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사울의 회심과 교회의 당황 (행 9:1-31)

따뜻한 진리 2016. 10. 16. 21:19

사도행전 9:1-31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예루살렘을 넘어 이방지역으로 퍼져나가는 전환점에 사울이라는 사람이 등장했습니다. 사울은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을 잡아다가 가두는 일로 만족하지 않고, 다메섹까지 가려했습니다. 다메섹은 당시 교류가 활발한 큰 도시였고 많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무리가 많아지면 그 영향력이 급속히 확산되기 때문에 사울은 다메섹의 여러 회당들에서 그리스도인들을 잡아올 수 있도록 수색영장 같은 것을 요청합니다.

 

    사울이 다메섹에 다다랐고, 이제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곧 위험이 닥칠 순간에 갑작스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울이 가던 길에 갑자기 하늘에서 온 빛이 그를 둘러 비추었고, 어떤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것은 동행하던 이들에게도 들렸지만 그들은 알아들을 수 없었고, 오직 사울만 이해할 수 있었던 주님의 음성이었습니다. 그것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라는 내용이었습니다(22:9).

 

    사울은 그 충격으로 인해 앞을 볼 수가 없었고,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못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사울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사울은 예수 믿는 자들을 없애는 일이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고 확신을 갖고 행했고, 그들이 믿는 예수는 그저 하나님을 모독한 죄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알게 되었으니 큰 충격에 빠졌을 것입니다. 그 충격은 단순히 자신의 신념이 무너진 충격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 자신이 죄를 짓고 있었던 것에 대한 두려움을 포함했을 것입니다. 그는 주께서 그런 자신을 곧 심판하지 않으시고, 다른 길로 인도하시고, 다른 누군가를 만날 것을 예고하신 것이 자신에게 어떤 기회를 주신 것임을 알았을 것이고, 그는 회개하면서 자신이 하나님에 대해 오해했던 것들을 다시 깨달으며 그 시간을 보냈을 것입니다.

 

    사울이 그런 시간을 보내는 사이 하나님께서는 다른 일을 진행하셨습니다. 사울이 잡으려 했던 그 다메섹의 성도들 중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부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나니아에게 사울한테 가서 안수하고 그를 교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주께서 그런 명령을 하시자 아나니아는 당황합니다. 왜냐하면 사울이 예루살렘 성도들을 핍박하다가 이제는 여기 다메섹 그리스도인들까지 잡으려는 자임을 아나니아는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사울을 이방 나라를 위한 자신의 종이 되게 하실 것이니 가서 명한대로 하라고, 이제는 사울이 주님을 위해 고난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아나니아에게 예고하셨습니다.

 

    아나니아는 주께서 말씀해 주신 집으로 찾아가 사울에게 세례를 주었고, 사울은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머물다가 회당을 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이미 예수를 믿던 사람들이 당황하고 의혹을 품습니다. 혹시 사울이 예수를 믿는 척 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로 깊이 들어와 더 효과적으로 자신들을 잡아가려는 계략이 아닌가 하고 의심하기까지 했습니다. 22절과 26절 사이에는 사울이 다메섹에서 예루살렘으로 이동한 것을 말하는데, 사실은 그 사이에 약 3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사울이 예루살렘에 돌아가서 거기 있는 제자들을 만나려 했지만 다들 사울의 진심을 믿지 못하고 두려워했습니다. 그 만큼이나 교회 공동체가 사울을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바나바라는 사람이 사울과 제자들의 만남을 중재해야만 했습니다.

 

    변화된 사울은 그렇게 그리스도인 공동체에게만 경계를 당한 것이 아닙니다. 그 과정에서 이전에 같은 편이었던 유대인들의 살해 위협을 받게 됩니다. 점차 교회 공동체에 신뢰를 얻고 받아들여졌지만 그마져도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렇게 아군과 적군이 바뀌는 가운데 사울은 고립되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변화시키신 것은 엄청난 반전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은혜가 드러납니다. 주님께서 사울에게 말씀하셨듯이 교회를 핍박한 것은 주님 자신을 핍박한 것과 마찬가지인데 주께서는 그런 자를 자신의 종이 되게 하셨습니다. 사울을 심판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주님께서는 그를 용서하시고 바꾸셔서 탁월한 복음전파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자기에게 대적하는 자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사울의 회심 사건에서 극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은혜 뿐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도 나타납니다. 사울은 인간적인 배경에 있어서나 학문과 종교에서 있어서도 탁월한 자였고, 어느 누구보다 열정적인 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대적하는 사울을 자기 종으로 만드셔서 탁월한 사울의 능력이 복음을 위해 사용되도록 지혜를 나타내셨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이 일으킬 수 없는 지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지혜로 복음이 널리 전파되게 하신 것입니다. 한 때는 사울이라는 사람을 초대교회 성도들을 멀리 흩으시는 일에 사용하셨는데, 때가 되자 이제는 사울 자신을 복음 전하는 자로 사용하셨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런 식으로 사울을 변화시키신 하나님의 역사가 당황스러웠습니다. 사울보다 먼저 예수를 믿은 자, 먼저 복음을 전해들은 자, 복음 때문에 핍박받은 자들에게 있어서 사울의 회심은 혼란 자체였습니다. 왜냐하면 사도들에게서부터 복음이 전달되어지는 정통성 있는 방향이 무시된 것이었고, 사울이 정말 하나님의 역사로 변화된 것인지도 의심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런 식으로 일하신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초대교회 성도들에게복음에 대한 확신을 가져왔습니다. 사울의 회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참으로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확신하는 기회가 된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주체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이 다시 한 번 나타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눈에 안보이시지만 여전히 살아계셔서 함께 하시며, 복음 사역을 위해 역사를 주도해가고 계신 것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울을 통해 초대교회 성도들이 그것을 경험한 것입니다. 그래서 31절을 보면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라이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이라는 존재를 사용하셔서 교회를 핍박하기도 하셨지만 반대로 자신의 살아계심과 은혜와 지혜를 보이셔서 교회를 위로하시고, 복음이 확장되도록 하셨습니다.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사울만 다루신 것이 아니라 교회의 성도들도 다루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진정한 성도가 되도록, 그리고 복음의 영광이 더욱 드러나도록 다양한 도구들을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사울처럼 때로는 인정하기 어려운 대상들을 통해 우리를 연단하시기도 하고, 또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우리의 믿음을 격려하시고 위로를 하십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지혜는 놀랍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