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복을 얻게 하는 십계명 (신 5:1-33)

따뜻한 진리 2017. 3. 12. 22:52

신명기 5:1-33                                                       김영제 목사 (하늘기쁨교회)


    모세는 본격적으로 율법을 가르칩니다. 그 시작은 십계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법은 의식법, 민법, 도덕법으로 되어 있습니다. 먼저 의식법은 제의법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스라엘의 제사제도와 관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 땅에 오실 예수님에 대해 이미지, 그림자로 이스라엘에게 보여주시려고 주신 방법입니다. 그래서 이 예식법은 그것이 가리키는 실체인 예수님이 오셔서 구속사역을 완성하셨을 때 폐지되었습니다. 다음으로 민법은 하나님께서 선택한 이스라엘의 구체적인 삶의 상황들에 필요한 구체적인 지침들입니다. 이 민법들에는 십계명의 원칙들이 녹아져 있습니다. 다음으로 도덕법입니다. 도덕법은 쉽게 말하면 십계명입니다. 앞에서 말한 의식법, 민법은 구약시대의 이스라엘에 한정되어 있지만 도덕법은 하나님께서 전 역사 속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으로 주신, 사적이고 공적인 영역에서 준수되어야 할 법입니다. 이 도덕법 십계명의 주제는 예수님께서 두 가지로 요약해 주셨듯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타인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본문 2절에서 5절이 말하듯 십계명은 출애굽 후 시내산에서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십계명을 주실 때 열 가지 계명을 바로 말씀하시지 않고 6절이 말하는대로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십계명을 주신 하나님이 어디서 갑자기 나타나신 분이 아니라 옛적부터 이스라엘과 함께 하셨고, 이스라엘을 인도해 오셨던 분으로서 계명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아담의 범죄로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을 스스로 알수도 없었고, 찾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셨을 뿐 아니라 민족을 이루게 하셨고, 이집트라는 억압에서 구출해 주셨습니다. 왜 구출하셨습니까? 하나님을 섬기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길이 구원이 길, 살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부모처럼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고, 고통에서 건져내셨고, 고아 같은 자들이 다시 찾아 올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이 원하시는 대로 우리에게 요구하실 근거와 자격을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그래서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하나님 여호와라는 말씀을 먼저 하시면서 십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십계명 각 구절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피지는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 신명기를 진행하면서 십계명은 계속 언급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는 십계명 전체에 흐르는 하나님의 뜻과 그것에 반응하는 인간의 태도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십계명 중 1계명에서 4계명은(다른 신 네게 두지 말라, 우상을 만들지 말라,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일컫지 말라, 안식일을 지키라) 하나님에 대한 배타적인 경외와 사랑을 요구합니다. 하나님께서 오직 자신만을 사랑하라고 하신 이유는 하나님만 신이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랑은 그 대상에 대한 분명한 배타성을 갖습니다. 사랑의 속성 중 한 가지는 내가 사랑하는 대상이 나로 인해 충족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존재가 다른 누군가에게서 만족을 누린다면 우리는 참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있지도 않은 것들, 상상력으로 만든 신들을 의존하면서 인생을 낭비하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킵니다. 게다가 우리 스스로를 망치고, 우리의 가치를 훼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모르는 인간은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섬깁니다.

 

    다음으로 십계명 5명부터 10계명은(부모공경,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 하지 말라, 거짓증거 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타인들에게 사랑을 요구합니다. 이 타인에 대한 계명들은 하나님에 대한 1에서 4계명과 별개로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세상 많은 나라들이 유일하신 하나님에 대한 앎과 사랑과 순종이 없어도 5에서 10계명에 해당하는 도덕법을 공통적으로 준수해 왔습니다. 인류는 그것들만 지키려고 노력해도 어느 정도는 행복한 세상을 이룰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 조항이 인간의 죄를 통제하면서 인간 사회의 가치를 지키는 일에 충분한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사랑하셔서 급속하게 멸망하지 않도록 죄의 수준을 통제하시려는 배려가 5계명에서 10계명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계명이 무시된다면 분명히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도 무시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인간은 5계명에서 10계명 마저 지키려 하지 않습니다. 인류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이익과 쾌락을 위해 십계명의 조항들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살인, 간음, 도적질, 거짓, 탐욕을 통제하기보다 그것을 조장하고, 그것으로 이익을 추구하고, 개인의 자유라고 인정해주고, 피해자의 인권보다 가해자의 인권이 더 중요시되는 왜곡된 가치가 진보된 사고인 것처럼 변질시키고 있습니다. 십계명이 금지하는 것을 행하는 것이 더 발전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제멋대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런 일이 발생합니까? 십계명을 억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타인을 사랑하는 것으로 반드시 나타나고, 반대로 타인의 생명과 복지를 훼손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과 직결됩니다. 죄인인 인간은 하나님이 싫으면 다른 인간들끼리라도 아름답게 잘 살아가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싫기 때문에 타인들도 함부로 대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 사랑하는 것을 회피하는 것으로 하나님에 대한 원망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인 인간의 한계를 정확히 알고 계시기 때문에 십계명을 통해 죄와 싸울 뿐 아니라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는 자신을 깨닫도록 하셨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돌아가지 않는다면 아무리 발악을 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어도 결국 하나님에 대한 원망을 표출하는 것이고, 자기 존재를 학대하고 서로를 비참하게 하는 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죄 짓는 것조차 창의적일 수 없고,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인간은 십계명에 의해 자기의 죄를 진단받으면서도 달아나고 있는 것입니다. 죄인의 죄책감은 자기를 더욱 고립시키며 자기를 파괴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십계명을 파괴합니다.

 

    그러나 거듭난 자,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는 하나님의 법이 요구하는 바를 혐오하지 않고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보호하시려고 법을 주신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 십계명을 통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려고 노력합니다. 성도는 그것이 자신의 인간성, 존엄성, 진정한 자유, 진정한 행복을 지켜주는 안내자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동시에 성도는 자신이 십계명의 요구에 완전하게 순종하지 못하는 것을 인정합니다. 성도는 그것으로 인해 생기는 죄책감 때문에 하나님 앞에 더욱 겸손해지고 그 율법을 대신 완성하시고 우리에게는 은혜를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게 됩니다. 자신의 순종이 불완전할지라도 그것으로 낙심하거나, 율법을 평가절하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왜 필요한지를 깊이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도는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것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는 것입니다.