없을 것처럼 여기면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고자 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에게 그런 성숙한 변화가 없다면, 그래도 하나님은 구원을 베푸시겠지만 큰 고통을 허락하실 수 있습니다. 마치 뻔뻔한 이스라엘이 블레셋으로부터 구원받았지만 자신들의 부분인 입다의 딸이, 에브라임이 큰 희생을 치른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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