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4:32-5:11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초대교회 성도들은 재산을 자기 것으로 주장하지 않고 공동으로 소유했습니다. 그런데 이 내용은 앞의 2장 44-45절에서도 언급된 적이 있습니다. 누가가 이 사건을 다시 언급한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의 배경으로 사용하려 한 것 같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신이 가진 것들을 서로 나누었고, 특별히 땅이나 집처럼 부동산이 있는 어떤 성도들은 자기 소유를 팔아 사도들에게 맡겼습니다. 사도들은 그런 재물들을 사람들의 필요대로 나눠주었습니다. 그런 일은 자발적으로 기쁨으로 행해졌습니다. 아나니아와 아내 삽비라도 공동체의 그런 분위기 속에서 가만있을 수 없었는지, 자신들의 소유를 팔아 그 값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아나니아는 그 돈의 일부를 감추었고, 그 사실을 아내 삽비라도 알고 있었습니다. 남편 아나니아가 그 돈을 베드로에게 가지고 가자 베드로가 그의 헌신을 칭찬하면서 받은 것이 아니라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라고 꾸짖었습니다. 그러자 아나니아는 엎드러져 죽었고, 그의 아내 삽비라도 베드로 앞에 와서 거짓말을 했다가 베드로의 꾸짖음을 듣고 죽었습니다.
11절에서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했다고 말합니다. 우리에게도 매우 두려운 일이 일입니다. 그런데 그런 두려운 사건을 일으킨 주체는 베드로가 아닙니다. 베드로가 신통하게 그 부부의 마음을 훤히 들여다보고 저주를 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베드로를 사용하셔서 꾸짖으신 것입니다. 사도를 두려워하게 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두려워하게 만든 사건이었습니다. 교회가 막 시작된 특별히 시기에 사단이 교회의 신앙을 와해시키려고 하는 것을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셔서 막으신 것입니다. 마치 가나안 땅에서의 첫 전투인 여리고성 전투 때에 하나님께서 취하지 말라고 명령하신 전리품을 몰래 취했다가 죽임을 당한 아간처럼, 교회가 시작에 있어서 그 신앙의 순결성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이 개입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사단의 음모 속에서 초대교회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한 일이었습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자신의 소유를 서로 공유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그들이 인생에서 진정 중요한 것, 구원의 문제를 그리스도 안에서 해결했기 때문에 그 이외의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헛된 집착, 권리 주장을 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신뢰하는 만큼 다른 성도들, 교회 공동체를 신뢰하게 된 것입니다. 부한 자는 없는 자의 가난을 진실하게 볼 수 있고, 없는 자도 부한 자의 부를 비판하거나 부담스러워 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받을 수 있는 상태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복음 안에서 성령의 다스림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초대교회의 상태는 정말 이상적입니다. 유토피아적입니다. 초대교회와 같은 일이 이 세상에 보편적으로 일어난다면 인류 역사상 가장 행복한 세상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서로를 돌아보고 배려하는 가운데 차별도 없고, 가난도 없는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역사상 그런 일을 때때로 이 땅에 베푸셨습니다. 이 세상의 정부가 아무리 의도적으로 일으키려고 해도 일어날 수 없는 변화와 개혁을 하나님이 때때로 일으키셨습니다. 그것이 부흥입니다. 세상이 원하는 진정한 유토피아는 사람의 내면이 변화되어야 가능한 일인데, 인간은 그 일을 결코 이룰 수 없습니다. 이기적인 죄인을 바꿀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일을 오직 하나님만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초대교회를 통해 보여주신 것입니다. 사람의 내면을 바꾸신 것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구원의 기쁨에 사로 잡혀, 자신의 모든 것을 책임지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로, 예수 그리스도를 함께 믿는 형제들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재산을 나누는 일을 했습니다.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불안감 때문에 자신의 앞날을 스스로 대비하려는 본성을 그들은 내려놓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보여준 문제는 무엇입니까? 그저 밭을 판돈을 전부 그대로 바치지 않아서 문제였습니까? 아닙니다. 꼭 사용해야 할 곳이 있어서 일부를 사용했다면 하나님께서 그런 것 가지고 죽이실 분은 아닙니다. 4절에서 베드로가 꾸짖은 내용의 의미는 이렇습니다. ‘땅은 팔리기 전에도 그대의 것이었고, 또 팔린 뒤에도 그대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것인데, 그런데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할 마음을 먹었소? 그대는 사람을 속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속인 것이오.’ 그의 행동은 스스로 판단하고 자발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사탄에게 조종당한 것이었습니다. 사탄은 교회마저 인간의 생각과 행위로 움직여 갈수 있다는 착각을 심어 놓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즉 초대교회의 싹을 잘라버리고 종교로 만들려고 했던 것입니다. 복음이 없어도 착한 일을 많이 하는 종교 말입니다.
아나니아아 삽비라는 초대교회에서 일어난 일들을 보며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지고지선의 상태를 본 것입니다. 그들은 이상적인 현상에 매료되어 자신들도 참여하고자 했던 것일 뿐입니다. 바나바와 같은 사람들의 헌신에 그 부부는 동기부여를 받았고, 그런 헌신을 할 수 있는 능력도 있었습니다. 자기 결단과 의지로 성도들처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탄이 그냥 놔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죄는 죽어 있는 관념, 시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죄는 그 자체로 살아있어서 능력이 있습니다. 사람이 사탄에 의해 조종되도록 죄가 능력을 발휘합니다. 아나니아는 성령께서 초대 교회 안에서 일으키시는 일들을 목격하면서 감동이 있어서 자기도 뭔가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밭을 팔았지만 중간에 욕심이 생긴 것입니다. 공동체에서 탁월한 헌신으로 인정도 받고 처음 생각과 달리 일부를 챙겨 앞날의 안전도 확보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는 교회 안에서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선을 보면서도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자기 것을 스스로 챙긴 것입니다.
베드로가 꾸짖은 대로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잘못은 하나님을 속이려고 한 것이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33절에 발견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 예수의 부활, 즉 복음을 듣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복음 속에서 나타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그로 인한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고 그저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진기한 현상, 단지 세상에서 경험하지 못한 선한 것에 이끌렸을 뿐입니다. 그래서 자신들도 인간적으로 선한 일을 보태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엄중히 차단시키셨습니다. 교회가 그저 선한 일을 하는 단체라면 아나니아 삽비라 같은 사람들의 돈이라도 얼마든지 받아서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안 됩니다. 하지만 교회의 중요한 목적은 죄인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아는 자들이 교회의 구성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건을 통해 복음으로 거듭나지 않은 자들이 교회 안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인정을 받는 것에 대해 경계하게 하신 것입니다.
교회는 복음 없이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매력적인 공동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참으로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 하나님이 아니시고는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교회야 말로 참된 교회인 것입니다. 억지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처럼, 엄청난 은혜와 사랑이 넘치는 것처럼 우리 자신과 교회를 치장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려고 하는 것이 우리가 진정한 구원을 얻는 길이고,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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