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8:1-40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스데반이 공회에 끌려가 변론을 하면서 설교를 한 것 때문에 그는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순교로 인해 초대교회는 본격적으로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 일로 사도들은 예루살렘에 남아 있었지만 그 외에는 유대 지방과 사마리아 지방으로 흩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는 바로 사울입니다. 사울은 스데반이 순교 당하는 그 현장에 있었고, 초대교회 박해가 시작되자 성도들을 색출해서 감옥에 넣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복음 전파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앞의 이야기에서 순교한 집사 스데반이 등장했던 것에 이어 본문에는 같은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인 빌립이 등장합니다. 빌립이 예루살렘의 북쪽인 사마리아 성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면서 이적도 일으키자 많은 사람들이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면서 기뻐했습니다. 빌립이 복음을 전하자 그들이 믿고 세례도 받았습니다. 사도들이 그 소식을 듣고 그곳에 와서 상황을 살피고 믿는 자들에게 안수했을 때 그들이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을 받았다는 것이 어떤 것이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복음전파를 위한 능력과 이적들을 얻게 된 것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마술사 시몬이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본문 11절은 그 지역 사람들이 시몬의 이상한 능력에 깊은 영향을 받고 있었음을 말합니다. 그 지역 사람들이 빌립의 전도를 받고 세례를 받았을 때 시몬도 예수님을 믿겠다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도들이 와서 안수하자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을 보고 시몬은 자기도 누구든지 안수를 하면 그런 일이 일어나게 해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시몬은 여전히 하나님에 대해, 복음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는 계속해서 자기 지역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싶었던 것이고, 그저 복음은 자신이 이전에 사용했던 마술 방법들보다 더 탁월하고 강력한 어떤 것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시몬의 태도가 바르지 못함을 꾸짖었고, 그가 진심으로 회심하도록 회개하고 기도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빌립을 예루살렘 남쪽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에디오피아의 내시가 수레를 타고 가면서 이사야의 글을 읽고 있었는데 마침 고난당하는 어린양을 예언하는 구절을 읽으며 그것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 궁금해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령께서 빌립에게 그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접근하라고 하셨습니다. 빌립이 성경을 해석해 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고, 그 내시는 세례를 받았습니다.
초대교회가 핍박을 받았지만 복음전파가 그렇게 끝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복음과 교회가 위축되어 그 영향력이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의 지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복음을 예루살렘 밖으로 전하게 하시려고 박해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해졌다는 사실,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였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것입니다. 복음서에서 나타나듯 사마리아는 유대인들이 상종하지 않던 지역이었기 때문입니다. 4절이 말하는 대로 박해 때문에 흩어진 사람들이 각 곳으로, 여기저기 갔는데,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특별히 사마리아 성에 빌립이 간 것과 에디오피아 내시 이야기를 자세히 기록하면서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범위, 복음의 경계가 유대인들의 생각을 넘어서는 것을 극적으로 전달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 뿐 아니라 그들이 미워하고 무시했던 사마리아 사람들까지, 그리고 유대인들의 관심 밖에 있는 에디오피아 내시와 같은 먼 이방인들까지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초대교회가 핍박을 받으면서 복음이 예루살렘을 넘어 이방 지역까지 퍼지게 되었습니다.
기독교를 핍박하는 자들은 자신들의 탄압으로 복음 전파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오히려 복음의 활동 범위를 확장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핍박하는 자들 뿐 아니라 핍박당한 초대교회 역시 그런 식으로 복음이 확장될 것을 생각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이방에 대한 전도 계획을 세워서 추진 한 것은 사도들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집사 빌립에 의해 복음이 전파된 것을 본문이 말합니다. 구제 사업을 위해 일곱 집사를 세울 때, 그들 중 순교를 한 스데반에 이어 빌립이 그렇게 사용될지 사람이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고 그것을 준비하셨던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계속 등장하는 단어가 성령이듯, 집사들이 세워질 때의 기준은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고(6:7), 스데반이 공회에서 변론할 때 성령께서 그런 설교를 하게 하신 것이고(6:10, 7:55), 빌립이 전도할 때도 성령께서 인도하시고 역사하셨습니다(8:29). 연쇄적인 일련의 사건들이 이방인 선교를 향하도록 주도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초대교회를 그렇게 흩으신 과정에서 스데반은 고통 속에서 죽임 당했고, 성도들은 옥에 갇히고, 핍박을 피해 여기저기 흩어지면서 불안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고난이 기쁨을 가져왔습니다. 8장 8절을 보면 사마리아 사람들이 빌립이 전한 복음을 듣고 기뻐했습니다. 39절을 보면 에디오피아 내시가 빌립이 전한 복음을 듣고 기쁘게 길을 떠났습니다. 그들이 기뻐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자신들의 죄의 질고를 대신 지고 용서와 생명을 주신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구원이 임한 것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에 닥친 핍박으로 인한 슬픔과 당혹감은 새로운 생명을 얻는 기쁨으로 변했습니다.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과 죽음이 자기 백성에게 생명과 기쁨을 주듯 그 원리가 복음이 전파되는 과정에서 계속 작동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라고 말씀하신 대로, ‘한 알의 밀이 죽어야 열매를 맺는다.’는 그 말씀대로 복음전파가 이뤄진 것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그것을 경험한 것입니다. 복음 때문에 고난을 당하는 것은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기쁨을 얻기 위한 것임을 경험한 것입니다. 세상 사람은 죄의 즐거움을 지속하기 위해 복음을 거절하고, 복음을 억압하지만 결국에는 자기들이 추구한 기쁨을 빼앗깁니다. 그러나 주의 자녀들은 복음 때문에 고통 받고, 외롭게 되고, 곤란함을 당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결국에는 더 큰 기쁨을,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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