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세 명의 사도들 (행 12:1-25)

따뜻한 진리 2016. 11. 6. 11:32

사도행전 12:1-25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본문은 헤롯 왕의 핍박을 말합니다. 이 헤롯은 아기 예수를 찾아서 죽이려고 했던 그 헤롯 대왕의 손자로서 정식 명칭은 헤롯 아그립바 1세입니다. 이 헤롯은 자신의 지지기반인 유대지도자들로부터 인기를 얻기 위해 초대교회를 핍박했고, 사도 야고보를 죽였습니다. 야고보는 베드로, 요한과 함께 예수님의 수제자였습니다. 야고보의 죽음으로 유대인들이 기뻐하자 헤롯이 이번에는 베드로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헤롯은 유월절이 지난 후 베드로를 처형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이제 다음 날이 밝으면 베드로는 옥에서 나와 죽게 되는데, 그날 밤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천사는 베드로의 결박을 풀었고, 감옥문도 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베드로는 깊은 잠을 자고 있었는데 천사가 옆구리를 치고 깨워서 겨우 일어났고, 천사를 따라 감옥을 나가면서도 꿈인지 생시인지도 잘 분간을 못했습니다. 잠결에 따라 나와 보니 거리였고 거기서 비로소 베드로는 잠이 깨어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 자신을 구하신 것을 깨달았다고 말합니다.

 

    야고보가 앞서 순교를 당했으니, 베드로는 자신도 곧 죽게 될 것을 예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별로 불안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깊은 잠을 잘 수 있을 만큼 베드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감옥에서 나갈 것이라는 큰 기대도 없이, 하나님께 맡기고 그 시간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천사가 베드로를 거의 떠밀 듯이 감옥에서 데리고 나온 것은 아직 하나님께서는 베드로를 통해 하실 일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갑니다. 5절이 말하듯 그 집에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그 집 대문을 두드리자 로데라는 소녀가 나왔다가 베드로인줄 알고 너무 놀라서 문열어주는 것을 깜빡하고 사람들에게 알리러 갔습니다. 로데가 베드로가 왔다고 전하자 사람들은 그 소녀가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면서 믿지 못했는데, 베드로가 계속 문 두드리는 소리에 사람들이 문을 열어주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니까 열심히 기도는 했는데, 베드로가 돌아올 것을 기다리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막상 기도한대로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니까 그들은 당황했습니다. 베드로는 사람들을 조용하게 한 후 하나님께서 자신을 감옥에서 꺼내신 것을 말하고, 다른 사도들에게 소식을 전하게 한 후 떠났습니다. 헤롯이 이 사실을 알고 베드로를 찾으려 했지만 실패했고,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던 헤롯은 비참하게 죽습니다.

 

    사도행전은 베드로의 사역으로 이스라엘 교회가 성장한 이야기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7장에서 스데반의 순교 사건 이후 사울이 등장하면서 베드로의 사역과 사울의 사역이 계속 번갈아가면서 등장합니다. 그런데 본문을 기점으로 베드로에서 사울로 중심인물이 바뀝니다. 그리고 13장에 가면 사울의 이름이 바울로 바뀌어 소개됩니다. 15장에서 예루살렘 회의 때 베드로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나머지 사도행전의 내용들은 이제 바울의 전도행적을 말합니다.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가 베드로와 바울 두 사람을 중심으로 기록한 이유는 이 두 사람이 자기 노력이나 확신을 가지고 전도활동을 잘 했다는 것을 밝히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여정을 보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이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그들이 전한 복음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이 분명하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여정을 생각해보십시오. 옥에 갇힌 베드로를 꺼내 주신 그분, 고넬료의 집에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그분,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 사람들을 변화시키신 그분, 베드로를 통해 애니아와 도르가를 살리신 그분,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울의 여정을 생각해보십시오. 다메섹 도상에서 사울을 부르신 그분, 사울을 죽이려는 유대인들로부터 피신시키신 그분, 사울이 안디옥에서의 가르친 일로 큰 무리가 더하게 하신 그분 예수 그리스도가 그 모든 일을 주도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서 반복되는 것이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중요한 순간에 정확하게 개입하셔서 자기 사람들을 보존하시고, 복음의 길을 여시고, 사람들을 구원하신 일이 연속됩니다.

 

    그 과정에서 등장한 어느 누가 더 탁월하고 나은 인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사용하신 하나님의 종들이라는 것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왜 했어야 했을까요? 고린도전서 1장에 가면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라는 내용이 있는데, 초대교회 안에도 파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역동적인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고, 복음에 대한 뜨거운 확신이 있던 초대교회 안에도 자신들이 옳다고 여기고, 더 선호하는 지도자와 그의 가르침이 있어서 그런 그룹이 나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인물이 전해 준 복음이 더 나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신즌 사람에게는 각각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습니다. 그런 요소들이 사람들마다 다르게 작용하여 특정 지도자의 장점이 어떤 사람에게는 크게 영향력을 미쳐 그 지도자를 선호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베드로가 더 좋을 수 있고,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더 좋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눈에 보이는 인간 지도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들 역시 하나님의 인도하심대로 움직였을 뿐이라는 것을 사도행전은 계속 그 이야기를 합니다.

 

    본문에 세 명의 사도가 등장하는데, 하나님께서 야고보는 헤롯의 손에 죽게 하셨지만, 베드로는 헤롯에게 죽을 뻔했던 위험에서 건져주셨습니다. 또 살아남은 베드로는 다른 곳으로 피신해야 했지만, 사울은 베드로와 친밀했던 마가까지 데리고 더 넓은 사역지로 갔습니다. 셋을 비교했을 때 야고보보다 베드로를, 베드로보다 사울을 하나님께서 더 사랑하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모두를 사랑하시지만 다르게 사용하신 것일 뿐입니다. 사울은 이제 남다른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 우리는 다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셔서 사용하시다가 데려가십니다. 우리의 삶도 그런 것입니다. 모두가 다르게 쓰임 받고, 사람이 보기에 작게 쓰임 받는 것 같기도 하고, 크게 쓰임 받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이 높아지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