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들은 신앙이 좋은 성도보다 착한 교인을 좋아합니다. 그 근본원인은 아무리 신앙을 바르게 가르쳐도 죄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 목사에게 보이지 않는 구원의 문제보다 리더십 실행과 공동체 운영에 있어서 개인들의 성품의 문제가 실제적으로 와닿는 현실의 장벽이고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참된 복음을 가르치는 목사는 그 죄문제와 더욱 깊이 씨름하고, 그것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의지하며, 그로 인한 더욱 깊은 은혜를 발견하는 삶으로 성도들을 인도해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목사는 매우 적습니다. 그런 참된 회심과 성화의 과정을 목사 자신이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러한 씨름이 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참된 구원의 경험이 없거나 거듭남의 문제로 씨름하기를 피하는 목사들은 결국 성도들의 성품을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상담과 내적치유, 성품훈련, OOO학교 등의 유용해 보이는 도구들을 사용합니다. 그런 실용적 과정들을 운영하고, 고안해 낸 사람들은 다 성경과 성령의 사역을 바탕으로 한다고 말은 합니다.
그것들이 한 개인의 기억과 감정, 외면적 행동을 단기간에 표면적으로 수정해주는 데는 유용합니다. 그리고 그 교회의 헌신된 일원이 되게하는 데도 유용합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여전히 그들은 죄인다운 행동을 합니다. 목사는 그러한 그들을 발견하면서 그러한 일들이 참된 신자가 되게 하는 일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깨닫고, 다시 바른 복음을 가르치려고 씨름한다면 좋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 유용한 방법들이 여전히 성도들의 좋은 반응과 수적 성장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거짓된 내면적 도구를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복음을 심도있게 다루어 가르쳐도 그 영향력이 작용되기 어렵게 됩니다. 그 유용한 도구들은 항생제를 사용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지, 정, 의 가운데 역사하시는 성령의 사역에 장애물을 가져다 놓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성경에서 찾아낸 원리인 것처럼 둘러대고, 청교도들의 역사에서 발견한 것이라고 합리화 할지라도 그것은 결과만 가지고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실용적 접근입니다. 육신의 약이 증상을 완화시키고 질병을 이기는 것은 사실이나, 결국 그 몸이 죽는 것처럼, 실용적인 인간 심리 다루기는 인간의 영혼을 결국 영원한 죽음에 처하게 합니다. 복음의 원리에 맞게, 한 영혼이 하나님 앞에서 씨름할 수 있도록, 목회자 역시 그것을 돕는 씨름을 하는 것이 참된 변화와 은혜를 얻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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