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주장할 때 우리는 더 주의해야 합니다. 물론 오류와 죄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외침도 하나님은 사용하십니다. 다행인 것은 겸손한 자세로 진리를 전달하고 인격과 실천에 있어서 바른 모범이 되는 목회자들이 있고, 진리를 체계적으로 소유하지는 못하지만 그런 신앙을 인격적으로 형성하고 목마른 상태로 가르침을 기다리는 신자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분들은 항상 그렇듯이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드러내고자 할수록 다음과 같은 점에서 우리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 진리를 주장하는 자는 자신의 깨달음과 인격과 행위를 일치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거듭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비상식적인 발언과 행위마져도 성경적이라고 방어하는 일들이 생겨납니다. 그런 괴리는 그의 주변인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의 가르침을 전해 듣던 사람들은 큰 절망과 혼돈에 빠져들고 차라리 체험과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낫겠다는 어리석은 돌이킴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실족입니다.
- 진리를 추구하고 외치는 것이 일종의 틈새전략, 차별화 전략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즉 세속화되고 기복적인 한국교회 내에서 일종의 차별화 전략으로서 "나는 옳으니 내 말을 들으라.", "우리 교회는 진리를 추구한다.". "우리가 참된 교회다." 라는 암묵적 홍보로 전락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 진리를 깨닫고 전달하는 것이 우리 자신의 구원을 보장한다고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진리를 다룰 때 우리는 자신이 진리가 된 것처럼 착각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매우 거만한 태도와 독선적인 리더십을 보일 위험이 큽니다. 때로는 그런 길을 추구하는 목회자들이 자기 설교와 자기 교회만의 구원의 가능성을 암묵적으로 드러냅니다. 명심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구원하시지 않으면서도 그 사람이 진리를 전달하는 행위 자체는 사용하실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 '진리'가 자신의 거친 성품을 정당화하기 위한 신앙의 유형으로서 선택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진리를 '다루는 것'만으로 한계를 드러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그들은 복음의 진리 때문에 단호하게 분별하고 냉철한 자세를 갖는 것이 아니라, 괴팍하고 날카로운 성품을 가졌기 때문에 그것을 장점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신학을 선택하고 선호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저 다른 교회들을 비판하며서 우월감을 느끼려는 그 사람의 미성숙한 내면과 취향 때문입니다. 옳고 그른 것을 다룸으로써 사람들을 비판하고 그 쾌감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비평가, 평론가적 기질이라는 것입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이유는 부패한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경험하고, 실천하는 일에 이미 왜곡되어 있고, 또 왜곡시키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진리가 증명되지 않는다면 분명 위의 경우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제 자신이 이러한 위험을 늘 안고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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